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고등학교 삼 학년인 둘째 아들의 담임선생님의 전화였다. 선생님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아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마음이 바빠져서 선생님의 인사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내 머릿속은 온통 나쁜 일로 상상이 앞장을 섰다.
며칠 전이었다. 아들은 점심시간에 같은 반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농구를 했다. 한참 동안 공 따라 뛰다 보니 온 몸이 땀범벅이 되었다. 한 친구가 링을 향하여 공을 던지는 순간 발을 엎질렀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발목에 금이 간 친구는 옴짝달싹 하지 못하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다음날 그 친구는 깁스를 하고 등교를 했다. 두 발로 걸어 다녔던 친구는 깁스한 발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특히 화장실을 갈 때 누군가 데리고 가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체구까지 작아서 키 큰 목발을 하고 다니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문제는 점심시간이었다. 아들의 교실은 4층이었다. 점심을 먹으려면 4층에서 1층까지 내려와서 다른 건물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을 해야 했다. 깁스를 한 첫날, 친구는 점심을 굶었다고 한다. 그 사실을 몰랐던 아들은 다음날부터 친구의 손과 발이 되었다. 남자학교의 점심시간은 악어가 먹잇감을 보며 물을 헤집고 가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학교 선생님인 친구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한 치 양보도 없다고 했다. 서로 부딪혀 넘어지기도 하고 먼저 먹겠다고 아우성을 치기도 한다며 돌도 씹어서 삼킬 정도로 배가 고픈 나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남학교의 학생들은 다루기가 힘들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아들도 먹는 것에 목숨을 걸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달리기 선수처럼 뛰어가서 먼저 먹겠다고 줄을 섰다. 그런 아들이 밥을 빨리 먹기 위해 뛰어가는 것을 포기했다. 다친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목발을 짚은 친구는 4층에서 1층까지 내려오는 것을 힘들어했다. 계단을 하나씩 밟는 게 둔해서 잘못하다가는 넘어질 기세였다. 친구를 부축해서 가던 날은 줄을 서는 곳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보다 못한 아들이 친구를 업고 오르내리길 반복했다. 다른 친구들이 벌떼처럼 줄을 서기 위해서 뛰어갈 때 아들은 친구를 등에 업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섰다. 식당에 도착해 친구의 밥과 자신의 것을 양 손에 받아서 같이 식사를 하고 뒷정리까지 했다.
친구를 엎고 계단을 오르내린 지 며칠 째 되던 날이었다. 아들은 그날도 친구를 업고 4층 계단을 내려오던 중이었다. 한 발 두 발 내딛는데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졌단다. 순간 오른발을 헛디뎠는데 왼발도 중심을 잡지 못한 채 그대로 나뒹굴었다. 누가 보면 둘이 싸우다가 굴러 떨어진 것 같았다. 업힌 아이는 다행히 다친 곳이 없었다. 둘째는 무릎과 팔꿈치가 피가 범벅이었고 온 몸이 멍들어서 집으로 왔다.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은 미안함과 고마움 때문이라고 하셨다. 우선은 무릎 다친 것이 걱정이 되었고 한편으로는 찢어진 교복 바지 때문이었다. 친구를 도와주다가 팔꿈치와 무릎 깬 것도 속상한데 교복 바지가 입지 못할 정도로 다 헤어졌단다. 얼마 남지 않은 학교생활에 바지를 다시 구입하는 문제 때문에 전화를 한 것이다. 부모의 입장을 헤아린 선생님의 마음이 전화를 하게 했던 이유였다.
선생님은 부드러움으로 아이들을 이끌어 주시는 분임에 틀림없다. 교육이 어디 강하게 나간다고 되는가! 회초리를 든다고 말을 듣는가 말이다.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긴다고 했다. 감동이 일렁이는 부드러운 말을 사용하고 마음으로 눈빛으로 전달해도 다 알아차릴 아이들이다. 그런 마음으로 교육을 한다면 그게 바로, 올바른 교육이 아닐까.
학교에서는 폭력이니 왕따니 하는 문제가 사회문제로 아우성이다. 친구 간에 우정이 존재하기보다 경쟁사회로 휘몰아치고 있다. 공부만 잘하면 뭐든지 용서가 되는 세상이 아닌가!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공부 잘하는 아이는 너는 그럴 아이가 아니라고 뭐든지 용서를 해 준다는 선생님도 있다고 한다. 공부보다는 인성을 더 소중하게 다루는 선생님이 고마울 따름이다. 아이들의 마음에 감성을 불어넣어 주고 다정다감한 말 한마디 건넬 수 있는 선생님이 있는 한 우리 교육은 살아 있음에 분명하다.
그날 집에 돌아온 아들은 선생님께 야단과 칭찬을 동시에 들었다고 한다. 계단에서 업고 다니다가 큰 사고가 날까 봐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도 친구를 위하는 고마워하는 마음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 선생님을 아들은 존경한단다. 그 말을 듣는데 코끝이 시큰거렸다. 선생님과 통화를 끝내고 전화기를 놓는 순간 아들에 대한 듬직함에 미소가 지어졌다. 또한 선생님의 다정한 모습이 떠올라 흐뭇한 마음이 번져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