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산책은 힘들어
요즘 같은 날씨는 정말 산책하기 좋은 날씨다. 하루 종일 24시간 그 어느 때 나가도 부담 없이 선선하게 산책을 할 수 있다. 5월 말 직장을 그만두고 가장 먼저 챙겼던 것은 시키의 산책이었다. 태어난 지 10개월이 넘어가면서 점차 실내 배변 횟수가 줄기 시작했다. 때마침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시작되면서 오전에 짧게 20분 정도 배변 산책을 다녀올 수 있었다. 이왕 나온 김에 산책을 더 하면 좋으련만, 재택근무도 엄연히 근무인 만큼 오랜 시간을 나가 있을 수가 없어 들어가기 싫다는 애를 억지로 끌고 올 때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빨리 대변을 보지 않으면 내 마음은 더 불안해진다.)
5월에 직장을 그만두고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시키와 마음껏 산책하기였다. 업무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산책하는 것이 소박한 나의 꿈이었다. 그러나 날은 점점 더워졌고, 산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더운 여름날 대낮에는 강아지 산책을 피하는 것이 좋다. 인간보다 기본적으로 체온이 높고 땀 배출도 혀와 발바닥으로 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열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네발로 다니다 보니 인간보다 바닥으로부터 열을 받는 표면적이 넓어 피하는 게 좋다. 그렇다 보니 낮시간을 피해 매일 오전, 저녁에 산책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백수로서 늦잠은 특권이기에 늦게 일어난 적이 많았다. 11시부터만 돼도 이미 세상은 후끈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배변은 해야 하고, 시키는 더워도 산책이 더 좋은 아이라 미안함과 더위로 인한 두려움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갖고 산책을 나간다. 역시나 덥고 시키도 얼마지 않아 헥헥거린다. 하지만 절대 집에 들어가려고 하지는 않는다. 마치 '더워 죽어도 내가 밖에서 더워 죽고 말지 집에는 안 간다' 식이다.
한 번은 한강을 다녀온 적이 있다. 너무 늦지 않은 오전에 출발했는데, 한강에서 다른 친구랑 강아지랑 좀 놀고 돌아오느라 해는 어느새 중천에 떠있었다. 시키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다 말고 갑자기 멈추더니 누워버렸다. 어르고 달래 조금만 더 가자고 하여 좀 더 가는 듯했으나 그새 또 누워버린다. 안을 수도 없고(안는 건 또 정말 싫어한다) 끌고 갈 수도 없어 도보 위에 널브러져 있는 채로 내버려두었다. 인적이 드문 곳이었는데, 한 어머님이 지나가시다가 시키를 보고 걱정이 되셨는지 오셔서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솔직하게 '너무 더워서 이렇게 하고 있어요'라고 하시니 껄껄 웃으시며, '난 또 어디 아픈지 알았지'하면서 가던 길을 가셨다. (이렇게 따스하게 챙겨주시는 분이 있다니 너무 감사했다) 이 후로 절대 애매한 시간에는 한강을 가지 않는다.
다행히도 이번 여름 산책을 슬기롭게 보내는 법을 배웠다. 산책을 하다가 돌아갈 때쯤에 항상 편의점에 들린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고 바닥은 차디찬 곳을 시키는 매우 좋아한다. 들려서 나는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으며 더위를 식히고 시키도 물 한잔 마시면서 바닥에 널브러져 한껏 시원함을 느낀다. 그 이후로 시키는 절대 편의점을 지나치지 못한다. 요즘 같이 선선한 날에도 건너편에서 편의점만 보이면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편의점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간다. 그래서 먹을 게 없어도, 살 것이 없어도 나는 편의점에 가서 지갑을 연다.
시키 덕분에 이번 여름에 참으로 많이 탔다. 장마, 태풍으로 인해 덥지 않은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내 기억에 이번 여름은 너무나 덥고 습했다. 모기도 정말 많았고 많이 물렸다. 내년 여름에는 아마 다시 회사를 다니고 있을 거 같은데, 우리 시키 산책은 어떻게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