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회계장부를 통해 본 판매심리
타짜는 화투에 관한 영화다. 꽃 화(花), 싸울 투(鬪) 꽃들의 싸움...하지만 실제 화투판은 화투의 풀이처럼
그렇게 서정적이지 않다. 화투판에는 인간의 탐욕이 가득하며 속임수와 폭력이 넘쳐난다.
주인공 고니는 전국구 타짜 평경장에게 사사받은 수제자이다. 고니는 수제자가 되기 전 누나의 이혼 위자료를 도박판에 한방에 날리고 전국을 떠돌며 화투판을 기웃거리던 불나방이었다.
주인공 고니는 '손은 눈보다 빠르다'는 명대사를 남기며 도박판을 하나씩 평정해 나간다. 어느날 스승 평경장이 기차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고니는 스승의 복수를 위해 평경장을 죽였다고 의심되는 전국구 타짜
아귀를 뒤쫓는다.
영화 '타짜'는 최동훈 감독, 주연배우로 조승우가 고니역을 김혜수가 정마담, 백윤식이 평경장, 유해진이 고니의 친구이자 파트너 고광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김윤석, 김응수, 감상호등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모두 대단한 연기를 보여준 흥행작이다.
고니는 아귀를 잡기 위해 아귀의 친구 곽철용의 도박장을 치고 들어간다. 고니는 파트너 고광렬과 함께 판을 크게 벌리고 멋지게 승리하며 큰 돈을 손에 넣는다.
고니와 고광렬은 딴 돈을 가지고 술집에가서 테이블에 수표를 깔아놓고 술을 주문한다.
" 이 집에서 양은 적고 가장 비싼 술로 가져와"
술집 여종업원은 40만원짜리 양주를 팔고 계산서에는 150만원을 적는다.
수천만원 아니 한판에 수억원을 만지는 타짜가 몇 백만원을 따지겠는가? 고니는 불평없이 술값을 지불한다.
그런데 만약 우리였다면 어땠을까? 양주 1병에 150만원이라고 한다면 보통 샐러리맨 월급의 절반에 가까운 돈이다. 아마 이 정도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고 하면 얼굴이 사색이 될 것이다.
강압하지 않고 부드러운 개입으로 사람들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담은 책 '넛지'를 보면 '심적회계'라는 심리법칙이 나온다. 심적회계란 기업이 자산, 부채등 각각의 계정에 따라 자금을 분류하듯 개인도 저마다의 마음속 계정항목에 따라 같은 돈이라고 해도 부여하는 의미와 소비 의사결정을 달리하는 것을 말한다.
두 커플이 낚시 여행을 가서 잡은 연어가 비행 중 분실되었다. 항공사에서는 사과의 의미로 300불의 현금을 주었고 두 커플은 맛있는 저녁식사로 225불을 써버린다. 그 전에 레스토랑에서 이렇게 비싼 음식을 먹은적이 없는 커플들이었다. 300불이라는 현금이 커플들의 머리속에 횡재한 돈으로 인식되 원래 하지 않았던 비싼 저녁을 먹은 것이다. 심적회계란 이처럼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장부가 있어 어떻게 번 돈이고 어디에 쓸 돈인지 기준에 따라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기록된다고 한다.
카지노에서 어떤 도박꾼이 운이 좋아 자기 돈 백만원으로 초 저녁에 백만원의 돈을 땄다. 그에게는 자기돈 백만원과 딴 돈 백만원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도박사들은 딴 돈을 '하우스머니'라고 부르며 이 돈으로는 보다 기꺼이 도박에 공격적으로 뛰어든다고 한다. 도박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이와 동일한 심리가 있어 투자를 해서 번 돈으로는 기꺼이 큰 모험에 뛰어든다.
사람들은 누구나 돈이 들어오면 그 돈에 꼬리표를 붙인다. 그래서 쉽게 들어온 돈은 쉽게 나가고 어렵게 모은 돈은 쉽게 쓸 수가 없는 것이다. 똑 같은 돈 10만원도 10만원을 길에서 주우면 쉽게 쓸 수 있지만 하루에 1만원씩 열흘을 어렵게 모은 10만원이라면 쉽게 쓸수 없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가장 좋은 것은 돈에 꼬리표를 붙이지 않고 어떤 돈이든 소중히 아껴쓰는 것이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디 그러한가? 사람이 모두 이처럼 이성적이라면 세상에 도박으로 패가망신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속에는 주조연을 가리자 않고 매력적인 인물들이 넘쳐난다.
고니의 스승인 전국구 타짜 평경장은 죽기 전 고니에게 이런 가르침을 준다.
"마지막 원칙. 이 바닥엔 영원한 친구도 원수도 없어"
또 하나 매력적인 인물은 바로 배우 김혜수씨가 연기한 정마담이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와 화술로 호구(물주)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말한다.
" 화투판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어떻게 호구를 판에 앉히느냐의 문제야. 일단 호구를 판에 앉히기만 하면 판돈 올리기는 아주 쉬워. 일단 가볍게 호구 돈을 따는 거지. 그럼 호구들은 자본이 부족해서 돈을 잃었다고 생각해.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도록 일단 절반만 빌려줘. 호구는 돈을 다시 잃지. 그 돈은 나에게 들어오고 나는 다시 호구에게 빌려주는 거야. 돈을 따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돈은 그저 돌고 돌 뿐이지. 호구의 빚은 산더미처럼 불어나고 그럼 마지막으로 마무리를 날리면 끝나는 거야"
사람은 이처럼 비 이성적이므로 도박에서 번 돈은 쉽게 나간다.
영화 '타짜'의 주인공이 돈을 물처럼 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심리다.
영화 타짜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탐욕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또한 심적회계를 통해 쉽게 생긴 돈이든 어렵게 번 돈이든 똑 같이 귀중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배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