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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킴 Feb 21. 2020

민주라는 코리안

'넥스트 인 패션'을 바라보는 두 시선


최근 넷플릭스에서 ‘넥스트 인 패션’이라는 리얼리티쇼를 보게 됐다. 이 프로그램은 보통의 서바이벌쇼가 그러하듯 전 세계의 재능있는 디자이너가 경쟁해 1명의 우승자를 가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딱히 새로울 것 없는 포맷이었지만 며칠 만에 정주행하게 된 까닭은 매회 새로운 컨셉으로 서로 다른 스타일의 옷을 뚝딱 만들어내는 디자이너들의 대결을 바라보는 재미와 더불어 일반인의 눈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아리송한 패션의 세계에 입문하는 데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국인 디자이너 민주킴(김민주)이 있었다.      


대결을 펼치는 이들은 아직 이름이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차세대 패션 리더로 촉망받는 디자이너들이었다. 나는 아무리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 하더라도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리얼리티쇼에 한국인, 그것도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교포가 아닌 토종 한국인이 나오는 것 자체가 낯설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한국은 아직 패션강국이 아니라는 선입견도 자리했다.     


나는 마지막회를 보기 전까지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세계 무대에 선 그가 너무 '한국적'이었기 때문이다. 동양적 요소가 돋보이는 그의 작업물을 차치하고 그의 캐릭터 자체가 조금 불편하게 다가왔다. 그는 굉장한 실력자임에도 불구하고 늘 자신이 하는 일에 의구심을 가졌고 매사에 자신감이 부족해 보였다. 한국에서 샵을 운영하며 사업가인 언니가 자신의 역량을 얼마나 억압해 왔는지를 고백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분명 우리가 기대하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패션리더의 모습은 아니었다. 


넥스트 인 패션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한 민주킴의 파이널 콜렉션

그러나 쇼가 진행될수록 스스로를 둘러싸고 있던 억압에서 벗어나 성장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어느새 민주라는 캐릭터에게 매료된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3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총 10개의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파이널 무대에서 그는 결국 최종 우승자가 됐다. 패션을 잘 모르는 내 눈에도 그의 작품은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무엇보다 색을 다루는 능력이 탁월했고 옷 한 벌 한벌에 그만의 독특한 볼륨감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한국에서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넷플릭스 서바이벌에 출연하기 전에도 세계적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은 디자이너라고 한다. 이미 H&M 디자인 어워드, 프랑스 루이비통모엣헤네시 프라이즈를 비롯한 세계적 패션 어워드에서 수상했고, 자신의 이름을 건 샵을 운영하며 BTS의 월드 투어 의상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는 “이제서야 가족에게 인정받은 것 같다”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가족의 인정과 지지에 목이 마른 사람처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한국에서 이름을 알리기 위해 이 쇼에 나왔다”고 밝힌 바 있다.     



넥스트 인 패션에서 민주킴의 우승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그가 단순히 한국인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늘 부족하던 민주, 세계 무대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가족의 인정과 믿음이 더 중요했던 민주라는 코리안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코리안을 대변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억압을 깨치고 마침내 자유로이 자신을 표현하던 그의 모습이 더 큰 위로가 됐는지 모른다.   


나 또한 민주에게서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며 다시 한 번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가 정작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이를 향해 달려나가기보다는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며 살아왔던 건 아닐지, 그런 가운데 되레 나 자신을 비롯해 나를 둘러싼 것들의 가치를 폄하하고 있었던 건 아닐지. 넥스트 인 패션의 민주킴이 차세대 패션 아이콘을 넘어 ‘용기’를 주는 한 사람으로서 마음에 남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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