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권을 보장받을 수 없는 이들에 대해
샌드위치 휴일을 끼면 장장 6일에 달하는 긴 연휴를 앞두고 엄마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내려올 수 있니? 지금 아빠 병원에 있어.”
지난밤부터 아버지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열과 복통을 동반한 설사로 시달리다 결국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엄마는 군산에서 가장 큰 병원 중 하나인 A 병원으로 아버지를 데려갔고 열이 39도까지 오른 아빠는 ‘코로나 의심환자’로 분리돼 응급실에 격리됐다. 그게 지난 수요일 오후 2시쯤이었다.
다음날 오후 불행 중 다행으로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은 아빠는 입원실로 옮겨졌다. 약 5분에 한 번꼴로 화장실에 들락거려야 하는 심각한 설사 증상 때문에 피 검사는 물론 엑스레이와 CT 촬영도 이어졌다. 아빠의 염증 수치는 360을 넘어섰다. 정상인의 경우 보통 3에 불과하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장염이 의심되지만 정확한 사항은 검사 결과를 보고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황당한 사실은 그 결과를 언제 알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병원의 반응이었다. 휴일인 목요일부터 근로자의 날인 금요일, 이어진 주말, 샌드위치 휴일을 낀 어린이날까지 연휴가 쭉 이어져 의사가 언제 출근을 할지 모른다고 했다. 어쩌면 공식 휴일이 아닌 월요일에 회진을 돌 수 있지만 그것도 정확하지는 않다고 했다. 400개가 넘는 병상을 지닌 이 병원의 입원병동에 의사가 아예 상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의사들도 휴식권이 보장되어야 하지만 여러 환자가 입원한 병원에 의사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상식적인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렇다면 길면 6일, 빠르면 4일 뒤에야 진단을 받을 수 있는 것이느냐며 의사 중 한 명이라도 다음 날 잠시 병원에 들러 아빠의 상태를 봐주기를 요청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장담할 수 없다는 공허한 희망. 결국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울며 겨자먹기로 A병원에 입원 수속을 밟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아빠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는 듯했다. 아빠가 극심한 복통을 호소해도 의사는 전화기를 통해 간호사에게 진통제나 항생제를 투여하라는 처치로 갈음할 뿐이었다.
다음날 새벽 아빠의 상태가 전혀 나아지지 않고 급기야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의사가 없는 이 병원을 떠나 1시간 떨어진 전주의 전북대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스럽게도 전북대 병원 응급실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의사를 만날 수 있었고, 군산 A병원에서 촬영한 CT 결과를 드디어 판독할 수 있게 됐다. 그곳에서는 우선 당장 CT만 찍었지 정작 이를 볼 수 있는 이가 전혀 없었던 셈이다.
알고 보니 아빠는 단순 장염이 아니라 장 내 게실에 염증이 생긴 탓에 그렇게 아팠던 거라고 했다. 이전까지 나는 게실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게실이란 식도, 위, 대장처럼 관의 형태를 지닌 장기의 일부가 바깥쪽으로 불룩하게 불거져 나와 주머니 모양의 빈 공간을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 선천성 또는 후천성으로 이뤄지며 명확하지 않지만 심한 변비가 상습적으로 대장의 압력을 높여 생기는 것으로 추정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대장 근육층이 약해지고 틈이 생겨 게실이 더 잘 생기기도 한단다.
게실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 내부에 염증이 생기거나 게실이 다른 장기를 압박해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아빠는 전자에 해당되는 경우였는데 게실이 상대적으로 많기도 하거니와 염증이 무척 심한 상태여서 그대로 두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아빠는 곧바로 입원 병동으로 옮겨졌고, 우리는 그제서야 이 모든 상황에 대해 안도할 수 있었다. 처방에 따라 며칠 간의 금식과 항생제 투여 끝에 아빠의 상태는 점점 호전됐고, 긴 연휴가 끝나는 화요일에 이르러서야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그 시간 동안 힘들었을 아빠의 고통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지켜보던 내 몸과 마음도 지쳐버렸다. 이제 환갑을 넘긴 부모님의 병환 소식은 앞으로 더 자주, 더 심각하게 나를 불안하게 만들 터이다. 그럼에도 부모님이 아프다는 사실은 여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든 일이다. 게다가 이번에 맞닥뜨려야 했던 아버지의 입원은 긴 연휴 때문에, 코로나 사태 때문에 여러모로 더 갑갑하고 힘겨웠던 것 같다.
나아가 누군가에게는 황금 같은 긴 연휴가 갑작스럽게 병원에 가야 할 환자들과 그 가족들, 의료진들에게 얼마나 힘든 시간일지 새삼 깨닫게 됐다. 특히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군산과 같은 소도시의 시민들은 아플 때 더욱 어려운 상황을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오르는 길, 군산에 남겨진 부모님을 생각하니 마음 한쪽이 무거워진다. 나의 부모는 이대로 고향에 머물러도 되는 것일까. 수도권 전역에는 하루가 바쁘게 큰 병원들이 들어서는데 어째서 나의 고향에는 제대로 된 병원 하나가 없는 것일까. 언젠가 아프다는 소식에 가슴을 부여잡고 고향에 내려가지 않을 수 있을까? 어디에 있든 아픈 사람들이 의료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날은 과연 올까? 긴 연휴 끝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