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신종 코로나

by 연희동 김작가

23번 신종 코로나 확진 환자가 발표 된 후. 우리 동네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확진자는 우리 동네 주민이 아닌 중국에서 여행을 온 외국인이지만 우리와 가까운 이웃 동네에서 주거를 하였기 때문에 그가 다녀간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이 모두 임시 휴업조치가 내려졌다. 전염병의 검은 그림자가 점점 가까이 다가 오고 있는 느낌이다.


내가 다니는 문화센터에서도 휴강통보를 보내왔다.

강의도 임시 휴강을 하고.탁구.댄스.그림그리기도 모두 잠시 중단이다. 나야 뭐 워낙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이니까 집에서도 할 일이 많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그림도 그리고 넷플 스( Netflix)에서 영화도 보고 해외 시리즈 드라마에 꽂혀서 하루종일 꼼짝하지 않은 날도 있다.


그런데 발이 묶인 남편이 할 일이 없다.

퇴직 후 근황을 묻는 친구에게 손녀딸 등 하교 시키는 매니저, 노견요양관리사, 마누라 기사등 쓰리잡을 뛰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더니만 노견은 얼마 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너갔고 마누라도 당분간은 방콕을 하고 손녀는 학교가 휴교를 하고 다니는 학원도 임시 휴원을 하는 바람에 할아버지 매니저도 당분간은 휴직이다.


신종코로나 때문에 스스로 가택연금이 되어 지내는 동안에도 전염병은 잦아들 기미가 들지 않는다.

어차피 모든 것은 지나 간다. 메르스와 사스도 이겨냈으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를 지켜본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은 이런 때 필요하다. 우리부부는 둘이서 시간을 보내며 즐길 놀잇거리를 찾아 보았다.


오랫동안 한 곳에 넣어두고 사용하지 않고 있던 바둑판을 꺼내서 깨끗이 먼지를 닦아냈다. 흑돌과 백돌로 나눠서 바둑이 아닌 오목을 두기 시작했다. 어느 방향이든 일렬로 바둑알 다섯 개만 세우면 되는 쉬운 게임인데도 맘대로 되지 않는다. 상대편 바둑만 막으려고 쫒아다니다보면 내 돌은 여기저기 산만하게 흩어져 있고 결국 패배의 쓴 맛을 보게 된다. 백전백패. 당연히 흥미를 잃은 내가 먼저 돌을 던졌다.


윷놀이로 바꾸었다. 윷놀이는 자신이 있다. 언젠가 성당에서 열린 척사대회에 참가해서 이긴 적도 있다. 단체전이기는 했지만...,

역시 윷놀이는 승산이 있다. 쫒고 쫒기는 게임에 약간의 무리수를 두어서 네 개의 말(馬)을 한꺼번에 묶어 두었다.

운좋게 모와 윷이 연달아 나오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관문까지 무사히 도착했는데 아뿔싸...,그만 기다리고 있던 편 말에게 덜컥 잡히고 말았다. 한 순간에 윷 판 위에서 사라진 내 말들, 윷판위의 이상민이 되어 맨 손으로 다시 일어서야 한다.

이기고 지기를 거듭하면서 백전 백패는 면했지만 오십견이 도지려나 어깨가 아프다. 승부에 집착해서 너무나 크게 팔을 휘둘러 윷을 던졌던가 보다.


고스톱은 두 명이서 칠 수 없나? 할 수는 있지만 세 명이서 치는 것보다 재미가 없지. 아니 광팔고 들어가서 훈수를 두려면 네 명은 있어야 하지, 그럼 포커는 둘이서도 할 수 있겠지? 화투에, 포커에, 윷에, 바둑에, 이 가족 못 쓰겠네..., 온갖 잡기를 두루 갖춘 우리 집에 없는 게 뭐야, 지금은 다들 떠나고 남편과 단 둘이 살고 있는 우리 집은 십 년 전만 해도 아들과 딸, 강아지 두 마리가 북적거리며 살았다. 그리고 이웃에 사는 친구가 매일 놀러 왔더랬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윷놀이를 자주 했다. 둘 씩 짝을 지어 팀 대결을 하면 승부욕도 생기지만 서로 의논하고 협력하면서 가족애도 싹 텄다.명절이 아니어도 아이들은 용돈이 필요하면 윷놀이를 하자고 했다.


