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어느 한적한 마을에서 고흐가 남긴 작품을 만났다. 그의 작품은 마을 입구와 시청, 성당과 길목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커피숍이며 들판이며 시청을 거쳐 오솔길 옆에 있는 밀밭에서도 그의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었다. 스케치북과 이젤과 화구통을 멘 그가 어디선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고흐는 오베르쉬즈 우와즈라는 작은 마을에서 생을 마쳤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그렸던 작품들이 여러 점 남아있었다. 두 달간 머물렀던 곳은 라부 여인숙이었다. 고단했던 하루하루를 편하게 쉬던 곳이다. 어둡고 삐꺽거리는 좁은 계단을 오르니 열린 문 사이로 그의 방이 보였다. 방에는 나무의자 하나만 덩그렇게 놓여 있었다. 그 쓸쓸한 곳을 봄볕이 창을 비집고 들어와 사선으로 채웠다.
또 다른 방에는 그가 사용했던 침대와 책상이 전부였다. 좁고 낡은 방에서 아픈 몸을 이끌고 그림에 몰두했을 그를 생각하니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야윈 얼굴의 그가 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병마와 싸우며 스케치북과 열애 중인 듯했다. 아픔과 외로움이 동반한 그의 정신세계가 방 곳곳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 같아 가슴이 저릿했다.
아래층에서 그의 그림 몇 점을 훑어봤다. 인간 존재를 포장한 특별한 그림이 아니라 유한하고 불안한 숙명을 지닌 고만고만한 일상을 그린 작품들이었다. 그는 다작의 작가였다. 짧은 생애 동안 수백여 점의 작품을 남겼고, 죽기 전에 딱 한 작품을 팔았을 뿐, 평생 가난에 허덕였고 명예도 못 얻은 작가였다.
그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야윈 얼굴의 사진은 마음 한구석을 저릿하게 했다. 허름한 옷매무새는 지난한 삶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비싸고 좋은 화구(畵具)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좋은 화구를 썼다면 그의 그림은 더 좋았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서 좁은 길로 천천히 내려오자 성당이 보였다. 성당 앞에서 그림 한 점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한쪽 귀를 자르고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했을 만큼 그에겐 삶의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림이 슬프게 다가왔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서 당장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처럼 출렁거렸다.
남루하고 초라했던 이 화가에게도 잠깐이지만 인생을 환하게 반짝였던 봄날은 있었다. 그가 생을 마칠 때까지 남동생과 편지를 주고받던 시절이었다. 동생은 영혼의 동반자였으며 평생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후원해 주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늘 함께 해 주는 이는 형제자매가 아닐까. 내게도 자랑할 수 있는 동생들이 있다. 힘들 때나 행복할 때 반으로 혹은 배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자매들이었다.
고흐는 조카의 방에 걸어 줄 그림을 그렸다. 그 작품이 ‘꽃 피는 아몬드 나무’였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커다란 나뭇가지에 흰색 아몬드 꽃이 만발했다. 꽃은 봄이 오기 전에 서둘러서 피었다. 아니 일 년 내도록 피어서 자신에게 새로운 봄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면서 그린 그림이 아니었을까.
꽃 피는 아몬드 그림은 다른 어떤 그림보다 밝고 경쾌했다. 조카에 대한 사랑과 축복이 가득한 그림이었지만 자신을 향한 메시지였을지도 모르겠다. 고흐의 그림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바라만 봐도 편안했다. 나는 이 그림을 오랫동안 감상했다. 지난한 삶을 살았던 내게 희망의 메시지였고 삶을 어루만질 수 있는 대상이었으며 긍정적인 사고로 이끌어주던 작품이었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그는 예술의 혼을 놓지 않았다. 고뇌에 찼지만 희망을 갈망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두 달 남짓 머물고 갔던 마을을 천천히 걷다 보니 오전이 다 갔다. 골목으로 쏟아지던 햇살과, 창문 앞에 놓인 화분들과 유유자적하던 사람들의 모습은 그의 작품 곳곳에서 살아 움직였다.
천재 화가였지만 그의 삶은 온전히 불행한 삶이었다. 아픔과 가난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하지만 세상을 떠난 후에야 유명해졌다. 그런 그의 작품과 영혼을 만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여들고 있었다.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의 작품 속 마을에서 좀 더 머무르고 싶었다. 몇 달 동안 아니 한 달 그것도 안 되면 하루만이라도 머물면서 그의 그림을 오래도록 느끼고 싶었다. 단 몇 시간만 머물렀던 오베르쉬즈 우와즈라는 작은 마을, 이 마을에는 내 어린 시절 외갓집 가는 오솔길이 있었고, 살고 싶었던 상상의 집도 있었으며, 평온하고 아늑한 그리움이 머물러 있었던 마을이었다.
마을을 등지고 오솔길을 걸어서 나오다 뒤를 돌아보았다. 남루한 옷차림을 한 화가 고흐가 구부정하게 선체로 마을 입구에서 잘 가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나는 답례라도 하는 듯 미소를 머금으며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