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희동 김작가 Aug 28. 2020

우리에겐 고구마순 김치가 있다

장마가  길어지고 있다. 코로나와 누가  더 지겹나 내기라로 하는 듯,  한 달 넘게 꾸준히 내리고 있는 , 장마 중간에 조금이라도 비가 그치면 들리는 매미소리가 반갑다.


기대를 갖고 한입 덥석 문 복숭아가 싱겁다. 이때쯤이면 가장 단맛이 풍성할 때인데 비 때문이다. 한창 햇빛을 받고 단맛을 품어야 할 과실들이 햇빛을 보지 못한 지 한 달 여, 과실뿐만 아니라 연한 잎을 가진 채소들은 모두 빗물에 물러져서 흐물거린다.

작년 이맘때 라면 한창 잎을 따먹었을 우리 집 텃밭의 상추도 장마에 다 녹아서 없어졌다.


서울 근교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남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올해 처음으로 밭에 고구마를 심었는데 매일 내리는 비 때문에 밑은 들지 않고 줄기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고 한다.


고구마 줄기를 따러 갈까? 고구마 줄기는 핑계일 뿐, 남편의 속 마음은 친구를 만나러 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는 걸 알고 있다.

재해본부에서는 계속 알람 문자가 뜨고 있다. 한강 주변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한다. 우리는 승용차 대신 전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장화를 신고 마스크와  모자로 무장을 한 나는 누가봐도 밭일하러 가는 아낙네의 패션인데 반해.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헐렁한 남방샤쓰를 입은 남편의 복장은 바캉스를 떠나는 아저씨 모습이다.  


친구 부인은 미리 고구마 줄기를 꺾어 준비해 놓고 있었다. 예감한 대로 남편은 친구와 낮술 파티를 즐기고 우리는 그 곁에서 고구마 줄기를 다듬었다. 금방 밭에서 따온 고구마 줄기는 껍질을 벗기기도 수월했다. 잎을 따내고  줄기를 꺾어 내리면 하얀 속살이 쓰윽 나오는 게 뭔가 의 쾌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비 오는 날, 도란도란  앉아서 옛이야기를 나누며 고구마순을 다듬는 일도 오랜만에 느끼는 즐거움 중에 하나였다.

비오는 날 고구마순 다듬기



어머니는 온갖 김치를 다 담글 줄 아셨다. 아마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김치명인이 되시지 않았을까,

그런 어머니 덕분에 나는 갖가지 김치 맛을 보며 자랐다.

유난히 톡 쏘는 동치미의  맛, 한여름의 열무김치. 쌉쌀한 고들빼기김치, 알싸한 파김치. 콧등을 치는 갓김치, 향긋한 깻잎김치.... 그것 말고도  쌀쌀한 초겨울 김장 끝 무렵에는 상큼한 미나리 김치를,  요즘처럼 장마철에는 고구마순 김치를 담그셨다.


사실 고구마순 김치는 한 여름 배추가 금값일 때 배추값이 비싸서 담지 못하는 배추김치 대신이어서 그렇게 맛있다는 걸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두 아이들을 임신하여 입덧을 할 때마다  나는 어머니가  담가주시던 고구마순 김치가 유난히 생각났다.

예전에 먹어봤던 그 맛을 낼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한번 담아봐야겠다.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는 맛깔 좋은 음식 솜씨를 딸이 아닌 며느리에게 물려주셨다. 그래서 지금도 친정에 가면 어머니의 손맛을 오롯이 느낄 수가 있다.


친정 올케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함께 고구마순 김치 레시피가 맛깔나게 전해진다.


고구마순이 눈 흘길 정도로만 소금 간을 해줘(해석:  아주 짧은 시간 살짝 소금 간을 해주라는 말)

확독에 홍고추를 갈아 아참, 고모는 확독이 없으니까  믹서에 갈아야 것네, 그럼 맛이   덜한데 할 수 없지 ,

그다음에는 남들은 김치에 찹쌀죽을 넣는데 엄니는 흰밥을 갈아서 넣더구먼 근데 그게  앵( 해석: ‘안긴다’의 사투리, 혀에 감기다라는 뜻)

갈아놓은 고추에 액젓과  마늘, 생강, , 고춧가루. 양파를  넣은   애기 다루듯이 살살 버무려 주면 , 너무 짜면 안 되아, 맛나게 담아 먹어 !

서둘러 전화를 끊는 것까지 어머니를 닮았다.


올케 언니가 알려준 대로 살짝 간을 해서 부드러워진 고구마순에 준비한 양념을 넣고 김치를 담았다.

맛을 보는 순간, 이럴 수가.., 이 김치가 진정 내가 만든 김치란 말인가,

여보 나 김치 장사해야 될까 봐. 아직 맛도 보지 않은 남편에게 설레발을 쳤다.

남편이 기다란 고구마순 김치를 한가닥 집어서 맛을 본다.

''괜찮네''

이 정도면  칭찬을 아끼는 남편의 평가로는 대단한 찬사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들에서 나는 채소로 못 담가먹는 김치가 없는 것 같다. 봄철에 나는 쓴 나물과 민들레 잎으로 김치를 담가 먹기도 했던 우리 조상님들, 특히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은 가난하다고, 먹을 게 없다고 해서 주저앉아있지 않고 들로 산으로 다니며 가족들의 먹거리를 구해 입 맛에 맞게 상에 올리지 않았는가,

김치 가짓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어머니들의 정성이 가득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작가님이 쓴 프랑스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읽었다. 나는 그 글을 읽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프랑스 음식이 그다지 미식이 아니라는데 놀랐다. 사실 내가 여행 중 머물렀던 호텔 조식에 야채가 없는 걸 보고 아쉬워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들 프랑스 인들도 최고의 건강식품으로 알고 있는 야채를 먹기 시작한 게 16세기 이후라고 한다.

프랑스 여인들은 화단에 꽃을 심어 집안을 장식할지언정 채소를 가꿔서 식단을 꾸밀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해외에서 한국인들이 살고 있는 집을   있는 방법 중에 하나가 한국인은  한편에 채소를 가꾼다고 한다. 무농약으로 가꾼 채소를 가족들에게 먹이는 주부들의 지혜는 이국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이는 힘들수록 강해지는  우리 어머니들의 삶의 방식이 알게 모르게 잠재해 있다는 증거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기후 중 여름 한 철에는 장마가 있고 비닐하우스조차 없던 예전에는 장마철에 채소를 먹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고구마를 뿌리나 먹을 줄 알았지 줄기의 껍질을 벗겨서 김치를 담아 먹을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고구마 줄기처럼 억센 삶을 살아온 우리 어머니들의 가난을 이겨내는 방법은 대단하다. 

뿐만 아니라 들판에 돋아난 쓴 풀도 서양처럼 샐러리로 그냥 먹지 않고

갖은양념으로 버물려서 익혀 먹지 않았는가,


오늘 뉴스에  ''장마 태풍에  무 배추값 3배 폭등 종갓집 김치 판매 중단''이라는 제목의 글이 떴다.

걱정 마세요 우리에겐 고구마순 김치가 있으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비싸야만 좋은 선물 아니잖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