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되돌아온 이유

by 연희동 김작가


외손녀의 친가는 충청도 단양이다. 그곳은 딱 한 번 가 봤지만 참 온순한 동네처럼 보였다. 그냥 내 첫인상이 그랬다 조용하고 깔끔하고 순한..., 참 그러고 보니 나와 첫 대면을 한 사돈의 모습이 그랬었다.

사돈은 매번 나에게 면구스러워한다.


" 아이를 맡아 주셔서 고마워요"


딸네와 가까이 사는 부모인 우리가 아이를 보살펴 주는 건 당연한데 사돈은 나한테 짐을 지어 준 것처럼 송구스러워했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아이는 자라면서 매일 다른 성장 메뉴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이 귀엽고 앙증맞은 아이의 모습을 우리만 즐기고 있는 것 같아서 오히려 사돈에게 미안했다


벌써 이십일 째, 학교도 학원도 동네 놀이터도 못 가는 아이가 이제는 노는 것도 지겨워지기 시작했나 보다. 자꾸만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한다. 아이 엄마는 학교가 임시휴교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TV를 볼 수 있도록 그동안 묶어두었던 TV 시청 금지령을 풀어 주었다. 아이는 지금 TV를 보는 것도 심드렁하다. 만화영화보다 친구들을 더 만나고 싶은 거다.


어제는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교장 선생님의 말씀 을 듣고 자기가 새 학년에 몇 반으로 배정되었는지도 알았다. 새로운 담임 선생님도 영상으로 만났다.


"어린이 여러분 힘드시죠, 우리 모두 건강을 잘 지켜서 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한달 후에 만나기로 해요, 오랜 시간이 지난 뒤면 오늘 우리의 고통과 노력이 얼마나 값진 일이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은 선생님 말을 엄마 말보다 더 잘 흡수한다. 교장선생님 말씀을 듣더니 심심함을 잘 견뎌내는 것도 애국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의연한 표정을 짓는다.


아이는 방학에도 친할머니 댁을 가지 못한다. 학원 수업을 빠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여름방학 동안 할머니 집에는 옥수수도 딸 수 있고 냇가에서 다슬기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옥수수나 다슬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친구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것이었다. 공부를 싫어하면서도 공부와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의 묘한 심리다.


친할머니는 아이가 보고 싶다. 학교뿐 아니라 그동안 아이를 옭아맸던 학원도 가지 않는 요즘이야말로 아이가 할머니 집을 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더구나 아직 사돈이 살고 있는 곳은 코로나바이러스가 범접을 하지 않은 청정구역이었다. 주말에 아이 아빠는 아이와 함께 본가에 가기로 했다. 그곳에 아이만 두고 올 예정이다.


"여그도 마스크 사기가 힘드니까 마스크 꼭 챙기고 아빠랑 조심해서 오너라"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떠있다. 나도 안다. 아이가 내 집에 오기 전의 설렘을..., 하지만 손자는 오면 좋고 가면 더 좋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다. 좋은 건 잠시 뿐, 조금 후면 온 집안이 아이의 놀이방이 되어버린다. 아이는 엄마 아빠에게는 감히 요구하지 못하던 것들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당당하게 요구하고 안 들어주면 울음으로 대신한다. "우리 집에 갈 거야''라는 말이 가장 큰 협박이고 그 말을 할아버지 할머니가 두려워한다는 걸 안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손녀는 제법 숙녀티가 난다. 머리도 혼자서 묶을 줄 알고 정리 정돈도 곧잘 한다. 하지만 엄마 아빠를 떠나 처음으로 혼자서 여행을 하는 일은 아직은 두려운가 보다.


모녀의 이별 의식이 길어지고 있다. 보듬고 쓰다듬고 엄마가 보고 싶으면 금방 와도 돼, 영상 통화할게,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밥도 잘 먹고, 잘 때 이불 차내지 말고.., 구구절절 이어지는 즈 엄마의 걱정을 트렁크에 싣고 손녀는 친할머니 댁으로 떠났다.


한 시간 남짓 지났을까? 분명 친할머니 댁으로 가고 있어야 할 손녀가 우리 집 현관문을 열고 불쑥 들어왔다.

웬일이야? 헛 것이 보일만큼 손녀의 부재를 아쉬워하지 않았는데 내 앞에 손녀가 서있다.


"할머니 글쎄 아빠가 고속도로에서 유턴을 했다니까요"


아이들은 가끔 이렇게 어른들이 까무러칠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즈 아빠가 뒤따라 들어왔다.


"오늘 아침에 저희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에 코로나 확진 환자가 나왔대요"


투명하고 빠른 행정처리는 아이의 할머니를 용수철처럼 튀게 하였다.

할머니는 제일 먼저 당신을 보러 오는 손녀 아이를 막아야 했다. 당신 집에 도착하기 전에 되돌려 보내려고 이미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아들에게 돌아가라고 전화를 하셨단다. 아이 할머니의 전화를 받고 사위는 가까운 인터 체인지로 진입해서 곧장 되돌아왔다고 한다. 마치 스펙터클한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순간이었을 것 같다


얼마나 놀라셨을까..., 그리고 얼마나 서운했을까..., 한편으론 그나마 아이가 도착하기 전에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지만 마음을 추스르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가 할머니를 걱정한다. 이러다가 학교를 못 가는 거 아니냐며 나라를 걱정한다,

어른들이 해야 할 걱정을 아이가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