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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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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Apr 03. 2020

그깟 꽃구경 내년에 하면 되지요


활짝 피었다. 집안에서창문만 열면 멀리  중턱벚꽃 행렬이 보인다.

''봄봄''

너희들 왜 제목이 ''봄봄''인 줄 아냐? 봄에는 모든 생물들이 싹을 틔우지, 새싹이 돋아난단 말이야  그런데 사람에게도 돋아나는 게 있지 그게 뭐냐면 사랑이란 말이지...,

김유정의 단편소설 ''봄봄''을 배울 때 국어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을 이제야 이해하게 됐나 보다.


그게 사랑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요즘 집 안에만 있는 게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봄을 느끼기에는 다소 불편모자에 선글라스. 마스크까지 장착하고 집을 나섰다.


인왕산 줄기와 끊길 듯 닿아있는 안산은 서대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보물과도 같은 산이다. 자락과 이어진 작은 동산이 바로 우리 집 뒷산이다. 우리 동네가 마치 소쿠리처럼 보이는 것도 이렇게 이 이어져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수령 백 년이 넘는 벚나무가 줄지어 있어서 봄 한철 상춘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안산과 우리 동네 뒷산은 같은 산줄기인 셈이다. 공원으로 조성되어 다듬어진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창밖으로 보이던 안산의 벚꽃길로 금방 갈 수가 있다.


뒤에 있는 공원은 강아지들과 매일 운동을 나갔던 산책로였지만 지난 10월, 한 녀석과 이별을 한 뒤로는 왠지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다가 느닷없는 전염병에 발이 묶이면서 겨울을 오롯이 보내고 봄이 되어서 오게 되었다.


이곳에도 아기 벚꽃이 한창이다.

풀밭에 핀 냉이꽃과 그새 다 자란 쑥덤불을 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는 기분이다. 넓은 공원에는 사람들이 뜸하다.

벚꽃이 만개한 안산 초입까지 혼자서 걸었다. 

공원과 이어진 산길 끝에 겨큰길 하나 사이일 뿐인데 이곳 안산에는 입구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삼삼 오오 짝을 지어 벚꽃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들 마스크는 턱에 걸친 채 음식을 나눠먹고 커피를 마시며 즐기는 모습이 전과 다르지 않았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평온하게 꽃구경을 하고 있다.


                               이런 광경은 해마다 볼 수 있답니다. 몇년 전에 찍은 안산의 벚꽃


벌써 석달 째, 모임은 물론, 친구들도 만나지 못하고 있다. 모임은 막연히 미루어지고 친구들과는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뿐이다. 다정하게 모여 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걱정이 앞선다.


나도 모르게 확진자가 되었을 때 내 동선에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있다면 그 결과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전염병도 두렵지 않을 만큼 저들의 우정이 두터운 건지 내가 겁쟁이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인지라 봄이 되면 새로운 움이 돋는다. 그게 희망이든 움직임이든 안에서 밖을 내다보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전시나 다름없는 중대한 시기인데 꽃에 유혹되어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게 될까 봐 두렵다.


오늘도 몇 번째, 핸드폰에서는 적색 경보음이 울리고 추가 확진자 소식을 알려 준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당부하고 손 씻기와 마스크 쓰기 해외 입국자들의 자가격리를 당부한다.


해마다 봄은 오고 꽃은 다시 핀다. 그깟 꽃구경 내년에 하면 되지요 뭐, 서둘러 오던 길로 되돌아왔다.


내 몸하나 지키지 못한다면 해마다 꽃이 핀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이야말로 수신제가 ()에 충실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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