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숙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전갈을 받았다. 영정 속 무표정한 숙모님의 모습은 바라보는 내 마음이 그래서인지 얼굴에는 잿빛 구름이 한 겹 더 깔린 것처럼 보였다. 숙모님이 웃는 얼굴을 본 기억이 없다. 표정이 없으니 가까이 다가서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말투까지 거칠게 느껴졌다. 명절이나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 인사를 드려도 데면데면할 뿐이었다.
숙모님이 살고 계시는 근처에 오 남매인 사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그들은 모두가 집에 자주 들러서 효를 다하는 것 같아 기특했다. 그중에서도 막내딸은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의 모든 생활을 맡아서 했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내리사랑은 조건이 없지만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치사랑은 조건이 있었다. 숙모의 막내딸이 그랬다. 막내는 숙모가 가장 의지하는 자식이었다. 돈이 없으면 돈을 달라고 했고 크고 작은 일이 일어날 때마다 막내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막내딸이 다른 자식에 비해서 자유롭고 편하다는 게 이유였다. 막내딸은 엄마가 부르기만 하면 언제든지 달려갔다. 숙모의 허전한 속내도 들어주었고 다른 자식들에게 말 못 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막내는 숙모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마음이 허해왔다. 모든 것을 다해 주고도 고맙다는 말은커녕 늘 돈이 없다는 투정만 부렸다. 일이 끝나고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숙모님에게 들렀다가 집으로 가곤 했는데 갈 때마다 듣기 싫은 소리만 해서 속이 상했다.
숙모님은 자식들에게 살갑게 대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타고난 성격이 그랬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새어머니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끔 어렸을 적 숙모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음이 짐작하고도 남았다. 사랑 한 번 받지 못하고 살았으니 사랑하는 것 또한 서툴렀다. 자식들은 어렸을 적부터 살가운 엄마가 아니고 무뚝뚝하고 무관심한 모습으로만 인지되었다. 그렇다고 남들에게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이웃이었다.
숙모님이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이었다. 막내딸은 숙모님이 세상을 뜨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할 말이 없냐고 물었다. 숙모님은 입을 꼭 다문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딸이 숙모님의 손을 움켜쥔 채 한 번 더 여쭈었다. 실눈을 뜨고 입은 달싹거렸지만 끝내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았다. 막내딸은 너무나 속상했다.
“이제까지 미안하고 고마웠다.” 딱 한마디 듣고 싶었다. 수십 년 동안 아픈 어머니의 손발이 되었던 그녀가 언제든지 부르면 모든 일 제쳐놓고 달려가 부모님을 모셨던 자신에게 딱 한마디는 할 줄 알았다. “미안하고 고맙다.” 이 말을 듣고 싶었는데 끝내 숙모님은 입을 열지 않았다. 장지에 따라가면서도 화장하는 중에도 제일 서럽게 울던 자식은 막내딸이었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지 못해 몇 번이고 세상이 떠나가듯 통곡을 했다.
내가 숙모님을 처음 뵌 것은 남편과 내가 결혼식을 앞두고 양가 상견례 자리에서였다. 그때 숙모님은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던 것 같다. 큰 덩치와 우락부락하게 생긴 얼굴이 어렵게만 느껴졌다. 상견례하는 날 숙모님이 나온다는 말은 없었는데 의아했다. 조카가 결혼하는데 숙모까지 나서서 혼수가 시원찮다고 들썩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실반지 나누어 낀 걸 돌려주고 싶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 없는 살림이니 혼수를 생략하고 있는 돈 긁어모아서 전세를 마련하자고 했기에 그러 마하고 약속했던 터였다. 그 속내를 숙모님이 알 턱이 없었다. 시골에서 어렵게 도시의 대학까지 나온 조카에게 예단을 많이 하지 못한 질부인 내가 못마땅했을 것이다.
며칠 후 숙모가 살고 있는 B도시로 찾아갔다. 혼수를 많이 하지 못한 내가 무조건 잘못했다는 용서를 빌었고 결혼해서 시어른들께 잘하면서 살겠다는 인사를 드렸다.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내가 편하자고 했던 걸음이었다. 하지만 숙모를 뵐 때마다 첫 만남을 가졌던 좋지 않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숙모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찾아갔다. 침대에 누워 계시더니 잠시 눈을 뜨면서 “왔나.” 한마디 하고는 다시 침대에 누우셨다. 그러고는 우리가 떠나올 때까지 계속 눈을 감고 계셨다. “질부야 미안하다. 그때는 내가 생각이 짧았다.” 나도 그 말 한마디 듣고 싶었다. 하지만 숙모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나는 죽음을 맞이했을 때 실타래처럼 엉킨 마음은 풀고 가고 싶다. 그래야만 남은 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 있겠다. 이 세상에 왔다가 저 세상으로 가면서도 끝맺음을 잘하고 가는 게 남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음 아프게 했던 응어리를 덜어주고 떠난다면 아름다운 마무리가 되지 아닐까. 하지만 숙모님의 입장에서는 그 기억은 퇴색한 지 오래되었고 기억조차 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장지에서 사진 속 무표정한 얼굴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