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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Aug 18. 2020

 너와 함께여서 좋았어


이번 여행은 특별하다. 내가 없으면 한시도 혼자 있지 못하는 엄마 바라기인 반려견과 함께 휴가를 떠났기 때문이다.


사과나무가 동네를 에워싸고 있는 무풍茂豊의 시골집은 남편의 오랜 친구가 어렸을 적에 살던 집이다. 이제 친구의 부모님은 다 돌아가시고 어린 시절 추억만 남은 이곳에서 해마다. 봄과 여름 한철에 우리들은 함께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장마 끝무렵, 빗물에 씻겨 한결 맑고 투명해진 산과 들을 바라보며 시골길을 달린다. 이번 장마는 곳곳에 피해를 많이 입혔지만 이 곳만은 비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말을 입증하듯 벌판 가득 사과나무에 사과들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남편 친구들 네 가족이 모였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가족과 함께 하는 이 휴가가 그야말로 휴가가 아닌 난리통이었다. 자동차에 가득 실은 아기용품만 꺼내놔도 방안이 가득했다, 유모차와 기저귀 가방이 한편을 차지하고 그 와중에  보리차를 끓이고 젖병을 삶고 기저귀를 갈아대던 휴가였다


큰 놈은 큰 놈들대로 어울려 놀다가 모기에 물렸다고 울고, 넘어져서 다쳤다고 울고 , 자기들끼리 싸우고 울고..., 아기들은 먹고 싸고 울고.., 당연히 지칠 법도 한데 집을 떠났다는 해방감 하나로 모두들 휴가를 즐겼다. 아니 난리를 즐겼다.


지금은 단출한 부부모임으로 그 시절의 휴가 이야기는 추억을 회상하는 단골 메뉴가 되었다.


장마 끝에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도심은 열대야로 잠을 못 이루게 덥다는데 이곳은 그나마 아침저녁은 조금 서늘했다.

우리는 가까운 곳에 있는 피서지를 찾아갔다.

이 곳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쯤의 거리에 있는'김천 물소리 생태숲' 계곡이다. 숲에 들어서는 순간 눈이 맑아지는 것 같다.

계곡물이 얼마나 차갑던지 발을 담그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숲이 너무 좋아서 연 이틀간을 아침이면 도시락을 준비해서 그곳으로 갔다.


장마로 불어난 물줄기가 만들어 낸 작은 폭포와 맑은 계곡물, 무리 지어 피어있는 야생화 군락,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에 상수리 열매가 머리에 떨어져 때아닌 상수리 알밤을 맞아야 했지만 그조차 우리를 웃게 만들었다. 산책로 중간중간에 마련된 널찍한 평상은 가족끼리 오붓하게 앉아서 즐기기에 딱 알맞았다.


모두들 주변 오솔길을 따라 산책을 떠난 사이, 나는 반려견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이 좋은 풍경 앞에서 마음이 싸한 건 왜일까? 누가 뭐래도 이 여행이 우리들의 마지막 여행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지난 십칠 년 동안 언제나 함께 했던 나의 반려견, 집에 혼자 두고 며칠씩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면 흐느끼듯 울며 나를 반기던 아이였다.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듯이 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반려견에게 더는 헤어지는 아픔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부부동반 모임에도 주로 남편 혼자서 참석하는 일이 잦았다. 이 모임 역시 일 년 전에는 남편만 혼자서 참석했더란다. 그런데 이번에는 동행을 하게 된 것이다.

                                          저녁 산책길에서 만난 마을 풍경들


저녁 무렵 시골 풍경은 더없이 좋았다.

푸짐하게 늙은 호박이 제멋대로 나 뒹구는 모습도 좋고 하얀 박꽃이 피어있는 모습도 좋다.

산등성이에 떠 있는 구름조차 이쁘다. 이 고즈넉한 풍경을 사랑하는 나의 강아지와 함께 바라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정경을 바라보는 일도 아마 지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시골집을 관리하기가 힘든 데다가 정부의 주택 정책에도 위배되기 때문에 남편 친구는 집을 팔려고 내어놓은 상태였다.


마침 서울에서 왔다는 이가 부동산업자와 함께 시골집을 보러 왔다. 그때였다. 그동안 한 번도 짖어 본 일이 없는 우리 노견이 그들이 집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사납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강아지가 짖는 걸 보고 우리 모두는 놀랐다.  

이곳에서 처음 만난 다른 식구들에게는 지금껏 한 번도 짖지 않았던 강아지가 낯선 사람을 보고 짖는 게 너무나 신기했기 때문이다.


자기 엄마가 좋아하는 이곳을 사겠다고 보러 오는 사람이 미웠던 걸까?

이 곳에 온 뒤로 "참 좋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는 엄마의 행복을 지켜주려는 걸 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사람들은 이 곳을 떠났다. 다시 오지 말라는 듯 돌아가는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짖어대는 나의 반려견...


우리 내년에도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이번 여행은 너와 함께여서 더욱 좋았단다.

                                      기억해 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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