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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킴 Apr 09. 2020

마스크 없이 코로나 시대를  산다는 것

영국 내 코로나 사태를 바라보며

국내에서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한때 마스크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온라인에서 한 장에 500원이면 살 수 있던 마스크가 4~5000원에 팔려나갔고 그것마저 구하기가 힘든 지경이었다. 하루에 수백 명씩 확진자가 나오던 때였다. 나는 처음으로 생존에 대한 공포감을 경험했고 마스크는 그 예방 효과를 떠나 ‘심리적 안전장치’로서 안도감을 줬다.


국내 수급에 답답함과 당혹감을 느꼈던 그때 나는 해외에서 마스크를 찾아보기로 했다. 당시 유럽이나 미국은 상대적으로 청정지역이었으므로 마스크 공급이 그나마 여유롭지 않을까 싶었다. 마침 남자친구 부모님이 영국에 계시기도 했다. 우리는 동네 마트나 약국에서 저렴한 마스크를 구해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내에서 마스크를 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알고 보니 우리에게는 봄철 황사 등으로 마스크를 착용하는 일이 제법 일반화되었지만 유럽에서는 웬만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마스크를 착용하면 병에 걸렸다고 간주된다는 것. 남자친구 역시 한국에 오기 전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마스크를 써 본 적이 없단다. 일상에서 마스크를 쓸 일이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산량이 줄고 마스크를 구매하는 일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마존과 같은 해외 사이트에서는 KF94 마스크 하나가 9.99파운드(15,000원)에 달했다. 사실 마스크의 KF라는 것도 ‘Korea Filter’의 준말로 결국 외국에서 조달하는 방역 마스크 대부분이 국내에서 제조된 것들이었다. 다행히도 곧 공영마스크가 풀리면서 마스크 수급이 비교적 손쉬워졌지만 이 비상사태가 얼마나 지속될 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스크라는 기본적 안전장치에 대한 심리적 의존도는 높아져만 갔다.


     



3월 이후 코로나 사태의 지형이 뒤집혔다. 초기 발병률이 높았던 중국과 한국은 점점 안정화되고 있는 반면 유럽과 미국 내 확진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마스크를 구해보고자 했을 때 확진자 수는 겨우 20명이었는데 4월 7일 기준 확진자 수는 5만 5천명, 사망자는 6천 명을 넘어섰다. 총리마저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다수의 시민이 여전히 마스크를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하루에도 몇 천명씩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그 흔한 면마스크조차 구할 수가 없다고 한다. 심지어 병원에서 일하는 남자친구의 여동생도 일회용 마스크 한 장을 받지 못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손세정제를 열심히 바르는 것뿐이라고. 이제 병원 근로자, 버스 운전사 등 일부 필수 인력(essential worker)을 제외한 대부분의 영국 시민은 재택 근무를 하고 있지만 생필품을 사러 마트에 가는 등 사람과 접촉해야 하는 경우에는 무방비 상태로 현실에 맞닥뜨리는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와 남자친구는 없는 마스크라도 모아서 영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줄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현재 마스크 수출금지 정책에 따라 오직 한국인만이 외국에 있는 한국인 가족에게 마스크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신분증과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해야 하고 보낼 수 있는 마스크 개수도 월 8개로 제한된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아예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차선책으로 발송 제한 품목에 걸리지 않는 면마스크와 패션마스크를 사서 우체국 직원의 검수를 받은 뒤 가까스로 보낼 수 있었다.(손세정제도 에탄올 성분 때문에 발송 불가하다) 사실 이러한 마스크는 필터가 없기 때문에 예방 효과는 낮지만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안전하지 않을까 바라면서. 최근 코로나 사태로 아예 물건을 보낼 수 없는 국가도 많아지고 영국의 경우 EMS로 발송은 가능하지만 최소 한 달 이상 걸린다고 한다. 그래도 이거라도 보내서 다행이다 자위했지만 우체국을 나서는 발걸음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국내 수급도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마스크 해외 발송을 내국인으로만 한정해놓은 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에게 마스크 한 장 제대로 보낼 수 없는 현실을 목격하며 코로나 시대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마스크 문화가 부재한 유럽의 사정을 고려한다면 국민에게 마스크 한 장 나눠주지 못하는 영국 정부의 무능을 탓할 수도 없지 않은가.       


사실 주변에 확진자가 없을뿐더러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며 정상 출근을 하고 있기에 코로나 위기가 체감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국내 확진자도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 곧 이 상황이 끝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되는 요즘이었다. 어쩌면 내 눈 앞에 펼쳐진 상황만을 바라본 성급한 안도였는지 모르겠다. 오늘 아침 출근길, 지하철 창문에 비친 마스크를 쓴 내 얼굴이 어쩐지 가엾게 느껴진다. 나를 지켜줄 것이란 최소한의 믿음. 수많은 이들의 걱정과 희망이 서린 이 작은 안전장치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 시대를 문득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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