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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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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Mar 02. 2020

터널의 끝

톨스토이의 작품''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부자가 구두를 지으러 왔다. 부자는 미하일에게 평생 신을 수 있을 만큼 튼튼한 구두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천사 미하일은 구두가 아닌 죽은 자가 신는 샌들을 만든다. 부자는 그날 구두방을 나서면서 문지방에 머리를 부딪혀서 갑자기 죽게 다. 부자는 구두가 아닌 미하일이 만든 샌들을 신게 되었.


아침 일찍 동아리의 단체 카톡방에 한 개의 글이 올라왔다.


어머니의 핸드폰에 있는 단체 카톡방을 보고 문자를 보냅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오늘 새벽에 운명을 하셨습니다ㅡ


처음엔 누군가 잘못 보낸 글인 줄 알았다.


일주일 전.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단체수업 금지령이 내렸다. 자치센터에서 운영하는 취미교실 수강생들도 모두 몸조심하며 지내다가 건강하게 다시 만나자며 인사하고 헤어졌다.

그 날. 평소와 똑 같이 웃으면서 헤어진 희숙 씨였는데 오늘 그의 아들을 통해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뉴스에서 하루에도 수백 명씩 코르나 19 확진자가 늘고 있으며 사망자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지만 정작 내 일처럼 다가오지는 않았는데 자주 만나던 동아리 멤버가 하루아침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니 죽음이 바로 내 곁에 도사리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지병도 없었을뿐더러 사고사도 아니고 전염병 환자도 아닌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 데는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혼자만의 아픔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집에서 자가격리생활을 하고 있는 중에 놀라운 소식을 접한 터라 서로 얼굴도 마주 보지 못한 채 문자로 슬픔을 나눌 뿐이다.


내일의 일을 모르는 게 인간의 한계다. 인간은 사람의 일 뿐 아니라 하루 뱎, 세상의 일도 모른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대형 쇼핑센터 앞에서 장사진을 치는 나라가 우리나라가 될 줄 누가 알았으며 바이러스를 처음 퍼트린 나라가 오히려 피해자인 우리나라를 바이러스의 온상으로 내 몰 줄 어찌 알았을까, 어제 만난 친구와 오늘 영원히 헤어지게 될 줄 꿈이나 꾸었겠는가.... 하루 일, 아니 단 몇 초 뒤에 생길 일도 모르고 사는 게 인생이다.


지금 밖은 온통 적군인데 무기가 없는 병사들은 숨어서 적들이 지나가 주기만 기다리고 있다. 두렵고 혼란스럽다.


고인의 아들에게 우리의 심정을 전하고 어렵게 계좌번호를 받았다.

고인에게는 정말 할 짓이 아니다. 하지만 대중을 만나는 게 두려운 이 기에  어쩔 수 없는 결정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라는 말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말이었는지 알 것 같다. 하룻 내 괴로웠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국화꽃 한 송이도 바칠 수 없는 오늘이 빨리 지나가 주기만 바랐다.


어제, 오늘의 일을 몰랐듯이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오늘과 내일이 다르지 않다면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내일은 오늘과 다를 거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요즘이다.


희숙 씨는 왜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걸까?  그의 삶에서 오늘이 너무 길었던 것일까?

아무리 긴 터널도 그 끝이 있는 법인데...,


터널 저 끝에는 마스크 없이 웃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있다. 전 세계는 어려움을 극복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열광하고 있다. 금 모으기에 이어 서해안의 기름 바위 닦기, 이제는 고통받는 이웃에게 베푼 헌신과 사랑이 어떤 면역 주사보다도 강하다고 너도나도 사랑을 배우러 오겠다고  한다.

그런데....,


터널 끝에 희숙 씨 당신만 없군요,



                                                                들꽃가득 꺾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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