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지시만 받고 살던 네가 일을 내는구나.어쩌자고 그랬니, 눈보다 빠른 손. 이 손, 손이 문제야
눈아. 너는 뭐 했니 나서려는 손을 말렸어야지 빨리 네가 본 것을 머리에게 알렸어야지 머리야 빨리 전했어야지 삭제는 지뢰와 같은거니까 누르면 안 된다고 손에게 명령을 내렸어야지. 뭔가 고장이 난 거야 그렇지 않고는 내 손이 그렇게 빨리 지뢰를 밟을 수는 없었어
고등학교 가정 시간에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자는 곁에 두고 가위는 멀리 두라' 하셨다.
한번 잘라내면 이을 수 없는 재단처럼 꼼꼼히 생각하고 자르라는 말이었다.
반세기 전 수업 시간에 하신 선생님 말을 기억하는 내가 오늘은 왜 총명하지 못했냐고..., 울고 싶다.
누구는 내가 글을 쉽게 쓰는 줄 안다. 생각만 하면 기계처럼 줄줄 뽑아내는 줄 안다. 남편이 그랬다. 다시 쓰면 되지 않느냐고...,
다시 쓴 들 그 맛이 나옵니까. 내가 쓴 글은 숲에 대한 글이었다.
요즘 고립된 생활을 하는 중에도 매일 숲으로 산책을 갔었다. 며칠 전 가까운 대학교의 텅 빈 캠퍼스가 있는 능선의 단풍나무 숲에서 뜻밖의 울림을 받았다.
그래 제목은 다시 쓸 수 있다.
'숲. 나의 달팽이관을 울리다'였다. 기대되지 않는가? 하지만 거기까지다. 나는 더 이상 숲을 떠올릴 수가 없다. 내가 느낀 숲의 큼큼한 냄새는 이미 개봉되어 날아가 버렸고 바싹 마른 삼월의 낙엽들을 밟을 때마다 내 달팽이관은 잘 구운 붕어빵의 지느러미를 한 입 물었을 때 났던 그 소리를 기억했었다. 하지만 첫 느낌. 그대로의 맛을 이제는 되살릴 수가 없다.
지금껏 내 손은 순종적이었다. 머리가 지시하지 않으면 절대로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않았다. 집 안에만 고립되어 산지 한 달이 넘어서면서 내 몸 안에 시스템이 오류가 생긴 게 분명하다.
손은 지금 머리에게 미안해하고 있다. 사흘 밤낮을 손과 머리는 함께 작업을 했다.
수많은 단어들 중에서 가장 알맞은 것을 골라내고 수려하게 문장을 이끌어내어 손에게 전해 주면 손은 자판을 두들겼다. 눈은 손을 감시한다. 본 것을 그대로 머리에게 알린다. 머리는 상냥하게 지시한다. 네가 쓴 글자는 틀렸다고 다시 써야 한다고. 손은 순종한다. 절대복종한다.
그런데도 손은 지금껏 상명하복이라 생각한 적이 없다. 눈이 보이지 않는 일을 손이 한 적이 있다. 혼자서 등 뒤의 때를 밀거나 목 뒤로 목걸이의 고리를 용하게 찾아서 걸 때. 귓밥을 팔 때.심지어 요즘에는 내 몸이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뒷 머리카락 염색도 손이 알아서 한다.
언젠가는 머리가 시키지 않은 일도 곧잘 했다. 한동안 동생의 시골 별장에 머물면서 풀과 씨름을 벌일 때가 있었다.
손은 무척 빨랐다. 머리는 손이 뽑아내는 잡초를 보며 시원함을 느끼기만 했을 뿐, 손에게 지시는 하지 않았다. 그럴틈이 없을 정도로 손은 무의식적으로 풀을 뽑았다.
무의식.., 어쩌면 손이 재빠르게 삭제를 누른 것도 무의식 일 수 있다.
저장을 누르지 않고 허공에 날려버린 글들이 무수히 많은 걸 알기에 손은 그날의 강박관념을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긴 여행을 마치고 국적기를 탔을 때. 기내에서 먹는 비빔밥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바로 내 앞에서 비빔밥이 떨어졌다고 다른 메뉴를 골라달라고 했을 때의 기막힘은 더 잊을 수가 없다.
아주 어린 시절 꽁꽁 감춰둔 간식거리를 오빠들에게 몽땅 털렸을 때. 텅 빈 비밀장소를 보고 오늘처럼 허망했던 기억도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