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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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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Feb 19. 2020

창밖의 부부

 겨울은 유난히 날씨가 따뜻하다. 뜨락의 양지쪽에는 벌써 수선화 새싹이 돋아나고 작년 가을에 심어놓은 튤립 구근도 싹이 올라오고 있다. 이대로 봄이 오려나 보다


눈이 오지 않는 요즘, 겨울비만 몇 차례 내렸을 뿐, 겨울도 봄도 아닌 제3의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눈이 없는 겨울은 삭막하다. 이제는 우리도 눈을 보려면 동남아 관광객처럼 강원도나 한라산으로 설국 여행을 떠나야 할까 보다.

다른 날은 몰라도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내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직도 있다.

남편과 함께 성탄 전야 미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아본 게 언제인지 아득하다.


12월도, 1월도 계속 영상의 날씨를 유지하더니 평년 같으면 한파가 가장 심했을 2월도 따뜻하게 중순을 넘어 서고 있다. 

그런데 오늘 눈이 내렸다. 겨울을 그냥 보내기 아쉬웠었나 보다. 하얀 눈이 펑펑 내렸다. 세상이 금방 새하얗게 변했다.


눈 오는 날, 우리  동네 사람들은 모두들 집 앞의 눈을 쓸어내느라 밖으로 나온다.

언덕에 있는 골목길은 바로 치우지 않으면  롤라 코스터 장으로 변해버린다. 겨울에  주민센터에서 나눠준 염화칼슘이 드디어 제 구실을 한다.

골목길이 말끔해졌다.


리 집은 눈이 소복하다, 하얀 눈이 쌓인 데크 위에는 방금 다녀간 듯 고양이 발자국이 선명하다. 수선화와 튤립의 어린 새싹들이 걱정되어 담요를 덮어 줄까 했지만 담요보다 가볍고 포근한 구스 이불 같은 눈 이불이 더 따뜻해 보였다.


봄방학을 하고 집에서 놀고 있는 손녀를 불렀다.

눈사람을 만들자고 했다. 손녀는 친구처럼 금방 달려와 주었다.


해마다 눈이 오면 우리 집 앞마당에는 조형물이 하나씩 만들어졌다. 눈으로 눈사람만 만들란 법이 없다. 어느 해는 앞마당에 오리 식구들을 만들어 놓았고  또 어느 해인가는 겨울왕국의 올라프를 만들기도 했다.

내가 쓰는 글 중에 정겨운 글이 있다면 그것은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자랐던 어린 시절의 정서 때문일 것이다.

눈사람 만들기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자란 나의 아이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자연과 가까운 놀이다.


나는 눈사람의  몸통을 만들었다. 손녀는 작은 눈덩이를 굴렸다. 우리 집  데크 위에 있는 눈 으로는 부족해서 남편은 커다란 대야에 옥상에 있는 눈을 퍼서 날라다 주었다. 

둥글게 빚은 몸통에 얼굴을 붙이고 나뭇가지를 꽂아서 팔을 만들었다. 단추로 눈을 붙이고 붉은 콜라 뚜껑으로 입을 만들었다.


눈사람 부부가 탄생했다.

눈사람을 가운데 두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우리들의 가족사진이 

눈사람과 함께 사진

                               창 밖에 있는 눈사람



거실 창밖에 눈사람 부부를 세워두었다. 투명한 유리 창문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서로 바라본다. 식탁에서 밥을 먹으도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다가도 창밖의 부부와 눈을 맞춘다. 안과 밖, 서로 다른 온도에  있지만 우리의 마음 만은 같은 온도일 것이다.

밖에 세워둔 눈사람 부부가 녹지 않았으면...,  내일도 모레도 계속 날씨가 추워지기를 바랐다.


사실 나는 추운 겨울이 싫었다

늦가을에 집 안에 들여놓은 화분들은 이듬해 사월이 되어야만 밖으로 내놓는다. 나는 화분을 들여놓으면서부터 봄을 기다린.


따뜻한 겨울 날씨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겨울은 덕장에 말려둔 명태들이 얼지 않아서 큰일이라고 울상을 짓던 강원도 명태덕장의 주인 이야기도 겨울 상품이 팔리지 않아 따뜻한 겨울 날씨를 원망한다는 옷가게 주인의 말도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만 들렸다. 

런데 눈사람을 창밖에 세워둔 오늘은 날씨가  걸  꽁꽁 얼려주기를 바랐다. 이기적인 나의 기도가 통했던지 당분간 강추위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기쁜 소식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눈사람에게 안부를 전한다. 같은 시간에 태어나서 함께 사라져야 할 운명을 지닌 눈사람 부부는 오늘도 금슬 좋게 잘 살고 있다.


           사흘째 잘살고 있는 눈사람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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