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을 짓고 입주하는 날이다. 막냇동생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을 많이도 해 왔다. 떡을 접시에 담아서 이웃 분들에게 나누어 드렸더니 모두가 맛있다며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한다. 시루떡 한 조각을 떼어내서 한 잎 베어 먹으니 어렸을 적 떡과 실랑이하던 생각이 나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뭇잎이 물들어가는 어느 해 늦가을이었다. 골짜기에서 시작한 어둠은 어느새 앞마당까지 파고들었는데 재 너머 골짜기 밭에 일하러 가신 부모님은 소식이 없었다. 동생과 나는 삽짝에 앉아서 부모님을 기다렸다. 다섯 살, 네 살이었던 우리는 사슴처럼 목을 길게 빼고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동생이 배고프다며 칭얼거렸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먹을 것을 찾았다. 국수를 해 먹겠다고 갈아 놓은 옥수수 가루만 눈에 띄었다. 전날, 밤이 이슥하도록 마주 앉은 부모님은 맷돌에 옥수수를 갈았다. 가라앉힌 앙금으로 올챙이국수를 쑨다며 준비해 놓고 간 흔적만 보일 뿐이었다.
칭얼거리는 여동생에게 조금만 기다리자고 했다. 그때, 옆집 아줌마가 시루떡 한 접시와 탕 한 그릇을 가져왔다. 전날 밤, 제사를 지냈다고 했다. 밭에 일하러 가신 부모님은 곧 돌아올 테니 기다리지 말고 요기를 하라며 떡 접시를 건네주었다.
접시에 담긴 떡을 보고 있으니 군침이 돌았다. 먹고 싶었지만 침만 꿀꺽 삼켰다. 팥고물을 살짝 떼어서 입으로 가져가니 달싹한 맛이 살살 녹았다. 더 먹고 싶었지만 손이 오그라들었다. 동생과 나는 떡 접시를 방바닥에 놓고 눈요기만 했다. 배는 점점 고파왔지만 떡을 먹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귀한 것이 생기면 어른이 먼저 드시고 난 다음에 우리가 먹어야 한다고 일렀기 때문이었다.
땅거미는 더욱 짙어 갔다. 드디어 부모님이 돌아오셨다. 엄마는 콩 타작하던 것을 남길 수 없어서 마저 끝내느라 늦었다고 했다. 두 분은 많이 지쳐 있었다.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동생은 눈치도 없이 접시에 담긴 시루떡을 내밀며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같이 먹자고 했다.
뒷간에 볼일 보러 가신 아버지는 한참이 된 것 같은데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떡을 바라보고 있자니 군침은 넘어가고 배 속에서는 꼬르륵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기다림을 참지 못한 나는 떡 접시를 들고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동생은 뒤따라왔다. 화장실 앞에 도착한 우리는 합창을 했다.
“아버지, 떡 드세요.” 에헴! 아버지는 “너희들 먼저 먹어라.” 아버지의 목소리에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평소 아버지의 자상한 목소리가 아니라 지치고 힘없는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다. 우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떡 접시를 들고 집 안채로 향했다.
늦가을의 산동네는 어둠이 짙게 깔렸다. 캄캄한 어둠 속을 걷던 나는 돌부리를 보지 못하고 떡 접시와 함께 넘어지고 말았다. 검은 고무신은 고무신대로 떡 접시는 접시대로 떡은 떡 대로 내동댕이쳐졌다. 게다가 무릎에는 피가 철철 흘렀다.
"앙. 내 떡!" 나는 떡을 외쳤다. 접시는 두 동강이 났고 떡은 흙 위에 이리저리 흩어져서 찾기가 힘들었다. 나는 엉엉 울면서 떡을 찾았다. 무릎에 피가 나는 아픔보다도 어머니한테 꾸중 들을일 보다도 떡을 먹을 수 없다는 것에 눈물이 났다. 흙을 털어내고 깨어진 접시 위로 떡을 주워 담았다. 그 사이에 동생은 얼마나 먹고 싶었던지 흙이 묻은 떡을 꾸역꾸역 씹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께 떡을 먼저 보이고 먹어야지." 나는 동생이 먹지 못하게 쥐고 있던 떡을 빼앗았다. 그리고는 먹고 있던 떡을 뱉으라고 했다. 동생은 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엉엉 울었다. 입속에 있던 떡이 우는 바람에 바깥으로 다 내다보였다. 떡을 뱉으라고 하자 동생은 그 큰 덩어리를 꿀꺽 삼켰다.
그날 저녁 삼킨 떡이 체했는지 동생은 열이 펄펄 끓고 배가 아프다고 밤잠을 설쳤다. 엄마와 아버지는 동생이 보채는 바람에 한숨도 주무시지 못했다. 동생 걱정이 되었던 어린 나도 잠이 오지 않던 밤이었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동생이 잘못되지 않을까 가슴을 졸였다. 아픔을 호소했던 동생은 멀건 죽만 입에 축였을 뿐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허약한 몸이 더 앙상하게 보였다. 그 후 나는 시루떡만 보면 체하는 습관이 생겼다. 먹지 않고 보기만 해도 동생 생각에 목이 매여 왔다.
동생은 요즘도 떡을 잘 먹는다. 그때의 기억이 없는지 게 눈 감추듯 떡 한 접시를 후다닥 해치운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네 살이었던 어린 동생을 생각할 때면 눈물이 핑 돈다. 떡 한 조각을 떼어 낸다. 팥고물이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딱 붙어서 오도 가도 않는다. 물을 한 모금 마신다. 팥고물이 목구멍을 타고 스르르 녹아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