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아이들의 임시 방학이 2주간 더 연기되었다는 발표가 났다. 심난하다.
학교는 물론 학원도 가지 못하는 손녀는 늦잠꾸러기가 되었다. 엄마 아빠는 출근을 하고 아이 혼자 집에 있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일찌감치 딸네 집으로 출근을 해야 한다.
손녀가 첫 돌을 지나고 딸아이가 복직을 하면서부터 아이는 우리가 보살피기 시작했다.
남편도 아직 정년퇴임을 하기 전이라 아이를 보살피는 일은 우리가 아닌 나 혼자의 몫이었다.
딸네 집과 우리 집과의 거리는 다섯 정류장을 지나야 하는 거리에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눈곱도 떼지 않고 달려가는 그 길, 같은 시간에 딸네 아파트 입구에서 딸 또래의 젊은 엄마와 매일 마주쳤다.
아직 잠도 덜 깬 아기를 업고 언제나 헐레벌떡 뛰어가는 젊은 엄마는 그 와중에도 항상 반듯한 정장 차림새에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그렇게 불편 해 보일 수가 없었다. 아마 회사에 출근하기 전 어디인가에 아이를 맡기러 가는 것 같았다.
내가 이른 새벽에 딸네 집으로 달려오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 딸아이도 어쩌면 저 모습과 똑같았을지도 모른다. 아이 엄마가 안타까워 보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 날은 가을 태풍이 상륙한 날이었다. 바람에 뒤집히려는 우산을 간신히 부여잡고 아파트 현관까지 겨우 도착했다. 젊은 엄마가 거의 울 듯한 표정을 하고 서 있었다. 아기는 여전히 잠들어 있고 핸드백과 아기의 가방, 거기에 우산까지 받기에는 손이 모자랐다.
내가 우산을 받쳐 주겠노라고 했다. 아이 엄마는 너무나 선뜻 내 호의를 받아들였다. 내가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그쪽에서 먼저 도움을 청 할 만큼 다급했던 것 같다. 아파트 앞 정류장까지 우산을 받쳐주며 걸어갔다. 내가 그곳 주민인 줄 알았나 보다. 몇 호에 사시는 분이냐고 물었다. 딸 내 아이를 보살펴 주려고 매일 아침 이곳에 온다고 했다. 그 순간 아이 엄마의 얼굴에 부러움이 가득하였다.
"따님은 좋으시겠어요"
"
야단 났다. 코로나 19로 인해 유치원과 어린이집까지도 임시 휴원을 하였다. 집으로 아이를 보살피러 오는 육아도우미들도 수요가 모자란다. 아기를 안고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맞벌이 주부들의 모습이 뉴스 영상을 가득 채운다.
국가는 지금 초비상이다. 코로나 19 확진자들이 더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데만 여념이 없다.
마스크 쓰고, 자가 격리를 하고, 사회적 거리 2미터를 지키고, 모두 다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할 것 들이다. 집으로 돌려보낸 아이들도 당분간은 자신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엄마들은 월차에 연차 휴가까지 다 쓰면서 아이를 돌보겠지 그런데 2주가 더 연기되었다고 한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고 울상을 짓는 엄마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기를 편하게 맡기고 출근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얼굴도 모르는 내 딸아이를 부러워하던 아기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출근시간은 촉박한데 태풍 속에서 아이를 업고 걸어가야 하는 젊은 엄마들이 너무나 많다.
지금은 내가 나서서 우산을 받쳐줘야 할 상황도 아니다.
젊은 엄마들에게도 나 같은 친정엄마나 시어머니가 있겠지 아니면 고모나 이모라도..., 누구나 나서서 맞벌이를 하는 아기 엄마들에게 우산을 씌워주었으면 좋겠다.
집집마다 국기처럼 기저귀가 펄럭이고 아이들이 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던 그때가 평화로운 시절이었다는 걸 새삼스럽게 실감한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가니 용기를 내라는 말은 당장 아기를 맡길 곳이 없는 엄마들에는 립서비스일뿐,
아~함께 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