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 아닙니다. 초2 병입니다

by 연희동 김작가

내가 아무리 요즘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 해도 9년 전 그날의 떨림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내 딸이 아이를 낳은 날. 나와 첫눈을 마주친 아이를 보는 순간 감격의 눈물이 솟았더랍니다. 아이는 나에게 할머니라는 이름을 안겨주었지만 이 세상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온갖 재롱으로 늙은 이름을 안겨준 걸 보상해 주었답니다.


아~완두콩처럼 토실한 팔뚝과 앙증스럽게 묶은 몇 올의 머리카락, 내 품에 푹 안길 때의 포근함과 향기로운 젖 냄새, 뭔가를 말할 듯 말 듯 쫑긋거리는 입. 첫 발자국을 떼었을 때의 말할 수 없는 환희라니...,


첫 돌이 지난 다음날부터 아이의 엄마는 직장으로 복귀하고 외할머니인 나는 딸네 집으로 출근을 하였더랍니다.

잘 자고 잘 먹고 투정 한번 부리지 않는 아이는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습니다. 아직 말도 트이지 않은 아기를 어린이 집으로 보내고 나서 불안하고 초조하게 보낸 한나절은 나에겐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내 손을 잡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던 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했으니까요,


그렇게 나만 바라볼 줄 알았던 아이가 얼마 후 유치원 선생님의 손을 잡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실로 들어갈 때는 왠지 내 마음이 허전했습니다. 제 손으로 뺀 첫 니를 내게 보여 줬을 때도 아이는 내 곁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 이런 기분이었구나



어느새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내가 낳은 두 아이를 기르는 동안 책가방을 사면서 이토록 흥분된 적이 있었던가요? 연필과 지우개 필통을 준비하는 일이 이처럼 즐거운 일인 줄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연필을 움켜 쥔 조그만 손 좀 보라지요, 제 이름자를 저렇게 잘 쓰는 아이를 본 적이 있나요, 나는 점점 바보 할머니가 되어 가고 아이는 점점 영재가 되어 갑니다.


올해 아홉 살, 아이는 그 새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키가 내 가슴팍에 닿던 아이가 어느새 턱밑까지 바짝 다다랐습니다. 내 키를 훌쩍 넘어 나를 내려다본다 해도 그저 대견할 따름입니다. 아이는 이제 제법 의젓해졌지만 내 눈엔 언제 봐도 아기로만 보인답니다.


새벽잠 속을 헤매다가도 "학교에 가야지”라고 하면 벌떡 일어난다지요, 얼마나 기특한 아이입니까, 오늘은 뭘 배웠을까, 또 어떤 친구를 사귀었을까, 발표는 잘했을까, 궁금 투성이 할머니는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즐겁기만 합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큰길에서 100미터 남짓 걸어가야 합니다. 엄마들은 이 길을 따라 교문 앞까지 아이들을 바래다줍니다. 아쉬운 눈빛으로 손을 흔들고 돌아서는 아이가 교문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나서야 엄마들은 자신만의 시간으로 돌아갑니다.


오늘 아침이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차에서 내려 아이의 손을 막 잡으려고 했을 때 갑자기 아이가 내 손을 뿌리쳤습니다.

''할머니는 따라오지 않아도 돼 이젠 나 혼자 갈 수 있어''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것일까요, 사랑하는 연인에게 갑자기 이별 통고를 받았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요?

한동안 멍청이가 된 것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멀어져 가는 아이의 뒷모습


아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커다란 가방을 멘 아이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보았습니다. 오늘따라 엄마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참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요즘 우리 아이가 변했습니다.


''점심은 먹었니?''

''당연하지요'',

''손 먼저 씻어야지''

''알았다고요'',

"우리 구요미가 왔구나"

''이젠 구요미라고 부르지 마세요!!''


네~라는 말 대신 어긋나는 대답을 하고 자신의 의사를 똑 부러지게 말하는 아이. 무서움을 많이 타서 혼자서는 집을 본 적이 없는 아이가 ''다녀오세요 난 집에 있을 거예요''라고 말을 합니다.


아직은 내 아가이고 싶은데 아이는 지금 너무 빨리 자라고 있군요.



자립심이 강한 아이가 곧게 자란다


우리 집에 아이는 통틀어 외손녀 한 명뿐입니다. 친가에서도 마찬가지랍니다. 외동으로 경쟁자가 없이 자란 아이는 자신의 옥좌를 지키려고 싸울 필요도 노력할 필요도 없습니다.

불만이 쌓일 사이도 없이 해결해 주는 가족들은 아이의 든든한 군대이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성장이 빠르다고 합니다. 신체적 성숙뿐 아니라 지적 성장도 높다고 하네요. 초고속으로 변화하는 요즘 세상에서 사람이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변화가 아닌 적응이겠지만..., 아이와 함께 지내다 보면 가끔씩 나를 놀라게 하는 질문을 할 때가 있곤 합니다. 아이가 다섯 살쯤 되었을 때 성당의 주일학교에 처음으로 다녀온 아이가 나에게 묻더군요.


''할머니 하느님은 남자예요? 여자예요?''


거룩하신 분의 정체성을 궁금해하다니.... 참 난해한 질문이었습니다. 나는 대답하기 곤란한 이 문제를 신부님께 패스하였답니다.

신부님이 말씀하시더군요, 하느님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냥 하느님이시라고...,

아이는 나보다도 더 크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요즘 부쩍 자존감이 높아진 아이를 보면서 ''자립심이 강한 아이가 곧게 자란다''는 말을 상기합니다.

지금 우리 아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엄마 아빠 그리고 삼촌이라는 거목이 드리운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는 햇빛을 받으려고 발돋움을 하는 아기나무인지도 모릅니다

보호라는 명목으로 해를 가려서 그늘을 만들어 주고 비에 젖지 않게 하려고 비닐 우비를 꽁꽁 입혀 놓은 아이가 자기 힘으로 비닐옷을 벗고 바람과 비를 맞으려고 합니다.


사춘기의 열병인 중2병도 옛말이라고 하더군요. 이젠 2병이라고 하네요.

곧 내 아이에게도 닥칠 그 시기가 오기 전에 나는 내가 드리우고 있는 나의 잔가지를 치워야겠습니다.


낡은 생각과 편견. 아이를 기르면서 쏟은 정성에 대한 생색 등, 마르고 거친 가지들을 잘라내면 내 아기나무는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며 비도 바람도 온몸으로 막아내는 건강하고 곧은 나무로 자라겠지요.


선인들의 고명한 교육철학으로 나를 위로해보지만 나 지금 차인 거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