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겨울이 일터의 유리창 안까지 들어섰다. 찬바람에 뼈마디까지 에이게 하는 날씨다. 나뭇가지마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 바람은 내가 앉아 있는 일터로 들어와 차가운 공기를 만든다. 남편이 태평양 건너 일주일간 출장을 갔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늦은 시간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오니 몸보다 마음이 더 춥게 느껴진다. 퇴근을 하고 어디를 갈까 망설인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
오늘은 일터 근처에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다. 사람들이 왁자지껄 부산하게 움직이는 장에 도착했다. 시장은 활기찬 모습이다. 축 처져 있던 나는 생기 있게 움직이는 시장 사람들의 모습에 덩달아 활력이 생긴다.
“맛있는 귤 사이소.” 새콤달콤한 서귀포 귤 사 가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온다. 내 앞에 있는 여자는 귤 한 상자 먹고 나면 내년 봄까지 거뜬하게 이길 수 있단다. 걸렸던 감기도 달아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입담이 좋아서인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잘도 사 갔다. 얼떨결에 나도 귤 한 상자를 샀다. 간고등어도 두어 손 들었다.
집으로 오던 길에 갑자기 시어머니 생각이 떠올랐다. 늘 그렇다. 어머님은 언제나 마지막이다. 남편과 아이들 다음으로 생각나는 것을 보면 어쩔 수 없는 며느리인가 보다. 어머니를 떠올리다가 차를 돌려 시골로 향했다. 버드나무 가로수들이 앙상한 가지만을 남긴 채 스산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둑해진 길을 따라 달렸다. 벚나무 길을 굽이굽이 돌았다. 운문댐이 나타났다. 물속이 훤하게 보였다. 유난히 가물어서 그런가 보았다.
내가 시집오던 해 어머니는 환갑이었다. 앞가르마를 단정하게 빚어서 비녀를 꽂고 계셨다. 젊은 친정어머니에 비해 시어머니는 할머니였다. 문제는 호칭에 있었다. 내 입에서는 ‘어머니’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입 주변에서만 맴돌 뿐 입 밖으로 세어 나오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어머님이라 부를라치면 외할머니가 먼저 떠올랐다. ‘어머니’ 하고 불렀던 것은 그 후에도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입에 올릴 수 있었다. 그런 죄스러움 때문에 더욱더 어머니에게 어리광을 부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시집오기 전까지 밥 한 번 지어 보지 않고 왔다. 친정어머니가 스무 살 갓 넘어서 나를 낳았으니 맏딸인 나는 젊은 어머니 덕분에 손에 물 한 번 넣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줄 몰랐고 음식을 맛깔스럽게 만들 줄도 몰랐다. 요리하는 것을 시어머니에게 배웠다. 된장찌개와 밑반찬 만드는 것과 국을 끓이는 방법도 어머니의 어깨너머로 배운 솜씨였다.
어쩌다가 우리 집에 오시는 날이면 어머니를 가만히 쉬게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는 김치가 제일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러면 어머니는 가만히 계시지 않고 시장에 가셔서 배추를 사고 절여서 김치를 담가주셨다. 내가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만 던져도 어머니의 손은 마술사가 되었다. 찌개를 끓여주셨고 손수 다듬어 씻고 끓이고 볶아서 어떤 요리든지 척척 만들어 내셨다. 어쩌면 그건 나의 영악한 의도였다.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서 어머니에게 더 가까이 가려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평화로운 기운이 감돌았다. 어느새 운문댐의 상류 마을에 도착했다. 저 멀리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댐 입구에 들어설 무렵 어머니께 들르겠다고 전화를 드렸더니 미숙한 운전에 걱정이 되었는지 마을 입구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어머니는 동네 어른들과 마을 회관에서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마침 저녁 준비로 동네 어르신들이 바쁘게 움직이셨다. 차에 실린 귤 한 상자와 고등어와 찬거리를 어머니에게 건넸다. 회관에서 동네 어른들과 같이 드시라고 했다. 잠깐 다녀가는 나를 어머니는 길게 따라오셨다. 골목 끝까지 따라 나오신 어머니가 갑자기 추워 보였다. 드러난 목이 허전하게 보였다. 나는 목에 둘렀던 목도리를 풀어서 어머니에게 감아 드렸다.
“추운데 너나 따뜻하게 하고 다녀라.” 어머니가 얼른 목도리를 풀려고 하자 나는 어머니 목에 다시 둘러 드렸다. 나의 체온이 전달된 느낌이었다.
목도리는 지난해 겨울 지인에게서 받은 선물이었다. 추위를 타는 나를 위해서 손수 뜨개질을 한 것이다. 예쁘다며 사람들이 번갈아서 탐을 냈지만 그때마다 사양했다. 목도리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어머니였다.
남편과 아이들이 내 품에서 잠시 벗어났는데도 보고 싶은데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그리움으로 사셨을까. 시아버지께서 세상을 일찍 떠나시고 자식들은 모두 분가를 했다. 홀로 계신 어머니는 얼마나 적적하고 외로웠을까. 오직 자식만을 위해서 한평생 사셨던 어머니셨다.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이제야 헤아리게 되니 나는 참으로 철없는 며느리로 살아왔나 보다.
아비가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면 들르겠다고 인사를 하고 천천히 차를 몰았다. 거울 속에 비친 어머니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모퉁이를 돌 때까지 어머니는 아직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서 계셨다. 마을 입구를 빠져나오니 결혼하기 전 처음 남편을 따라 이곳에 왔을 때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생각났다. 그때 어머니는 내가 춥게 보였던지 당신 목에 하고 있던 목도리를 나에게 감아 주셨다. 나는 아직도 그 목도리를 가지고 있다.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게 하던 따뜻한 목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