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유럽에서 본 것은 성당밖에 없다고 하는 것처럼 이 곳 치앙마이에도 수없이 많은 사원들이눈과가슴을 채운다.
금방 날아갈 듯 날렵한 지붕과 금빛의 장식으로 꾸민 사원들은 하나같이 화려하였다. 이 곳 사람들의 삶이 소박해 보이 것은 어쩌면 온통 금치장을 한 사원이 곁에 있기 때문인 줄도 모르겠다.
그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사원은 높은 산 중턱에서 치앙마이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도이수텝 사원이다.
이 보다 더 화려할 수 없다 도이수텝 사원경내
사원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산길이다. 시내에서 40분쯤 달렸을까? 웅장한 도이수텝의 모습이 나타났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앞을 지나쳐 계속 산길을 올라가고 있다. 도이 수텝이 있는 산 정상에 도이 뿌이라는 몽족이 사는 마을이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몽족을 먼저 만나보고 도이수텝은 노을이지는 저녁에 보자고 한다.
도이 뿌이로 가는 길은 너무나 험했다. 자동차 두 대가 겨우 비껴가기도 어려운 좁은 길 아래로는 밀림의 낭떠러지였다. 앞 쪽에서 마주오는 자동차를 비껴주기 위해 왔던 길로 후진하기를 거듭하며 아슬아슬하게 산길을 달리고 있는 자동차 안에서 나는 이내 차멀미를 하기 시작했다.
도이 뿌이 마을 입구
태국에 살고 있는 고산족 중에서도 꽃을 가장 사랑한다는 몽족을 TV 화면으로 보았던 기억이 난다. 병처럼 긴 목에 동그란 링을 차곡차곡 걸고 있는 유난히 목이 길어 슬프게 보였던 부족이었다. 꽃과 나무에 영혼이 깃들었다고 생각하며 자신들도 자연과 융화되어 살고 있다는 몽족을 만나러 가는 길, 길이 좁고 험할수록 그들의 삶이 더 신비해졌다.
산 정상에 드디어 마을이 보였다. 마을 앞에 있는 커다란 학교 운동장에 차를 주차하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를 따라 산동네로 올라갔다. 길 옆으로 어느 관광지에서나 볼 수 있는 기념품 상가가 즐비하다. 한 참을 올라가도 몽족이 사는 마을은 나타나지 않았다. 산마루에 잘 가꾸어 놓은 화단 앞에서 민속옷을 입고 뛰어노는 아이들만 몇 명 있을 뿐이었다.
천형처럼 목에 링을 매달고 있는 순진한 몽족 여인의 눈망울을 기대했건만 몽족은 커녕 그 비슷한 사람들조차 살고 있지 많은 공허한 산마루에서 우리는 허망하게 돌아서야 했다.
여긴 도대체 왜 올라온 거야? 너무나 힘들게 올라왔기 때문에 화가 났다. 여행책자에는 분명히 이 곳에 몽족 마을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상인들에게 물어보니 몽족은 이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어린아이들에게 몽족의 옷을 입혀 뛰어놀게 하고 그 모습을 찍는 관광객에게 돈을 요구하는 일종의 상행위만 이루어지고 있는 이곳 도이 뿌이 , 말 그대로 우린 몽족이 전에 살았었다는 마을을 보려고 기를 쓰고 올라온 것에 볼과했다. 완전히 낚인 기분이었다.
도이 뿌이 마을 모습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별이 뜨는 그곳
내려오는 길은 그래도 수월하였다. 올라갈 때 보았던 낭떠러지가 아닌 반대편 산등성이를 끼고 달리니까 적어도 굴러 떨러 질 염려는 없기 때문이다.
아까 지나쳤던 도이 수텝 사원에 다다랐다. 기다란 뱀의 형상을 한 난간이 있는 300개의 계단을 오르는 것부터가 수행의 첫 과정이라고 하는데 나는 수행은 이미 아까 낭떠러지 길을 달릴 때 이미 하였으므로 더는 할 기운이 없어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도이수텝 사원의 화려한 불상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는 중앙의 탑은 온통 금장식이다. 지는 해는 그곳에 부딪혀 또 다른 금빛을 만들어 낸다. 화려함의 극치다. 돌로 만든 불상뿐 아니라 금과 옥, 비취로 만든 불상이 있다. 입구에서부터 신발을 벗고 들어 온 사람들은 모두 맨발로 탑 주위를 돈다. 햇빛에 달구어진 대리석 바닥이 온돌처럼따뜻하였다.
도이수텝 사원의 테라스에서 바라본 치앙마이 시내
사원의 테라스에서 멀리 치앙마이 시내가 한눈에 바라다보인다. 노을 녘에 바라보는 옛 수도는 다시 그 옛날의 왕조가 살아날 것만 같은 신비한 황금빛 노을에 휘감겨 있다.
