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입니다. 지방에 있는 시댁으로 설을 쇠러 간 딸네 식구들이 오후에는 친정인 우리 집으로 세배를 올 것입니다.
아침에 가족들과 차례만 함께 지낸 아들은 저녁에 다시 집으로 오겠다고 말하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명절엔 식당들도 죄다 문을 닫았을 텐데, 집에 그냥 있지 않고...,
붙잡으려다 그만둡니다.
아이들 작은 엄마가 내게 묻습니다
형님 ** 는 언제 장가가나요? 애인은 있지요? 올해는 결혼을 해야 할 텐데요..., 하긴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들이 알아서 다 잘 들 하더라고요,
처음부터 내 대답은 들을 생각이 없었던지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을 해버립니다. 나는 쿨한 척, 한 술 더 떴지요.
“남자는 마흔 살만 안 넘기면 돼,”
거짓말..., 어제저녁에도 넌 한숨을 내쉬었잖아 나는 서른일곱 살에 학부형이 되었는데 우리 아들은 그 나이에 아직 장가갈 생각도 하지 않고 있구나, 하고...,
저녁에, 남편에게 부탁했습니다
여보 이번 설에는 아들에게 당신이 한 번 말 좀 해봐요, 결혼 생각이 있기나 한 거냐고 ,
남편이 대답합니다.
애도 아니고 성인인데 다 계획이 있겠지, 우리가 부모지만 그 아이 인생까지 간섭할 수는 없는 거지
나는 왜 저렇게 근사한 말을 하지 못하는 걸까? 얼마나 더 마음을 비워야 자식의 미래를 강 건너 불 보듯 바라보게 될까...,
딸네 가족이 들이닥쳤습니다. 이제야 설 쇠는 기분이 듭니다. 한복까지 곱게 차려 입고 세배를 하러 온 초등학교 2학년 손녀가 오늘따라 더 귀하고 예뻐 보입니다.
딸에게 응원을 청해 봅니다.
딸아 네 동생에게 살짝 물어봐 줄래? 올해에는 결혼 계획이 있는지...,
엄마 뭐하러 장가는 보내려고 하세요, 혼자 살게 놔두세요, 갈 때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가려고요, 지가 편하고 즐겁게 산다는데 신경 쓰지 마세요.
아들 장가보내고 싶은 엄마들은 다 구식인 건가요? 즈네들은 결혼해서 자식 낳고 잘 살면서 동생은 결혼을 안 해도 된다는 건 무슨 논리인지..., 혹 떼려다 혹을 더 붙인 꼴입니다.
곁에서 바라보고 있는 사위나 내 편이 되어 주려나?
사위, 자네가 남자끼리 한번 말 좀 해 주게나
어머니 제 동생도 ** 하고 동갑인데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있어요. 설에 저희 부모님이 결혼 이야기를 꺼냈더니 어른들은 왜 저만 보면 결혼을 못 시켜서 안달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이번 설에는 저도 한 마디도 못 거들고 돌아왔어요,
하기야 나도 작년에 아들아 이제 결혼을 해야 되지 않겠니?라고 아들에게 말했더니 어른들은 알고 있는 단어가 결혼밖에 없느냐고 하더라고요. 그게 벌써 일 년 전 일이랍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 줄 사람이 우리 집엔 나밖에 없구나, 하지만 나도 아들이 싫어하는 말은 하기 싫습니다. 엄마가 원하는 게 뭔지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고 있는 아들에게 더는 강요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독립하여 집을 나갈 때 내 희망도 함께 보냈어야 하는데 자꾸만 미련이 남는 걸 어찌합니까..
사위와 딸 아들이 나란히 서서 세배를 합니다. 아들 곁에 빈자리가 오늘따라 더욱 커 보입니다.
어머님 아버님 건강하세요 그래 너희들도 올해는 원하는 일 모두 이루도록 하여라. 드라마 각본처럼 정해진 말만 합니다. 애드리브라도 잘못 쳤다가는 설날의 좋은 분위기는 ''컷''이 되고 말 겁니다. 입 안에서 맴도는 말을 꿀꺽 삼키고 맙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 열 살이 되는 손녀딸이 사뿐히 절을 합니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저렇게 크다니..., 작년에 사 준 한복 치마가 그새 발등에서 동동거립니다. 저 아이의 치마 길이만큼
나는 더 늙었겠지요.
삼촌도 세배받으세요
귀여운 손녀가 삼촌에게 절을 합니다.
삼촌이 조카에게 세뱃돈을 줍니다. 건강하고 엄마 말 잘 듣는 어린이가 되라고 덕담도 함께 해 줍니다.
그래 너도 열 살 때는 엄마 말 참 잘 듣는 착한 아들이었지. 초등학교 이 학년 때 너의 담임 선생님은 네가 친구들에게 인기가 가장 좋은 아이라고 칭찬해 주셨단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사상보다 종교보다 더 깊은 요즘 젊은이들의 이데올로기, 설마 비혼 주의자는 아니겠지? 아직 나에게도 희망은 있는 거니?
세배를 마친 손녀딸이 세뱃돈을 챙깁니다. 삼촌이 던진 덕담도 함께 챙깁니다.
“네 삼촌, 엄마 말씀 잘 들을게요, 그런데 삼촌은 언제 결혼해.?”
여러분 들으셨나요 방금 고양이 목에서 딸랑거리는 저 방울소리를...,
이자하 작품 -우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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