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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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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Dec 11. 2019

선인장

(사임당 문학상 수상작)

글쎄, 그것이 새끼를 품었답니다. 그까짓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하겠지만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사철  한 곳에 앉혀두고 시선 한번  준 적이 없었는데

때맞춰 새 생명을 탄생시켰으니 기특할 수밖에요, 어린것은 털이 보송보송한 게 제 어미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삼 년 전 여름,  선인장을 하나 샀습니다. 멋없이 길쭉한 모양새가 마치 동화 속의 도깨비방망이 같은 모습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현관 입구 신발장 옆에 자리 잡아 놓은 뒤로 지금껏 보살피지 못했습니다. 하기야 저를 선택한 이유 중에는 게으른 사람도 손쉽게 키울 수 있다는 말도 한몫했으니  그 쯤은 감수했어야지요

내가 대견하게 여기는 것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절기를 알아차리는 선인장의 영특함입니다. 두 뼘도 채 안 되는  지름을 가진 화분에 담긴 흙이라야

건조한 모래 몇 삽뿐, 사막에 사는 식물이라는  것 외에 아는 게 없어 모래를 찾아 헤매다가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에서 담아온 모래, 그 안에 생동하는 흙의 기운이 남아있을 턱이 있었겠습니까? 더구나 선인장이 놓여있는 곳은 항상 그늘진 곳이니 하루를 가늠하기 어려웠을 테고 겨울에도 따뜻한 실내는 하루 종일 온기가 있어서 계절을 감지하지 못했을 텐데 자연의 순환을 어찌 알고 만물이 생동하는 봄에 새순을 탄생시켰을까요,


나는 지난겨울 이미 눈치를 챘어야 했습니다. 모든 생물은 새끼를 품을 때 더욱 예민해진다는 사실을...,

우리 집에 놀러 온 꼬마 손님이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에 달려가 보니 글쎄, 선인장이 아이 얼굴에 앙탈을 부려놓았지 뭡니까, 그것이 새끼를 품은 어미의 본능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그토록 모질게 대하지는 않았을 텐데, 남편은 갖다 버리라는 호통까지 쳤으니 이제 와서 살갑게 군다는 것도 여간 속 보이는 짓이 아닙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린 그를 냉대했을 뿐만 아니라 심한 차별대우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매일 잎을 닦아주고 그것도 모자라 영양제까지  꽂아놓고 있는 난초를  곁에서 바라보며  선인장은 아마 울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오늘, 몸을 푼 딸에게 미역국을 먹이는 심정으로 선인장에게 물을 흠뻑 주었습니다. 먼지가 일 것만 같은 흙 속으로 물이 차르르 배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무던히도 참아 준 것에 대한 감사도 함께 부어 주었습니다.


인내와 절제를 아는 나무,

내가 방금 나무라고 했던가요  이제 선인장은 화초가 아닌 적어도 우리 집에서만은 내 안에 군림하는 나무입니다. 그를 통해 인내를 배우고 열악한 배경을 투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에게서 충실과 겸손을 배우겠습니다.


미루어 생각하면 그것은 선인장의 근성이었습니다. 그의 조상은 지금도 적도 근처 어느 사막에서 이글거리는 태양과 겨루고 있을 것입니다. 어느 나무가 감히 태양과 대적하겠습니까. 푸른 잎을 가시로 무장하면서까지 남아있는 집념의 혼, 그것은 자손 번영을 위해  아름다움과 맞바꾼 모성의 강한 힘입니다.

그의 몸은 부 물로 이루어졌습니다. 물이란 생명의 근원으로써  비록 순하고 부드럽지만 강한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건조한 사막에서 자신의 몸을 수통으로  변화시킨 자생력은 이국의 땅 한 켠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어 오늘 나를 이토록 감동시키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는 지구의  마지막 날까지 남아있을 식물로 선인장을 선택하는 걸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누구에게도 도움받지 않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그것은 아마 자신의 수액으로 남을 구제한 뒤  마지막에야 기력을 다 하리라는  믿음입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천대를 하였으니 나는 참 몹쓸 사람입니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햇빛이 드는 창가로 선인장을 옮겨놓고 오며 가며 자라는 아기 선인장을 바라봅니다.

내가 요즘 촉촉한 감정이 싹트는 것도 다 선인장 덕분입니다. 선인장은 당뇨나 백일해, 늑막염의  구제 약일뿐 아니라 건강에 해로운 전자파까지 차단해 준다고 합니다. 나는 거기에 메마른 감정을  치료해 주는 효능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새로 돋은 선인장은 어른의 엄지 손가락만 합니다. 아직은 어리지만 제 어미의 기상을 닮아 늠름하게 자라리라 믿습니다. 얼마만큼 자라면 그 또한 자신의 터전을 이루겠지만 당분간은 이별의 아픔을 주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옷을 함부로 벗으려다 선인장과 눈을 마주쳤습니다. 새끼를 안고 있는 그 앞에서 더는 만물의 영장일 수 없기에 옷을 추스릅니다.


오늘 나는 선인장에게 자유를 주고 품위를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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