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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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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Mar 07. 2020

 트롯은 인생이다.

미스터 트롯, 너 때문에 살맛 난다

요즘 나는 트로트에 푹 빠져 산다. 집안일을 하면서 흥얼거리는 콧노래도 어느새 트로트로 바뀌었다. 트로트가 이렇게 흥겹고 재미있는 노래였었나? 그동안은 몰랐다. 트로트는  환갑이나 칠순 잔치에서나 부르는 노래인  알았다.  안에서  트로트를 크게 틀어놓고 들어 본 적은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 어쩌다가 노래방에 가면 나는 발라드를 불렀다 

 광화문 연가는 내가 즐겨 부르는 노래다. 사람들의 흥을 깨거나 말거나 내가 제일 잘하는 노래니까 내 멋에 겨워 불렀다. 그런데 요즘 트로트를 듣는다 그리고 열심히 따라 부른다. 최근에 '안동역에서'를 배웠다.


목요일을 기다린다. TV 방송국의 경연프로인 미스터 트롯을 보기 위해서이다. 미스터 트롯이 나를 트로트 애창자로 만들어 놓았다.


엊그제 새해가 지났는데 그 새 3월이다. 세월은 빠른데 일주일은 더디다. 목요일 밤은 더 느리게 오는 것 같다. 목요일 밤  열 시가 되면  나는 방송국의 공개홀에라도 앉아있듯이 TV 앞에 앉는다.  


아 , 오늘은 임영웅이 어떤 노래로 날 감동시켜 줄지..., 어쩌면 그렇게 편안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전혀 경연의 무대라는 걸 잊은 듯이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부르는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이 노래가 이렇게 가슴을 파고드는 노래였었나?  


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눈으로 지새우던 밤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이건 내 이야기야 그래 우리 이야기지...,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화면이 흐려 보이고 슬쩍 눈물을 닦는다.

누가 트로트를 한스런 노래라고 했나요. 사랑도 한도 모르는 초등학생 정동원이 트로트를  부른다. 기교도 부리지 않고 초연하게 부르는 노래, 아이가  부르는 트로트에 왜 내 가슴이 싸 한 거야..,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피고 또 지는  꽃잎처럼...,

 

아이의 노래가 나를 젊은 날로 데려간다. 마냥 청춘 일 줄만 알았던 그때가 있었지  다시는 생각 말자던 이별의 시간이,  아픔의 순간이, 아이가  덤덤하게 부르는 노랫소리에서 새록새록 생각난다. 트로트는 누가 부르던 그것은 인생을 노래하는 것이다.


대학생 가수 이찬원이 진또배기를 부른다.. 트로트를 뽕짝이라 부르며 하대했던 사람들은 모두 미안해해야 한다. 이렇게 구수하고  멋들어지게 꺾어지는 우리 대중음악을 왜 그동안 푸대접했을까?


내가 젊었을 때는 트로트는  연륜 있는 어른들이 부르는 노래였다, 젊은이들은 기타를 튕기며 포크송이나 팝송을 불렀다. 아이들이 트로트를 부르면 청승맞다고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트로트를 부르는 아이돌부터  미스터 트롯에 나오는 경연자들은 아직 인생을 다 경험해보지 못 한 젊은이들이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이 부르는 트로트에는 구수한  인생의 맛이 들어있다. 경험, 그 이상의 노력이 만들어 낸 소리다.


트로트의 가사도 시대에 따라 변했다. 내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트로트는 주로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가사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요즘에 새로 알게 된 노래 중에는 힙합 래퍼들이 부르는 가사와 견줄 만큼 개성 있고 직설적인 내용의 노래 가사들이  많았다.


나이 들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올드 트롯 중에 한 많은 미아리 고개가 있다.

미아리고개는 이제는 더 이상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맨발로 울며 넘던 고개가 아니었다. 최근에 만든 신 미아리 고개 가사를 듣고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날 버리고 가는 널  내가 뭐 잡을 줄 아니, 갈 테면 가라지 미아리고개 란다. 노래 가사가 참 당돌하다.

 날 버리고 가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서  나에게 돌아와 주기를 바라던 우리네 여인의 정서는 털끝만큼도 없는 가사인데  들으면 들을수록 속이 뻥 뚫린다.


트롯은 나만 좋아하는 게 아니다. 우리 집 젊은이 중에 딸과 손녀가 트롯 경연 애청자다. 딸은 영탁이를 좋아하고 손녀는 성악을 전공한 김호중이를 좋아한다.


영탁이 부른 막걸리 한잔은 정말  구수한 막걸리 한잔이 생각나는 노래였다.

여자 친구가 다른 남자와 양다리 걸치는 광경을 목격하고 부르는 노래, ‘네가 왜 거기서 나와’는 뒷 목 잡고 넘어지는 댄스만큼이나 웃픈 노래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사랑을 믿었었는데

발등을 찍혔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 저녁 우리 집은 트롯 노래방이 된다. 이 시간만큼은 우울한 세상사를 잠깐 잊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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