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친구 1

여자들의 수다

by 배꽃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계절 인사를 시작으로 우리의 대화는 이어졌다. 평소에 말이 없던 친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인터넷을 통해 만난 어떤 여인과의 사연을 실타래처럼 풀어놓았다.


어느 해 가을, 친구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눈길을 붙드는 글을 만났다. ‘외롭다’는 제목의 글이었다. ‘나는 살기 싫다. 나는 세상만사 모든 게 싫다.’ 이건 분명 자살을 암시하는 글이었다. 친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장난으로 쓴 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글을 읽고 모른 척할 수 없어서 댓글을 달았다. 그녀는 친구보다 네다섯 살쯤 많은 여자였다. 멀고 먼 타국에 살고 있으며 너무나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고 했다. 무엇보다 주변에 의지할 이웃이 없어서 삶의 의미를 잃은 것 같았다.


“제발 목숨을 소중히 하세요. 제가 당신의 영원한 친구가 되어 드릴게요.” 친구는 댓글을 달았다. 덧붙이는 글에 자신의 전화번호와 메일 주소까지 달아 놓았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전화가 걸려왔다. 네덜란드에서 온 그녀의 전화였다.


전라도가 고향인 그녀 부부는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결혼을 하자마자 남편이 해외지사로 발령이 나서 네덜란드로 떠났다. 낯설고 물설었지만 아이 셋을 낳았고 모두 제짝을 찾아 부부 곁을 떠났다. 외로움은 어느 순간 찾아왔다. 고향이 그리워 한국에 오고 싶었지만 따뜻하게 맞아 줄 연고가 없었다. 한국사람 누구와도 소통을 나누고 싶었지만 손을 잡아 주는 이는 없었다.


친구는 십여 년 동안 그녀와 메일을 주고받았다. 오랫동안 연락을 하다 보니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일거수일투족 알게 되었다. 친구의 관심과 배려 덕분에 그녀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한 달에 두서너 번 갈 정도로 병원에 자주 들락거렸지만 일 년에 한두 번 찾을 정도로 좋아졌다. 네덜란드의 그녀가 버티고 있는 힘이 메일로 보낸 친구와의 소통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는 친구의 초청으로 대구에 와서 며칠을 머물다 갔다. 그녀는 몇십 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고 시장 난전에 앉아서 칼국수와 수제비를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나에게도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던 친구가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충남 서산 반도로 전근을 가셨다. 선생님은 그 학교 아이들과 우리 반 아이들에게 편지 교류를 맺어 주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친구에게 편지가 왔고 나도 답장을 보냈다. 사춘기를 보내며 오랫동안 편지는 이어졌다. 여고를 졸업하고 그녀는 상급학교로 진학을 했고, 나는 도시로 나와 취업을 했다. 그러면서도 소식을 끊지 않고 연락을 주고받았다.


어느 해 봄날이었다. 그녀는 피곤이 겹치며 몸이 앓고 있다고 했다. 일상생활에 자신감이 없어지면서 학교도 그만두고 고향에서 보낸다는 글을 보내왔다. 그때가 그녀에게서 가장 많은 편지를 받았다. 그녀는 일기 쓰듯이 편지를 써서 보내왔다.


그녀가 방안에 누워있는 날이 많아지면서 편지는 뜸해지기 시작했고 슬픔이 가득한 글이 간헐적으로 전달되어 왔다. 그즈음 나도 회사의 바쁜 업무로 자주 소식을 보내지 못했다.


어느 날 그녀의 편지에서 걸어 다니지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다고 했다.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옴짝달싹할 수도 없었다.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더 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며 슬픔이 가득한 글을 보내왔다. 그러면서 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만나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먼 곳에 있는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의 처음 본 얼굴은 너무나 끔찍했다. 사진으로 보내왔던 모습이 아니었다. 한창 꽃 피는 나이, 미소를 함빡 짓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얼굴보다 더 큰 혹이 턱 밑에 붙어 있어서 눈 뜨고는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얼굴보다 더 큰 암 덩어리가 붙어있었다. 후두암에 걸려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그녀는 의식이 왔다 갔다 할 정도였다.


눈물이 쏟아졌다. 그녀와 편지를 주고받았던 수 십 년의 시간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슬프고 즐거운 순간을 편지와 함께 했던 그녀였다. 그녀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누런 종이 위에 떨리는 손으로 뚜벅뚜벅 글을 썼다. 멀리까지 와 줘서 고맙다는 단 한 줄이었다. 꽃다운 나이 스물네 살에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우리의 인연은 끝이 났다.


오랜만의 모임은 숙연해졌다. 친구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가 내 이야기는 숙연해지기도 했다. 이번 모임은 메일과 편지의 역할이 얼마나 큰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어느새 어둠이 골목 안 곳곳으로 스며들었다. 다음 모임에 만나자는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