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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킴 Jan 09. 2020

일주일 영국 여행의 잔상

환상의 나라에서 발견한 진짜 삶의 매력  

영국에 처음 간 건 2008년 1월이었다. 그때 나는 대학교 3학년으로 영국 북부에 위치한 노팅엄 대학교(Nottingham Univeristy)에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를 지내게 됐다. 학기가 끝날 무렵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 아쉬워 런던에서 영어를 공부하며 1년을 꼭 채웠다.


유럽에 대한 환상도 있었겠지만 처음 해외 생활을 경험한 나라였던지라 나는 영국이 마냥 좋았다. 그때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좋은 사람들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혹은 미래에 대한 별다른 걱정 없이 영어 공부나 하며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던 충만한 시절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국에서 돌아온 뒤에도 나의 ‘영국앓이’는 지속됐고 틈만 나면 영국에 돌아가 막연한 그리움과 조우했다.


남자친구와 영국에 간 건 이번이 두 번째다. 2018년 여름 방문한 뒤 1년 반 만에 다시 그의 고향을 찾았다. 사실 둘만의 여행이라기보다는 그의 가족들과 지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지만 겸사겸사 런던에서 불꽃놀이를 보며 새해를 맞아도 꽤나 멋질 듯 싶았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우리는 12월 31일과 1월 1일은 런던에서, 나머지는 그의 부모님 댁에서 지내기로 했다.

뉴이어 이브의 런던 정경

그의 고향은 런던에서 기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켄트(Kent) 지역의 ‘시팅본(Sittingbourne)’이라는 작은 타운이다. 일종의 주택 밀집 지역으로 매우 한적한(혹은 지루한) 동네였다. 런던 집값이 워낙 높다보니 이곳에 거주하며 런던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인근의 경기도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남자친구와 그의 친구들은 이곳이 너무 지루하다며 농담처럼 ‘Shittingbourne’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지내다 보니 왠지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알다시피 유럽의 겨울은 밤이 무척 길다. 아침 8시 반쯤 해가 뜨기 시작해 오후 4시면 한밤처럼 아주 깜깜해진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저녁 늦게까지 불이 훤히 켜져 있거나 상점들이 문을 여는 것도 아니어서 해가 지고 나면 정말로 할 일이 없다. 첫 방문 때에는 그나마 여름이어서 밤 10시까지 환한 덕에 느긋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는데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겨울밤 집 밖을 나서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리는 거실에 둘러 앉아 차를 마시거나 TV를 보며 시간을 때웠다. 


게다가 영국의 겨울은 ‘축축’했다. 간밤에 비가 온 것도 아닌데 아침에 거리를 나서면 온통 젖어있는 것이었다.이유를 물어보니 영국의 대기는 습도가 높아서 아침 이슬이 온 거리를 적시는 거란다. 거기다 바람이 불고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라도 하면 이 곳은 ‘황량함(bleak)’ 그 자체였다. 차창 밖을 바라보며 나는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Withering Height)이 괜히 쓰여진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도 비교적 맑은(dry) 날이면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온도가 높아서 기분 좋은 겨울날을 만끽할 수도 있었다.

어떤 겨울의 아침

사실 이번 방문은 런던에서의 1박 2일을 제외하면 ‘새로운 풍경’ 이 주는 여행의 묘미는 덜했지만 내게는 일상을 경험하는 또 다른 차원의 여정임이 분명했다. 그의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도 새로운 경험 중 하나였다. 남자친구의 엄마는 굉장히 흥미로운 인물인데 글라스톤베리(glastonbury)에 뼈를 묻어달라는 것이 유언이라는 그녀는 해마다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거실에서는 록 음악이 끊이질 않았다. 평소에 그녀는 가정 형편 등의 문제로 오갈 데가 없는 어린 아이들이나 청소년을 집에 데려다 보살펴주기도 하는데, 내가 방문했을 때에는 14살짜리 여자아이가 함께 지내고 있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그 아이가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며, 스스로를 여성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내게는 성을 스스로 선택하는 ‘청소년’을 만난 것이 처음이라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조심스럽기도 하거니와 어색하기도 했다. 질풍노도의 시기의 아이는 조금 반항적인 면모도 있었지만 대체로 다정했고, 나와도 여러 번 대화를 주고받았다. 물론 우리는 헤어질 때까지 결코 가까워지진 못했지만, 자신의 성을 당당하게 선택한 아이와 이를 존중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한 가족의 일상이 낯설면서도 감탄스러웠다. 그 즈음 하루에 몇 차례 우유를 살짝 넣은 요크셔티(yorkshire tea)를 홀짝이며 거실에 둘러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이 나라가 더 이상 내게 여행지로서만 다가오지 않는 순간이었다. 


'영국에서 뭐했어?' 하는 주변 질문에 딱히 '별 것 안 했어' 하고 시답잖게 답했지만 이번 여행의 잔상이 오래도록 남는 것은 환상의 나라에서 보지 못했던 진솔한 삶의 모습을 목격한 까닭이 아니었을까. 꼭 남자친구의 고향에 방문할 요량이 아니더라도 앞으로도 나는 영국에 지속적으로 방문하게 될 듯하다. 다녀온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지만 다음 영국행을 그려보자니 과거에 가졌던 설렘이나 추억의 되새김보다는 일상에서 조우할 진짜 삶의 매력, 그로부터 얻게 될 사유의 즐거움 따위가 먼저 떠올라 벌써부터 마음이 들떠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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