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농사를 짓다

by 배꽃

결혼한 이듬해부터 나는 농사꾼이 되었다. 그것도 한여름 땡볕에서 일을 하는 과수 농사를 지었다. 배 농사만 이십 년 넘게 짓다가 몇 년 전부터 복숭아와 포도 농사도 짓게 되었다.


어느 날 같은 마을에 사는 아저씨가 과수원에서 일을 하다가 쓰러졌다. 뇌출혈 판정을 받은 아저씨는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아줌마는 혼자서 그 많은 일을 할 수 없다며 울먹였다. 나는 아줌마의 허전한 속내를 들어주다가 얼떨결에 어깨의 짐을 반으로 나누어지기로 했다. 밭이 어디 있는지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 따지지도 않고 복숭아 농사를 짓겠다고 덜렁 달려들고 말았다.


이른 봄 복숭아밭으로 달려갔다.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땅만 밟고 왔다 갔다 하다가 나무를 올려다봤다. 나무의 절반은 고목이었다. 물기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오래된 나무를 뽑아내고 한 살배기 어린 나무를 심었다. 그러면서 마을 사람들이 일하는 곳을 기웃거렸다.

전지를 하고 적과 하는 인부들을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일을 배웠다. 이웃들의 복숭아를 따 주면서 농사짓는 이야기와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들었다. 일을 거들면서 시골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밤낮으로 뛰어다녔다. 낯선 농부들 틈에 끼어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무리가 되었다.


복숭아 농사를 짓기 전까지는 꽃 피는 아름다움과 열매를 사 먹는 즐거움만 알았다. 우리 땅을 살리고 자연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흙을 알아야 제대로 된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농부가 되면서 알게 되었다. 땅을 살리기 위해서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예초기로 풀을 깎았다. 풀은 제자리에서 썩어 다시 퇴비로 태어났다.


복사꽃이 피었다. 지난겨울 폭설과 한파가 유난히 잦았다. 꽃 피는 4월까지 맹추위는 머물렀다. 서리를 맞은 복사꽃은 수정이 되지 않고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드문드문 달려 있는 빈 가지의 열매를 올려다보니 허허로웠다. 그 와중에 잘 익어 가던 열매가 몰아친 태풍으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모습은 황망하기만 했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최후의 수단으로 안 되면 농사나 짓지 그렇게들 말한다. 턱도 없는 소리다. 농사야말로 종합예술이다. 공부를 하면서 지어야 했다.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땅과 소통을 해야 했다. 수없이 나의 발자국을 들려주면서 어떤 병충해에 걸렸는지도 찬찬히 둘러봐야 알 수 있었다.


복숭아를 처음으로 수확하는 날이었다. 밭에 들어서니 복숭아 향이 진동을 쳤다. 탐스럽게 익은 모습만 봐도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맹추위를 이겨내고 태풍에도 끄떡하지 않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복숭아가 대견했다. 한 손은 복숭아를 따서 상자에 담고 벌레 먹은 복숭아는 다른 손으로 따서 내 입으로 가져왔다. 향긋한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무니 큰아이를 낳았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첫아이를 낳고서 환자처럼 누워 있었다. 심했던 입덧으로 아이를 낳고서도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날씨는 쇳덩어리도 녹일 만큼 더웠고 입맛 또한 잃어버려서 사경을 헤맬 정도였다.

그날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남편은 새벽같이 출근을 했고 나는 여전히 물 한 모금도 넘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젖을 빨고 있던 아이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배고프다고 칭얼거리다가 드디어 해악을 질렀다. 그러다가 지쳐서 늘어져 있는 아이를 보자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어르고 달래도 아이는 배고픔을 참지 못했고 목소리마저 잠겨 들었다.


아이를 끌어안은 나는 가슴이 아려 왔다. 그때 시골에서 친정어머니가 연락도 없이 불쑥 나타났다. 똬리를 받친 보따리를 머리에 가득이고 양손에는 봉지를 든 채 대문을 들어섰다. 어머니를 보자 안고 있던 아이는 바닥으로 내려놓고 어머니 품에 안겨 참았던 눈물을 하염없이 토해 냈다.


어머니가 바리바리 싸 오신 보따리에는 여러 가지 밑반찬이 봉지 가득 들어 있었다. 그중에서 단물이 철철 흐르는 복숭아 향기가 내 코를 벌름거리게 했다. 복숭아 향기는 방 안 가득 퍼져 나갔다. 허기져 있던 나는 복숭아를 끌어안고 그 자리에서 복숭아 한 봉지를 다 해치웠다. 너무나 달콤했다.

하루 이틀 삼일, 그해는 매일 껍질을 벗겨낸 복숭아를 먹어 댔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복숭아를 실컷 먹고 나니 잃었던 입맛이 돌아왔고 미역국도 조금씩 먹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허기가 채워졌고 아이에게 젖을 물릴 수 있었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언제쯤 자신의 꿈을 향해 떠날 수 있을까 손꼽았는데 어느새 내 품에서 벗어나 저희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 떠났다. 아이들은 꿈을 위해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났고, 나는 농부가 되어 그 길을 걷고 있다.


올봄에도 복사꽃이 필 무렵 냉해가 왔다. 동해와 서리 피해로 농민들의 걱정이 태산이다. 꽃이 지고 나면 열매가 맺는데 쭉정이가 반 이상이다. 하지만 지금 피는 복사꽃은 봄 햇살과 따뜻한 온기를 마시며 활짝 피어서 너무나 예쁘다. 지금은 복사꽃의 계절, 복사꽃 보면서 꽃놀이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