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글쓰기에 대한 단상
실행하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지인에게 추천받고 글쓰기 플랫폼을 열어보았는데 간단한 절차임에도 몇 편의 글을 올리는 것이 만만찮은 과업으로 느껴졌다. 군불만 때다가 이번엔 희미하게 사그라드는 내면의 빛을 살리고 싶었다. 축 늘어뜨린 두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는 브릿지가 될 희망으로 브런치를 다시 펼쳐본다.
서른 중반, 남편과 함께 갓 돌이 지난 첫 아이를 데리고 타지로 내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를 출산했고, 매 해 12월이면 폐렴으로 건강 방어선이 쉬이 뚫리곤 했다. 코로나 시국엔 눈치 없이 천식이란 만성 지병 타이틀도 획득했다. 어릴 적 국민학교 시절 교내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체력은 국력”이란 표어는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 뼈를 파고든다.
뒤 돌아볼 새 없이 폭풍이 지나간 결혼 십여 년 세월 속에 안팎으로 내 실체가 잘 잡히지 않는 것 같은 공허함은 간간히 일기로 마음을 적셔보았지만 다시 일어설 용기나 희망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물론 육아로 채워간 시간은 바쁘게 흘러가고 있었다. 엄마로서의 제2자아, 또 다른 나이다. 본 자아가 육체뿐 아니라 마음도 함께 버거우니 엄마의 자아 역시 빈 구멍이 생기기 마련이더라.
육아 외적 내 개인적인 상황에서 받아들인 그간의 경험은 이렇게 한 텀 지나가고 상처와 얼룩으로 지워지지 않는 과거로 남았다. 잠시 길목에서 과거를 관망하고 성찰한 뒤 다음 레이스를 위해 어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까 호흡을 가다듬는다. 어떤 풍파가 온다면 같은 방식으로 스러지고 싶지 않고 방파제라도 더 단단히 쌓고 싶은 마음이다.
정말 인생에 한번 있을 40대가 이토록 빠르게 흘러갈지 예상 못했다. 내년이면 어느새 마흔 중반에 들어선다. 다음 여정을 위해 단단히 붙들어 매 놓고 ‘나’를 숨통 트이게 할 도전이 필요했다. 오로지 자존감이 땅으로 꺼져가는 자신을 내 손으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말이다. 뭔가 뜻을 펴야 했고, 운명처럼 재회한 달콤 쌉싸름한 브런치와 소중한 마음을 나누고 싶다.
나의 사견이나 통찰이 누군가에게 납득이 되고 대중적인 글로 공감을 얻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것 같다. 논문을 쓰는 이들에게 매일 A4용지 한 장씩 채우다 보면 어느새 한 편의 글이 된다고 하지만 내겐 물살을 가를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다고, 자꾸 주저하면서 나아가기를 멈짓해왔다. 그렇지만 물들어 올 때 노를 저으라 하지 않았던가. 바로 발행을 누르는 지금이 on time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