태국에서도 치앙마이를 가 보지 않고는 태국을 가 봤다고 할 수 없고 치앙마이에서도 도이수텝을 가지 않고는 치앙마이를 다 봤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도이수텝 사원도 해 질 무렵에 바라보지 않고서는 진정한 도이수텝을 보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곧이어 노을이 사라지면 저 아래 도시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별이 뜰 것이다.
숲 속의 왓 우몽 사원
초등학교 2 학년 아이는 오늘도 또 절에 갈 거냐고, 그럴 거면 자기는 그냥 호텔에 있겠다고 말한다.
우리는 매일 사원에 갔다. 그런데 이 곳 사원은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조금씩 달랐다.
이 곳에 온 첫날, 저녁 산책 코스로 간 왓 우 몽사원은 숲 속에 있는 지하 사원이었다. 땅 위로 빼꼼히 삿갓처럼 지붕만 덮여 있고 그 아래로 긴 터널이 사방으로 뚫려 있다. 길게 뚫어놓은 땅 속 굴 안에 부처님이 모셔져 있었다. 열대지방에서 땅 속은 참 시원한 장소다.
왓 우 몽사원의 탑과 호수 지하사원
야생의 숲 속에 세워진 사원은 어스름이 밀려오는 시간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고즈넉해서 마치 숲의 정령이 살고 있는 듯 신비함이 꿈틀거렸다.
커다란 열대의 꽃들이 제 풀에 툭툭 떨어지는 호숫가 옆에 세워진 왓우몽 탑은 다른 탑들처럼 황금빛이 아닌 세월의 이끼가 덮인 돌탑이어서 웅장하지만 왠지 소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원의 공식 명칭은 ‘동굴과 부처님 가르침의 사원’이다. 입구에 있는 명상의 집에서 조용히 수도하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고 이곳이 유난히 고요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왓 프라싱 사원과 왓 체디 루앙 사원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
올드 시티에서 새벽에 본 왓 프라싱 사원과 한낮에 본 왓 체디 루앙 사원도 분위기가 달랐다. 백 년에 걸쳐 쌓았다는 왓 체디 루앙 사원의 불탑은 온통 금빛의 사원 안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수수한 석조 불탑이었다. 천년을 두어도 변하지 않는다는 금빛보다도 더 빛을 발하는 오래된 돌탑, 돌탑이 금탑을 누르고 더 빛을 발한다.
새벽의 왓 프라싱 사원에서 탁발을 하러 가는 어린 동자 스님을 만났다. 나는 호텔에서 마련해 준 음식을 가지고 탁발에 참여했다. 아직은 BTS의 노래나 흥얼거리고 있을 만한 나이인데 어떤 진리를 찾으려고 이 곳에 왔을까.....,
말하는 나무(Taiking Tree)
이 곳 사원의 나무들을 말하는 나무라고 한다. (Taiking Tree) 골목마다 사원을 세우고도 모자라 나무까지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 주고 있다. 그중에 한 나무에서 나는 가슴에 와 닿는 말을 발견했다.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All that glitters is not gold)
겉만 보고 쉽게 판단해 버리는 현대인들에게 보내는 부처님의 메시지였다. 진실은 넓게 바라보고 깊게 생각해야 비로소 보인다는 뜻이겠지,,,.
오전에 도이 뿌이에서 몽족을 보지 못하고 내려오며 속았다고 투덜거렸던 게 조금 찔린다.
꽃과 나무처럼 자연 속에서 살던 몽족이 왜 터전을 버리고 떠났을까?
조상들이 살았던 수백 년 삶터를 떠나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험하고 외진 깊은 산속까지 굳이 찾아와서 까지 그들의 자유스러운 삶을 방해한 나 같은 이방인들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들은 자신의 부족이 관광 상품화되어가는 게 싫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몽족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도 모자라 급기야 속았다고 화까지 냈다.
만약 오늘 그 산속에서 기다란 목에 둥근 링을 단 몽족을 만나서 그들과 인증샷을 찍고 소액의 사례금을 지불했다면 내 마음은 어땠을까? 그들이 떠난 빈 터가 오히려 더 진솔한 것일 줄도 모른다.
오늘 내가 본 것은 몽족이 아니라 몽족의 정신을 본 것이었다.
부처님도 참..., 나에게 이런 귀한 깨달음을 주시다니...,
새벽에 왓 프라싱 사원에서 만난 동자스님의 벗은 맨발이 자꾸만 생각난다.
호텔에서 마련해 준 탁발 음식
탁발을 하러 가는 동자스님들
TIP: 왓 우몽 사원은 긴 그림자가 있는 해 질 녘에, 올드시티에 있는 왓 프라싱 사원과 왓 체디 루앙 사원은 새벽에 가 보시길..., 한낮에 보는 모습과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답니다.(햇빛에 반사되는 한낮의 금빛 사원도 꼭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