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감정을 얼굴 표정이 아닌, 대화는 더욱 아닌, 손끝 하나로 마무리하는 시대가 왔다.
스무 명이 모인 단체 카톡에서 유독 그룹 탈퇴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 그냥 B라고 하자
A: 우리 이번 모임 어디서 할까?
B: 소고기 육질이 좋은 **정 어때?
C: 거긴 교통이 안 좋아 술 마시려면 모두 차를 안 가지고 올 텐데...,
"B님께서 나가셨습니다"
what? 처음엔 뭔가 잘못 눌렀겠지 누군가 그를 초대하면 못 이긴 척 다시 들어오곤 했다.
B의 표현법을 눈치챈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자신의 지인이 운영하는 **정 음식점을 도와주지 않는 우리 모두가 서운했다고 한다. 친구와의 우정을 내세웠지만 친구 앞에서 자신의 인맥을 은근히 뽐내고 싶었던 속마음을 누가 모를까? 그는 단체생활에서도 진지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서운하면 말로 할 것이지 카톡에서 나가는 건 무슨 뜻일까... 그건 모임에서의 단절을 의미한다.
나부터도 전화 통화를 하기보다는 주로 카톡을 많이 이용한다. 여러 명에게 같은 소식을 전할 때는 단체 카톡만큼 좋은 게 없다.
하지만 불편한 점도 많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알람 소리에
음소거를 해놓고 한참을 보지 않으면 나만 소식을 모르고 있을 때가 있다. 수시로 우편함을 열어보 듯 점검을 해야 한다.
3년 전, 뒤늦게야 그가 카톡에서 나갔음을 알았다. 단체 카톡이 아닌 둘만의 대화창에서 그가 사라지고 덩그러니 나 혼자 남아있는 줄 몰랐다. 잘못 눌렀을 거라는 생각에 그를 다시 초대했다. 초대하자마자 금방 다시 나가버렸다. 그때서야 그가 나와의 단절을 표현한 거라는 걸 알았다.
참 쉽다. 그와는 한 동네에서 알고 지낸 지 7~8년쯤 되어가는 동네 친구였다. 남편들과도 친해져서 부부 세 팀이서 함께 여행을 다녀온 후에 생긴 일이다. 원인도 모른 채 일방적으로 관계가 끊기고 그 후로 지금까지 소원한 사이가 되었다.
오랜 세월을 서로 알고 지냈으면서도 손가락 하나로 관계를 정리하다니..., '나가기' '삭제'라는 단어 하나만 누르면 긴 세월 맺어 온 우정조차 순식간에 정리해버리는 세상, 아니 그런 인간의 마음이 무서워진다.
다섯 손가락 중에서도 가장 가냘픈 새끼손가락은 약속의 징표다. 새끼손가락을 걸고, 손도장을 찍고..., 우리 몸의 작은 신체 하나가 우리 생활에 참 아름다운 정서를 남겼다. 말로 줄줄이 설명하기보다 엄지 손가락 하나만 치켜세워도 최고야, 대단해, 라는 표현이 되어 상대는 감동한다. 손가락 대화는 서로 곁에 함께 있을 때는 따뜻하지만 이처럼 기계 앞에서는 차가워진다
요즘처럼 집콕을 하며 스스로 자가격리 상태에 살면서는 SNS가 친분을 유지시켜주고 있다. 나부터도 아침에 일어나면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실린 글들을 보며 지인들의 근황을 안다. 그들이 쓴 글과 사진에 좋아요와 하트를 눌러서 다녀간 흔적을 남기고 좀 더 친한 사이에는 댓글을 남겨 마음을 전한다. 아는 척을 하지 않고 눈팅만 하더라도 그의 요즘 생활은 어느 정도 알게 된다,
브런치에 내가 글을 싣는 것도 "나 요즘 이렇게 살고 있어요"라고 일상의 소식을 전하는 의미도 있다.
'삭제'
오래된 사이라면, 그 안에 세월이 녹아들었다면, 끊을 수 없는 관계라면, 누르기 전에 가슴에게 물어봐야 한다. 지우고도 살겠니? 라고
누군가가 내 이름을 지울 때 그에게서 나는 무인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