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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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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Feb 26. 2020

평생 한번 한 실수

처음 문학을 접했을 때 교수님이 그랬다

글은 매일 쓰고 쓸 게없으면 바지에 똥을 싼 이야기라도 쓰라고.... 이 말은 그만큼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진실성 있는 글을 쓰라는 말이었다.

우리 모두는 웃었다. 평생 바지에 똥 쌀 일이 있을까요? 나도 웃었다.


그런데 바지에 실수를 했다, 내가, 그것도 바로 어젯밤에...,


사흘 전에 딸아이가 동네 유명한 족발집에서 족발을 하나 사 왔다. 오랫동안 삶고 졸인 족발에 문제가 있을 리 없다. 다만 족발과 함께 사온 어리굴젓이 문제였다. 너무나 맛이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딸과 나는 똑 같이 금방 지은 여주 특미 쌀밥에 어리굴젓을 넣고 비벼 먹었다.

집에서 굳이 반찬을 만들어 먹을 필요가 어딨냐 오천 원만 주면 이렇게 맛있는 젓갈을 사서 먹을  있는데..., 나는 딸아이에게 경제적 요리 방법을 알려주며 내가 어리굴젓을 집에서 굳이 담아 먹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강조하였다.

아무튼 우리는 그날 밤 족발과 막걸리와 어리굴젓으로 코로나19로 인해 대중이 모이는 곳을 삼가 달라는 국가의 말에 순응하여 집에서 파티를 끝냈다.


그날 밤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나는 배가 아픈데 엄마는 괜찮아?

응, 나는 괜찮아 멀쩡해

내일 병원에 가봐라

다음날 일찌감치 병원에 다녀온 딸이 아마 상한 굴로 인한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멀쩡하던 내가 다음날 배가 살살 아팠다. 머리도 지끈 거린다. 열은 없고 인후통도 없는 걸 보면 코로나19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딸아이가 먼저 진단을 받았으니 나 역시 어제 먹은 굴이 원인일 것이다.

마스크를 단단히 하고 동네 병원으로 갔다.

중국을 다녀오신 분은 병원으로 들어오지 말고 바로 보건소로 가라는 내용의 글이 병원 입구에 붙어있다.

평소에 30분은 족히 기다려야 차례가 오는 병원인데 손님이 뜸하다. 마스크의 콧날을 꽉 쥐어짰다. 나도 의사 선생님도 마스크 안에서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야 했다.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았으니 나도 딸처럼 바로 진정될 줄 알았다.


오늘 새벽 세시, 정확히 내가 잠옷 바지에 실수를 한 시간이다.

이건 점잖게 변이라고 할 수 없다. 그냥 오염된 물이었다. 그때부터 10분 간격  아니 5분 간격이 맞다

마치 내시경을 하려고 먹기 싫은 물약을 먹었을 때처럼 내 장은 누런 물을 좍좍 쏟아냈다. 인간의 몸에 들어 있는 68%의 물 성분 중에 그 반절은 쏟아져 나가는 것 같다.

남편이 깨어 일어났다. 바지에 실수를 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따뜻한 찜질 백을 만들어 준다. 빨리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며 화장실을 들락 거렸다.

폭포처럼 쏟아지던 설사가 지사제 한 알로 진정이 되었다. 참 신기하다.

하룻 밤동안 몸속의 독을 다 쏟아내서인지 머리가 맑았다. 그래서 어떤 한의사는 설사를 무조건 막는 건 능사가 아니라고 했던 것 같다.


입에 쓴 것은 몸에 달다. 바꾸어 말하면 입에 단 것은 몸에 해롭다는 말을 진즉에 새겨 들었어야 했다. 나는 약과 독을 구분하지 못하고 맛에만 취해 음식을 먹었다. 거기다가 욕심까지 부려서 딸보다 더 많은 양의 어리굴젓을 먹었던 것 같다. 욕심 때문에 나는 평생 한 번 저지를까 말까 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를 병들게 하는 것은 유혹과 욕심이라는 것을...,


어제 하룻밤 동안의 쓰나미로 인해 장(腸)은 유익균도 해로운 균도 사라지고 없는 무공해 지역이 되었을 것이다.


순수해진  ( 腸)에게  평화를 주고 싶다. 지금껏 달콤하고 고소한 맛은 목구멍이 다 느끼고 엄한 벌은 내 장(腸)이 다 맡아냈다.


이제는 솔직하고 진실한 것만 받아들여서 나의 장(腸)을 감동시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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