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행

by 배꽃

할머니가 동화책을 읽고 있다. 책장을 넘기면서 더듬더듬 한 줄씩 읽어 내려간다. 선녀가 나무꾼을 만나는 장면이다. 가끔, 틀리는 글자가 있었지만 문맥은 거의 틀리지 않는다. 할머니는 책을 읽으면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쳐 낸다. 글자를 처음 대했던 때가 생각나는가 보다.


나는 방과 후 수업으로 독서지도를 할 때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복도에서 목을 길게 빼고 교실을 들여다보는 할머니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단지 교실 안이 궁금해서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할머니의 모습이 창문에 어른거렸다.


할머니는 내가 독서지도를 맡고 있는 아이의 보호자였다. 아들과 며느리가 이혼을 하면서 맡겨진 손자와 단칸방에서 살고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는 그때까지 한글을 떼지 못했다.

생활보호대상자라 학원에 다닐 형편이 아니었다. 관심을 가져줄 사람도 글을 가르쳐 줄 사람도 없는 아이는 제멋대로였다. 할머니는 그런 손자 걱정에 종일토록 그림자처럼 아이를 따라다녔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아이에게 별도로 글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낱말 카드를 들고 알아맞히기 놀이를 했다. 하지만 쉽지가 않았다. 어제 가르쳐 준 것을 오늘 물으면 잊어버렸고 오늘 가르쳐 준 것도 그다음 날 되면 처음 보는 글자가 되었다.

벚꽃이 만발하는 봄날이었다. 할머니는 여전히 까치발을 하고 교실 속의 손자를 훔쳐보면서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나는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손자 옆에 앉아서 할머니도 같이 한글을 배우라고 권했다. 할머니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내가 어찌 글을 배우겠냐고 수줍어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글을 배워서 어디 쓰겠냐며 말끝을 흐렸다. 손자를 마냥 기다리는 무료함도 달래고, 함께 공부하면 아이의 학습태도도 달라질 수 있을 거라며, 무엇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할머니와 손자가 책상에 나란히 앉아서 한글을 배웠다. 칠판에 쓴 글자를 따라 읽게 하고 동화책도 읽어주었다. 공책에 같은 단어를 여러 번 쓰게도 했다. 어떤 때는 노래로 들려주고 다시 나에게 말해 보라고 했다. 같은 이야기는 다른 색깔로도 채색되었고 엇비슷하게 들리기도 했으며 아예 주인공이 바뀌기도 했다.


할머니는 느림보 걸음을 했다. 우리는 대부분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한글을 습득한 글이라서 어려운지 모르고 썼지만 할머니는 학습으로만 익혀야 하는 공부여서 어려워했다. 낱말들을 쓰고 읽고 외웠지만 할머니와 손자는 돌아서면 잊어버렸다. 내심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할머니가 포기하기 않았다. 그 모습에서 수십 년 전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나는 지리 감각이 둔하다. 지리 감각이 둔하다보니 기억도 잘하지 못한다. 여러 번 왔던 길도 처음처럼 낯설다. 하여, 운전할 엄두는 언감생심이었다. 이십 대 초반 어렵게 딴 면허증을 장롱 속에 넣어둔 채 수십 년 동안 잊고 살았다. 불혹의 중반을 넘어서 운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왔다.

남편이 시작하는 새로운 일을 도와야 했고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시간에 쫓겨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학생들보다 교실에 늦게 도착한 날이 많아지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겁이 많았고 거리 감각이 둔해서 운전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 지었던 스스로의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처음 한글을 배울 때처럼 쉽지 않았지만 나도 ‘시작하면 된다.’는 무언의 작심을 했다.

몇 번의 망설임을 뒤로한 채 운전석에 앉았다. 심장이 콩닥콩닥 다듬이질 쳤다. 열쇠를 든 손도 떨려왔다. 잠시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시동을 걸었다. 핸들을 꼭 쥐고 천천히 움직였다. 조마조마한 마음에 자꾸만 몸이 경직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지나 않을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가는 길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았다. 뒤에서 빵빵대는 소리마저 무시한 채 오로지 앞만 바라보았다.


초행길, 천신만고 끝에 동네 한 바퀴를 돌아 집에 도착했을 때 기분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마음의 긴장이 완화되자 거리의 모습들이 달라 보였다. 차창 밖 사람들의 생기 있는 얼굴 표정이 보였고 나무들과 사물들의 싱그러운 모습도 보였다.


새로운 세계가 나에게 달려왔다가 지나갔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은 변화였다. 한 꺼풀 벗겨진 양파 같았다. 차와 차 사이의 깜박이는 신호로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 같아 감회가 새로웠다. 할머니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글자를 깨우치면서, 입으로만 전해 듣던 이야기가 텔레비전을 보는 것처럼 눈앞에서 생생히 펼쳐지는 기분일 것이다.


글을 읽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리듬이 실린다. 집을 나간 며느리가 생각났는지 숨겨놓은 선녀 옷을 내주는 문장에서는 한숨을 내 쉬기도 하고, 두레박을 타는 나무꾼의 모습에 안도의 숨을 몰아쉬기도 한다.


평생 까막눈으로 지냈을 할머니가 글을 깨우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엿보는 순간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글을 터득한 할머니에게 찬사를 보낸다. 할머니와 아이의 글 읽는 소리가 화음을 이룬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소외되지 않고 소통될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