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의 꽃말이' 나르시스'라지요 '자신을 사랑하라'라고 풀어서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스의 미소년 '라르 키소스'가 호수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반하여 뛰어들어 죽어서 피어났다는...,
내가 지금 그 미모에 빠져 죽을 지경입니다.
작년 오월. 지은 지 20년이 된 우리 집을 리모델링했습니다. 집은 짓는 일보다 고치는 게 더 힘들다고 합니다. 집을 고치는 동안 나는 부재중이었습니다. 어차피 집을 비워줘야 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무튼 내가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는 우리 집은 변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뜰의 반쪽을 데크로 만들어 놓은 게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봄이면 뜨락에서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들을 보면서 계절을 느끼곤 하였는데 대신 넓은 데크에서 즐기는 재미도 쏠쏠하더군요.
아이의 생일 파티도 이곳에서 하고 야외 삼겹살 파티도 이곳에서 가끔씩 열곤 하였답니다. 무엇보다도 무더운 여름날, 데크 위에 모기장을 치고 누우면 풀벌레 소리가 ''또르록 또록'가까이서 들리는 게 그지없이 좋았답니다.
그렇게 다시 봄이 되었네요.
데크는 원목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일 년에 한 번씩 무광 페인트칠을 해줘야 한답니다. 더구나 우리 집은 데크 위에 지붕이 없는지라 비와 눈이 내리면 오롯이 맞아서 색깔이 쉽게 변하거든요.
며칠 전부터 데크 바닥의 나무판 사이로 기를 쓰고 올라오고 있는 초록이가 내 눈길을 끌었답니다. 원래 그곳은 수선화가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이른 봄, 제일 먼저 잎을 내 밀고 곧이어 노란 꽃봉오리를 터뜨려서 나를 기쁘게 해 주었던 수선화가 어두운 데크 아래에서 싹이 터서 좁은 틈새를 비집고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수선화가 피어있던 그곳에 데크를 설치한다는 계획을 듣고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 수선화의 구근을 모두 캐서 다른 곳에 옮겨 두었더랍니다. 그때 채 못 캐고 남겨진 구근들이 있었던가 봅니다.
캄캄한 데크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수선화를 구출할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데크는 바닥과 땅이 거의 맞닿아 있을 정도로 틈이 없었기 때문이죠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데크에 페인트칠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밤이면 제 집인양 드나드는 고양이가 밟고 지나가지 않도록 데크 위 수선화가 솟아오른 자리에 소쿠리를 덮어 두었습니다. 할머니 집에만 오면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는 손녀를 조심시키기 위해 '수선화를 보호해 주세요'라고 쓴 팻말도 세워두었습니다.
데크 위에 피어있는 수선화
수선화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더니 오늘 아침에 노란 꽃망울을 터트렸습니다. 보세요 저것은 꽃이 아니라 강인함과 의지의 표상입니다.
아직도 봄날의 기운은 쌀쌀하지만 나는 데크에 엎드려 마냥 수선화를 바라봅니다. 만약에 저 꽃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나에게 무슨 말을 할까요.
컴컴한 데크 아래 자신들을 방치한 걸 원망할까요?
아무래도 원망을 하기 위해 기를 쓰고 꽃을 피운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살려고 빛을 찾아 주야장천 몸을 키웠을 겁니다. 꽃을 피워야 하니까요. 그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니까요.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수선화의 잎이 촉촉하게 젖었습니다.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군가는 당연한 일조차 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제 힘으로 스스로 일어서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을 수선화는 해냈습니다. 수선화는 지금 봄비를 맞고 있습니다. 한껏 손을 뻗어 비를 맞습니다. 자신의 뿌리에 빗물을 전해 주면서 수선화는 스스로 감동합니다.
나는 지금 나르시즘에 빠진 꽃에게서 듣습니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답니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 내가 없으면 세상도 끝이랍니다.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사는 게 암울하다고 해도 빛 한 줄 없는 컴컴한 데크 바닥 아래 땅만큼이야 하겠어요?
수선화가 봄비를 맞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