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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Aug 27. 2020

비싸야만  좋은 선물 아니잖아요

택배가 왔다. 박스를 열기도 전에 스멀스멀 냄새가 베어난다. 매년마다 초 여름이면 멀리서 보내오는 선물이다.

누구에겐가 선물을 받으면 기쁘다. 조금 부담스러운 선물도 있지만 보낸 사람의 정성이 묻어나는 선물은 고맙다. 그리고 감사하다.


딸아이가 결혼한 지 12년이 되었다. 결혼한 그 해 초 여름, 사돈이 선물을 보내왔다.

황토에서 자란 밭 마늘이었다. 육쪽으로  쪼개지는 단단한 이 마늘은 정말 진품이었다.

남편과 둘이서 저녁내 껍질을 벗기고 다듬어서 다음 날 시장 안의 마늘가게로 깐 마늘을 다지러 갔다. 가게 주인조차 이렇게 좋은 마늘을 어디서 샀냐고 물어볼 만큼 품질 좋은 마늘이었다.


우리 사돈은 마늘 농사를 짓지 않는다. 그런데도 해마다  잊지 않고 마늘을 사서 보내 주신다.

벌써 12년째. 똑같은 선물을 받고 있다.


받기만 하기엔 너무 염치가 없어서 거절도 몇 번 했다. 그럴 때마다. 마늘로 유명한 고장에 살고 있으니까 드리는 선물이라며 부담 갖지 말라고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튼실한 마늘을 보내주셨다.

고맙지만 받을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여름휴가 중에 함께 간 친구 부부가 인견으로 만든 홈웨어를 입고 있었다. 시원하고 디자인도 멋져 보였다.

문득 사돈들께 선물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이서 나란히 입고 있으면 우리 사돈도 친구 부부처럼 곱게 보일 것 같았다


마침 방학을 맞은 손녀가 즈이 아빠와 함께 할머니 집에 다녀온다고 한다. 손녀 편에 선물로 보내드리면 좋을 듯싶었다.


부리나케 친구가 알려준 대로 쌍**대리점을 찾아갔다.

다행히 내가 본 그 무늬의 옷이 있었다. 더구나 어제부터 여름세일에 들어가서 친구 부부가 산 가격보다 20퍼센트 싼 값에 살 수 있었다.


사이즈만 알면 되겠기에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 그런 거 안 입으셔요 사지 마세요''


그런 거라니..., 보지도 않고 사지 말라고 한다.  엄마가 자신의 시부모님께 드리는 선물로는 너무 소박하단다. 여자들은 값이 헐한 걸 소박하다고 에둘러서 말한다.


''원래 69000원에 팔던 건데 손님 운이 좋으시네요''라고  가게 아줌마가 말하지 않았던가.


선물은 받는 마음도 좋지만 주는 마음은 더 좋아야 한다.

자녀들에게 받는 가장 좋은 선물은 현금이라고들 한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빚어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연배가 같고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서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잘 안다. 누군가에게 주고 싶은 선물 중에는 내가 갖고 싶은 것도 있다.

나라면 이 더위에 우리 부부가 함께 시원하게 입을 수 있는 인견 홈웨어를 선물 받고 싶을 것이다.


굳이 며느님께서 싫다는 걸 살 이유가 없다. 집 앞 홍삼 가게에서 홍삼 진액 한 박스를 사서 선물로 보내드렸다.


꼭 비싸야만 좋은 선물은 아니다. 좋은 선물은 정이 담겨 있어야 한다.

일 년에 한 번 매년 봄마다 보내오는 마늘은 사돈이 나에게 주는 정이다.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선물을 받고 나도 정이 담긴 선물을 보내드리고 싶었다.


앞 집의 젊은 애기 엄마는 가끔 나에게 꽃을 선물한다. ''꽃시장에 다녀왔어요'' 그 한 마디에  따뜻함을 느낀다.

손재주가 좋은 아는 동생은 손수 뜨개질한 가방과 모자를 선물했다. 나는 이 가방을 들고 외출할 때면 누가 묻지 않아도 내가 먼저 자랑을 한다.  

한 땀 한 땀 공들여 뜨개질을 한 가방은 선물이 아니라 정 보따리다.

멀리 순천에 사는 내 남동생은 자신이 직접 구운 다기를 선물하고 다육이들 아빠인 우리 오빠는 기르던 다육이 화분을 덥석 안겨주었다.

   내가 받은 소중한 선물들


선물이란 이런 것이다.

주는 마음이 행복해서 그 행복이 선물을 볼 때마다 되살아난다.


우리말에 '것'이라고 하는 단어는 주로 물건을 지칭하는데 쓰지만 왠지 하대하는 느낌이 든다


''그런 거 안 입으세요''


소심한 나는 아무렇지 않게 한 딸아이의 말이 자꾸만 걸린다.  

정성이 담긴 선물은 아무리 값이 헐하여도 '것'이란 건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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