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간 동안 마스크를 하고 영화를 봤다. 콧등 사이로 삐져나온 콧김으로 안경이 흐려져서 스크린이 뿌옇게 보인다. 그래도 마스크는 벗지 않는다. 차라리 안경을 벗는다. 코로라 19의 확진 환자 중에는 극장에도 갔었다고 한 사람이 있지 않았는가? 주변을 둘러본다. 좌석이 꽉 찼다. 내가 앉아있는 좌석은 H4번, 좌석번호를 알아야 할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 기억해 두어야 한다.
봉준호 감독이 코로나 19를 눌렀다. 뉴스 맨 앞머리에 트로피를 들고 있는 4관왕의 모습이 보인다.
이 영화 필름이 200여 나라로 판권이 팔려나가면서 굉장한 수입이 된다고 한다,
코로나 19로 인해 입은 경제적 손실이 얼마인데 봉준호 감독이 조금은 위로를 해 주는 것 같다.
사실 아카데미 4관왕을 배재하고 영화를 본다면 그냥 재미있는 영화였다. 심한 노출씬이 없고 낯 뜨거운 베드신도 잠깐이다. 내가 한국영화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인 욕설 폭언도 아주 없지는 않지만 조금밖에 없고 줄거리 또한 현실에서 있음직한 그럴듯한 이야기이고 배우들 연기도 좋았다. 그런데 아카데미 4관왕을 탄 작품이라 생각하고 영화를 보니 분석을 하게 된다. 왜 제목이 기생충일까? 이 영화를 보면서 매번 글을 쓸 때마다 제목에 고심하는 나는 영화의 제목인 '기생충'이 상을 타게 한 일등 공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도 모르는 자신의 집의 구조는 내가 내 몸이라고 해서 다 알지 못하는 것과도 같다. 그곳 지하에 숨어서 4년 동안 편안하게 주인의 음식을 받아먹고사는 기생충 1과 부잣집에 침투하여 천천히 번식시키는 기생충 2, 3, 4, 5. 번 가족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감독의 창의력이 돋보이는 줄거리와 그를 함축시키는 제목이었다. 어쨌든 영화는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식은 국 속에 둥둥 떠 다니는 기름 덩어리 같이 걷어내고 싶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40년 전. 화곡동의 반 지하 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집주인은 한국화를 그리는 화가였다. 서울에만 있는 반지하의 개념을 잘 몰랐던 나는 주인이 화실로 사용했던 넓은 방이 마음에 들었다. 더구나 창문을 열면 정원의 파란 잔디가 바로 눈높이에서 펼쳐 보이는 게 좋았다.
남편 직장인 공항도 가깝고 재래시장도 가깝다. 무엇 보다도 넓은 반지하 방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서 좋았다. 지금 생각하면 달콤한 신혼 시절에 뭔들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남편과 나는 이 곳에서 내 집을 장만할 때까지 살자며 차곡차곡 통장에 숫자를 늘려갔다.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우리의 계획이 바뀌어 집을 구하러 다니게 될 줄은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몰랐다.
한밤중이었다. 무엇인가 머리맡에서''와장창'' 부서지는 소리에 눈을 떴다. 놀라서 일어나 불을 켜보니 창문 밖에 커다란 선인장 화분이 박살 나 있고 우리 방 창문은 화분에서 튀어나온 흙으로 엉망이 되었다. 뒤 이어 위층에서 주인 남자의 울부짖는 듯한 성난 목소리가 들렸다.
''왜 대문을 열어놓고 다녀 이 미친 것들아!''
지저분한 가래를 뱉듯 아래층에 사는 우리에게로 향한 원인모를 패악이 쏟아졌다.
영문 모르는 남편이 올라가서 자초지종을 알아보았다.
주인집에는 영특한 셰퍼드 한 마리가 있었다. 그날 낮에 이 집에 사는 식구 중 누군가가 대문을 열어놓았다. 셰퍼드는 밖에서 무언가를 잘못 먹고 들어와서 저녁내 앓다가 방금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한다.
아무 근거도 없이 대문을 열어 둔 사람으로 그들은 반지하에 살고 있는 우리를 지목했다.
약자를 향해 물어뜯는 동물의 근성을 보았다.
상냥한 주인아줌마나 사람 좋을 것 같아 보이던 주인 남자가 우리를..., 젊고 가난한 우리를 자신들과 격이 다른 부류로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때야 알았다.
그래서 였을까?
영화 속의 극빈자들이 사는 반지하의 모습이 너무나 구차스럽게 그려지는 게 터무니없어 보였다. 나 또한 젊은 시절 반지하에 살았으며 지금도 우리 집 아래층 반지하 원룸에는 두 명의 젊은 꿈나무들이 살고 있기 때문일까?
폭우에 살림살이가 둥둥 떠다니고 행인들이 창가에 오줌을 갈기는 반지하의 과장된 콘셉트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요즘 언론에서는 갑자기 서울에 있는 반지하가 회자 되고 국적기에서는 '기생충'을 기내에서 상영하는 영화 목록에서 제외시켰다고도 한다. 그 이유가 빈부격차 등 한국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을 그렸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정도면 ''영화는 영화일 뿐 혼동하지 말자''는 말도 쓸모없는 이야기가 되고 만다.
영화를 보고 나온 시간이 오후 네시, 밖에서 저녁을 먹고 들어 가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다.
"여보 우리도 집에 가서 짜파구리나 만들어 먹을까?"
영화 속에서 살치살을 듬뿍 넣고 만든 짜파구리가 맛있어 보이기는 했다.
그들도 태어날 때부터 부자는 아니었던가 보다. 짜파구리 맛을 기억하는 것을 보면...,
짜파게티를 사들고 집으로 왔다.
연희동 언덕에 위치한 우리 집은 앞에서 바라보면 3층 집이지만 뒷길에서 보면 이층 집이다. 우리 아래층에 있는 두 개의 원룸에는 올봄에 회사에 취직해서부터 살기 시작한 청년과 대학생, 각각 두 명의 젊은이가 살고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원룸의 젊은이가 인사를 한다.
''아주머니 길고양이 한 마리 길러도 되나요? 추운데 엄마가 없는 것 같아서요, ''
자신의 취미생활조차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다니..., 그러는 거였구나,
되고 말고요, 나는 선뜻 허락을 해 주었다. 허락이라는 말도 가당찮다.
봉준호 감독은 다음 작품에서는 땅 속 깊이 뿌리박고 사는 젊은 나무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
아랫집 젊은이와 대화를 할 때 나는 오늘 처음으로 마스크를 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