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떠난 따뜻한 여행

이서방 가이드

by 연희동 김작가

도이 인타논 국립공원


우리 사위, 이서방은 언제나 가족여행의 리더였다. 여행지를 정한 그다음 날부터 현지에 관한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어느 나라로 여행을 가더라도 현지인 못지않게 가이드를 해서 우리 가족은 대부분 이서방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여행을 하였다. 자유여행이지만 이서방 개인 여행사의 가족 패키지인 셈이다.


''내일은 7시에 조식을 드시고 일찍 서두르셔야 합니다''


패키지여행에서 가이드들에게 너무나도 많이 들었던 말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늦는다는 말...,


해발 2565m로 태국에서 가장 높은 산에 위치한 도이 인타논 국립공원이 오늘의 목적지다.

백두산 높이와 비슷한 그곳을 간다고? 더럭 겁부터 내는 나에게 거의 정상까지 자동차로 올라가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된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때 나는 '거의'라는 애매모호한 이서방의 말을 한번 더 새겨 들었어야만 했다.


치앙마이 시내를 벗어나서 한 시간 반쯤 정글 숲으로 난 길을 달렸다.

어디선가 코끼리 울음소리가 들릴 것 같은 밀림, 키 큰 야자나무가 빼곡하고 이끼 덮인 고산의 나무들 위에 제멋대로 늘어진 덩굴식물들과 고사리과의 풀들이 우거진 숲을 끼고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열대 밀림의 진수를 보는 듯했다.


멀리 산 정상에 금빛으로 빛나는 탑이 보였다. 치앙마이 어디서나 보는 사원과는 격이 다른 탑이었다. 사원 앞에는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다. 저 아래 입구에서부터 밀리기 시작한 차들을 보고 과연 유명한 사원이긴 한가 보다고 짐작했다.

고사리 군락

정상의 온도 표지판

원래는 이곳에서 일출을 보려 했는데 조금 일정을 늦추었다고 한다. 가이드 이서방은 우리를 사원을 지나쳐 산길 쪽으로 이끌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왕복 세 시간이 걸리는 산행을 해야 한다는 걸 몰랐다.


정상의 기온이 섭씨 3도, 이곳이 과연 열대 지방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기온이 차다.

우리 가족 다섯 명에게 한 사람의 현지 안내원이 딸린 산행이 시작되었다.


가파른 산길은 간간히 나무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연중 기온이 차가워서 인지 이 숲은 열대림이 아닌 오히려 침엽수가 있는 숲이었다. 마치 한라산 중턱을 연상하게 한다. 숨이 턱까지 찬다. 얼마 전. 자전거 사고로 다친 다리가 다시 아프게 될까 봐 걱정이 된다.

워낙 등산을 싫어하는 나의 취향을 아는 남편은 내 등 뒤에서 내가 처지지 않게 하려고 애쓴다.

가벼운 산책 정도 일 줄 알았지 이렇게 고된 행군인 줄 몰랐다. 나보다 등산을 더 싫어하는 딸아이가 즈이 남편에게 불평을 늘어놓는다.


"우리는 여행을 왔지 등산을 하러 온 게 아니라고요"


하지만 자기 엄마의 불평이 무색하게도 아홉 살짜리 손녀딸은 맨 앞에서 거뜬하게 산을 오르고 있다.

산 정상에서 바라본 왕과 왕비의 파고다


한참을 올라갔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눈 앞이 훤하게 트이며 양옆으로 내 허리만큼의 키를 가진 고사리 군락이 나타났다. 멀리 푸른 산등성이가 끝없이 펼쳐져있는 모습은 이 곳에 올라오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부탄과 네팔. 미얀마를 거쳐 이어지는 히말라야 산맥의 하나인 이 봉우리는 태국에서도 가장 높은 산봉우리였다. 말로만 듣던 히말라야를 내가 온 것이다.

우리 이서방 가이드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도이 인타논 국립공원의 백미인 '왕과 왕비의 파고다'를 근경이 아닌 이곳 산 위. 두 개의 탑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위치에서 원경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멀리 아까 보았던 금빛의 사원이 보인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 모두 이곳을 보고 환호성을 지른다.

이곳에서 찍은 사진이 치앙 마이 관광책자의 표지를 장식한 도이 인타논을 대표하는 사진이라고 한다.


서로 마주 바라보고 있는 왕과 왕비의 탑은 자동차가 올라오는 끝에 있어서 이곳에 오는 관광객들은 대부분 가까운 곳에서 관광만 하고 돌아갈 뿐, 우리처럼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은 드믈다.

금빛의 거대한 탑은 산등성이와 어울려 그대로 자연과 하나로 이어졌다. 햇빛에 반사된 두 개의 탑은 타오르는 불꽃과도 같다.

산을 오를때의 투덜거림은 사라지고

이 광경 하나만으로 고된 산행의 보람을 느꼈다.

하산을 재촉하는 현지 안내원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오랫동안 머물러서 바라보고 싶은 광경이다.


수직으로 내리꽂는 산길을 요리조리 잘도 피해가며

거침없이 운전하는 우리 이서방 가이드, 내일은 또 어떤 파라다이스로 우리를 안내할까?

그 뒷모습이 든든하다.

왕비의 탑과 왕의 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