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의 표상

by 배꽃


큰아이는 세 살 무렵에 군대에 가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 옆집에 휴가 나온 군인한테 힘들고 어렵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어린아이가 하는 말이니 그러려니 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도 입버릇처럼 군대에 가지 않겠노라며 노래를 했었다. 젊은 선생님의 혈기왕성한 군대 이야기와 가스 체험담을 듣고 겁에 질린 아들은 군에 가지 않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때는 사춘기였으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여겼다.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아이는 방학 때마다 소식이 없었다. 방학이 되면 중국으로, 일본으로, 대만으로 떠났다. 가는 전날 문자만 달랑 남기고 목소리도 들려주지 않았다. 아들이 군대 가기 싫어서 도피한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자는 남자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병역의 의무를 다해야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또 제때 군대 가지 않으면 몇 배나 더 힘들고 고생이 심하다며 걱정해주는 주변 사람도 있었다. 부모로서 답답한 일이었다.

입대할 나이가 한참 지났는데도 아들은 군대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했다. “군대는 언제 갈래” 하고 물으면 알아서 할게요. 하는 대답만 했다. 아들이 하기 싫은 일을 대신하면 답답한 마음이라도 가라앉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들은 대학교 졸업하기 달포 전에 미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여행 가기 몇 주일 전에 면허를 땄고 바로 국제면허로 바꾸었다. 치밀하게 계획도 세우고 여행 준비도 했다. 그때도 아이는 여행 간다는 소식을 하루 전날 알렸다. 나는 여행 걱정보다는 오매불망 군대 걱정만 앞섰다.

아들은 여행하는 동안 차는 렌트해서 다녔다. 낯선 곳에서 적응도 잘했다. 또래의 학생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고 한류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을 만났을 때는 가슴이 벅찼다는 소식만 전해왔다. 그들도 이십 대가 겪는 고민을 자기와 똑같이 하고 있었고 취업 걱정도 매한가지라고 했다.

아이가 여행을 떠난 지 열흘째 되던 날 연락이 끊어졌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고 눈과 귀와 모든 신경은 온통 전화기에 쏠렸다. 문자로 연락을 해도 메일을 보내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며칠 후 아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곳에서 찍은 사진이 카톡 소리를 내며 순서대로 진열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미국 동부에서 서부지역으로 일주를 했다고 한다. 휴대폰이 고장이 나서 연락할 수 없었다며 멋쩍은 웃음 하트를 날렸다.

아이에게 용돈 한 푼 보태 준 적이 없었다. 아이는 학교에 다니면서 행정실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면서 돈을 모았다. 그 돈이 모이면 동분서주하며 세계 각국을 다녔고 다양한 친구를 만났고 인맥을 쌓았다. 그 인맥은 입국하기 며칠 전에 효과를 봤다.

아이는 여행 도중 도시 한복판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다. 낯선 도시에서 돈 한 푼 없으니 앞이 캄캄했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생각나는 친구가 있었다. 중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 미국인 친구들을 만났다. 그 친구들에게 한 명 한 명 연락을 했더니 모두가 미국에 있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 공부를 하거나 여행 중이라고 했다. 한 친구가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주면서 찾아가라고 했다.

아들은 주소를 들고 친구의 친구를 찾아갔다. 낯선 친구의 부모님은 시내 한복판에서 약국을 경영하고 있었다. 인사를 드리고 그날 친구의 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밥 먹을 때도 잠잘 때도 마찬가지였다. 돈 한 푼 없이 얻어먹으려니 면이 서지 않았다. 공짜로 얻어먹고 있어야 하는 아이의 심정을 눈치챈 친구의 부모는 약국의 서류 정리와 청소하는 일을 시켰다.

다음날 아침 식탁에서 친구의 부모님이 너는 일을 했으니 밥 먹고 잠잘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어깨를 쫙 펴고 마음 편하게 머물다 가라고 하셨다. 아이는 그곳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새로운 일꾼이 들어왔냐는 인사도 들었고 반갑다고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미는 사람도 있었고 청소하는데 같이 해 주겠다는 또래의 친구도 만났다. 아마 백인종과 흑인종의 중간인 피부 색깔을 처음 본 사람들의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았을까.

아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허리를 숙여 예의 바르게 인사하니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더란다. 미국에 오면 다시 찾아오라는 친구와 친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약국에서 4일간 머물렀던 아들은 한 달간의 배낭여행을 끝내고 비행기에 올랐다.

“어머니 저 다음 주에 군대 가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합격 통보를 받았다는 뜰 뜬 아들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려왔다. 그 한마디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줄 알았다. 그렇게 가기 싫고, 가지 않겠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이가 입대한다는 소리가 얼마나 반갑던지. 꽉 막혀 있던 논두렁의 물꼬가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아들은 입대를 앞두고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자유분방한 아들이 군대에 가면 재대할 때까지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없으니 무작정 떠났던 것이다.

아들이 군에 들어간 지 벌써 몇 달이 흘렀다. 39개월의 긴 복무 기간을 채워야 제대를 한다. 군대에 가지 않겠다던 어린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의 저 늠름함과 씩씩함은 대조적이다. 제대를 하려면 한참 남았지만 나는 숙제를 끝낸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