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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킴 Sep 07. 2020

글을 써야 하는 이유

글을 쓰지 못하는 동안 찾은 글쓰기의 의미

코로나가 터지고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매일 마스크를 써야 하는 수고로움과 언제 바이러스에 노출될지 모른다는 공포, 자유롭게 야외를 누리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 이밖에도 코로나의 여파는 우리 삶 속속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심각하게 다가오는 것은 ‘먹고 사는 것’에 관한 문제다.  


카페를 운영하는 엄마의 매출은 바닥을 찍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엄마는 아르바이트 대신 종일 근무를 하고 있다. 그래봐야 적자를 겨우 면할 수준이다. 대기업을 다니는 친구들 가운데 일부는 무기한 무급휴직을 통보 받았고 창업으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던 이들의 꿈은 잠시 좌초됐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직업 특성상 고용 안정성은 보장 받을 수 있었지만 이 엄청난 불안감 속에서 먹고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 혼란의 시기, 위기는 누군가에게 곧 기회이기도 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주가가 널을 뛰었다. 옆자리 차장님은 일주일 만에 주식으로 천만 원을 벌었다. 재테크에 관심이 없어보이던 팀장님도 몇 번이나 상한가를 찍었다며 ‘지금 무조건 주식을 해야 한다’고 떠들어댔다. 나는 평소에 주식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잘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에 주식은 내 생애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몇 달을 죽도록 일해야 버는 돈을 며칠 만에 손에 쥐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쓸데없는 위기감이 느껴졌다.


결국 나도 옆지기를 따라 주식 앱을 깔고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따라하면 대박 난다는 책을 들춰봤지만 경제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으니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초심자의 행운 덕에 하루에 몇 만원이라도 돈이 벌리는 듯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마이너스를 향해 돌진하는 주식을 갖게 되었다. 괜스레 근심거리만 하나 늘어난 셈이다.


주식에서 쓴맛을 보았음에도 나의 귀는 한 번 더 팔랑거렸다. 연일 집값이 뛰고 전세매물 품귀현상이 일어나면서 ‘사는 곳’에 대한 불안감이 덩달아 커졌다. 아직 기간이 꽤 남았음에도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전세 계약이 끝나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벌써부터 겁이 났다. 주변에서는 지금이라도 빨리 집을 사야 한다고 재촉해왔다. 서울에 집을 사는 한 어찌됐건 집값은 오를 거라고 말이다. 역시 옆자리 차장님은 투자 위험이 높은 각종 재테크를 구상하고 있었고 내게 회사 근처의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를 얻으라고 권유했다.


나는 또다시 뭔가 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 속에서 지역주택조합이 뭔지도 모른 채 홍보관을 방문하고 언제까지 얼마의 돈이 필요한 지 등등을 안내 받았다. 지주택의 위험성을 차지하고라도 사실 나는 계약금을 낼 수 있는 처지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건물이 올라가기 전까지 4~5년이 걸린다는데 대출을 받고 허리띠를 졸라매면 왠지 가능할 것도 같았다. 청약은 복권 당첨에 가깝고 지금처럼 계속 집값이 오르면 내집 마련은 정말 꿈으로 남을 테니까. 결국 마이너스가 찍힌 주식처럼 근심거리가 될 것만 같아 하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지주택에 대한 미련은 꽤 오래도록 나를 사로잡았다.


이렇게 허상처럼 나를 둘러싼 먹고 사는 문제들을 고심하는 사이 몇 달이 흘렀다. 동안 나는 글을 쓸 수 없었다. 당장 먹고 살 일이 급한 마당에 글을 쓰는 행위는 어쩐지 사치처럼 여겨졌다. 게다가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돈을 벌고 어디서 먹고 살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사랑이나 삶의 가치와 같은 것들을 논하자니 스스로가 적잖이 위선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동시에 글을 쓰지 않는 동안 피폐해진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남들이 다 하기 때문이라는 의무감으로 잘 알지 못하는 일들에 뛰어들다가는 무모한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 역시 깨닫게 됐다. 물론 자본주의 시대에 재테크는 필수이고 잘만 활용한다면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설프게 발만 담갔다가는 무방비 상태로 깊이 빠져 들어가 허우적대기 십상인 것 같다.  


오히려 이 혼란의 세계에서 남들 하는대로 좇아가기보다는 스스로에 대해 더 생각하고 내게 설계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스스로를 덜 불행하게 만드는 선택이 아닐까. 차마 팔지 못한 나의 주식은 점점 떨어지고 집값은 계속해서 고공행진 중이다. 먹고 사는 문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를 잠식해갈 테지만 나는 위선적인 스스로를 뒤로 한 채 글을 써야만 한다. 나를 존재하게 하고, 나를 빛나게 하는 그 무언가를 놓아서는 안 된다. 글을 쓰지 않는 동안 찾은 글을 써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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