친구 부부와는 고스톱을 쳤다. 나보다 먼저 이동네로 이사와서 살면서 너 닮은 예쁜집이 있으니 빨리와서 사라고 귄유한 친구다. 난 친구 말만 믿고 무조건 집을 샀다. 무슨 집을 고무신 사듯 후딱 사버리냐고 주변에서 염려했지만 내 친구는 나보다 더 나를 위하는 친구다.


5년 전, 친구가 양평에 전원 주택을 짓고 이사를 가기 전까지 우리는 매일 꿈같은 날들을 보냈다.

봄이면 함께 꽃을 사러 다니고 주말이면 정원에서 삼겹살 파티를 하였다. 내가 아팠을 때는 내 보호자가 되어 주고, 집을 고치려고 인부를 불러놓고 출근을 해버리면 나대신 집주인이 되어 주었다.

주말 저녁 친구 내외와 함께 고스톱을 칠 때만 빼면 우린 친 자매처럼 정다운 친구였다.


남편이 포커를 치자고 한다. 포커 역시 두 명이 하기에는 재미가 없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는 그나마 웇놀이도 하지 않게 되었다. 각자의 시간이 바빠지다보니 가족 끼리 한 집에 모이는 시간이 서로 맞지 않았다.

우연히 집 안에 아이들과 함께 있게된 날 포커를 시작했다. 게임 DNA를 가졌는지 우리 가족은 게임을 하면 부쩍 친해진다. 나는 게임 중에 아이들이 들려주는 주변이야기를 듣는 게 더 흥미로웠다.

포커는 명절날 우리 가족의 오락이 되었다.


두 장으로도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카드 놀이가 있다고 남편이 알려준다. 카드를 각자 한 장씩 들고 바로 자신의 이마에 붙인다. 사람의 살결이 그렇게 접착력이 좋은지 처음 알았다. 서로 상대의 이마에 붙어 있는 카드를 보고 배팅을 한다(물론 나는 내 카드를 볼 수 없다) 내 이마에 붙은 카드 번호가 상대가 가진 카드 번호보다 높아야 이기는 게임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카드 번호를 알 수 없으니 상대의 표정을 보고 눈치를 채야 한다.

남편의 이마에 붙은 카드는 퀸 다이아몬드, 꽤 높은 숫자다. 내가 놀라거나 주춤거리면 남편은 금방 자신의 카드가 높은 숫자인 걸 눈치 챌 것이다. 호기있게 마치 상대편 숫자가 낮은 숫자인 것 처럼 웃으며 연기를 해야한다, 자신감있게 배팅을 한다. 나의 과장된 연기에 남편이 주춤한다. 그리고 곧 이어 '다이'를 하고만다. 단추로 대신한 칩들이 모두 내 것이 된다.

내 이마에 붙은 카드는 겨우 스페이드4, 방금 보여준 내 연기는 황금종려상을 타고도 남을 만큼 능청스런 연기였다.

하지만 남편의 연기는 곧 들통이 나는 발연기다. 내 이마에 붙은 카드를 확인한 순간 언뜻 스치는 남편의 눈빛만으로도 나는 내 카드의 숫자가 높은지 낮은지를 금방 눈치 챌 수 있었다.


결혼40년..., 그동안 남편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오랫동안 바라본 적이 없다. 언제 저렇게 늙어 버렸지?

카드를 붙이고 있는 얼굴엔 주름이 쭈굴하고 덥수룩했던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휭하니 이마가 넓어졌다. 남편도 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겠지?

부부가 나이들면 연민의 정으로 산다더니 앞으로 서로 바라보며 살 나이를 계산해 본다.


신종 코로나가 처음 발병한 중국의 우한에서는 사망자가 늘어가고 오늘도 확진자는 계속 불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웃 나라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도 어제보다 한 명의 환자가 더 늘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쌩 떽쥐베리가 어린왕자를 통해 전해 준 말이다.


신종 코로나가 우리부부에게 뜻밖의 연민의 정을 싹트게 해 준 것처럼 곧 우리 모두에게 사막의 샘물같은 소식이 들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