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지났다. 올해에는 시댁을 가지 못한 딸네 가족이 결혼 후 처음으로 친정인 우리 집에서 차례를 지냈다.
가까이 살고 있어서 평소에 자주 드나들지만 명절만큼은 즈이 시댁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나로서는 올 추석이 특별했다.
차례상 위에 올리는 음식 외에 사위와 딸, 손녀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했다.
딸네 식구가 돌아가고 난 뒤, 온통 꺼내놓은 그릇들을 닦아서 제 자리에 넣고 냉장고 정리를 했다. 냉장고에 넣어 둔 음식만으로도 우리 부부가 몇 날 며칠은 장을 보지 않아도 되겠다 싶다.
나물과 송편, 무와 소고기 버섯을 넣어 끓인 탕. 그리고 먹고 남은 갈비찜과 갖가지 전들이 비집고 들어 갈 자리가 없을 만큼 꽉 찼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부피를 차지하는 것은 전이다.
전은 차례상에서 빠지면 안 되는 반찬이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전에서 풍기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조상의 영혼을 부른다고 한다.
한 가지 재료가 아니라 육전, 어전, 채소전, 산적 등 가짓수대로 부치다 보면 어느덧 둥그런 채반에 전들이 가득하다.
비 오는 날 생각나는 김치전이나. 막걸리 안주로 해물을 듬뿍 넣어서 부쳐 낸 해물 파전과 달리 차례를 지내고 남은 전들은 냉장고 안에서도 골칫거리가 된다.
전은 부치고 있을 때 금방 기름 두른 프라이팬 앞에서 입으로 호호 불어가며 먹어야 제 맛이다. 부칠 때 너도 나도 한 입을 원하던 전도 차례가 끝나고 나면 아무도 거들 떠 보지 않는다.
예전에는 차례를 지내고 돌아가는 동서들 손에 들려 보내기도 하고 식구들이 모여 식사를 할 때는 나머지 전과 김치를 넣어서 찌개를 끓이면 한 끼 식사로 거뜬했다.
집 안의 마지막 어른이셨던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큰며느리인 내가 제사를 주관하게 되면서 모든 게 간소해졌다. 추석은 성묘로 대신하기 때문에 차례는 아이들과 함께 단출하게 지낸다. 그렇다고 차례음식까지 간소 할 수는 없다.
가짓수를 줄일 수 없는 전은 예나 지금이나 푸짐하다. 사실 차례상에 먹음직스러운 전이 빠지면 차린 게 없을 정도다. 전은 그만큼 차례상의 중심 반찬이기도 하다.
채소전의 우두머리 격인 호박전을 필두로 가지전과 당근 전. 표고버섯 전으로 색감을 내고. 저민 동태살에 계란물을 입혀 어전을 만든다. 육전으로는 소고기 등심을 얇게 저며 지져낸다.
산적꽂이는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양념하고 버섯 파를 키 맞춰 자른 뒤 대나무로 다듬어 만든 꽂이에 색을 맞춰 끼우면 된다. 혼자서 차례음식을 준비하기에 손이 모자랄 때면 남편과 딸아이도 곧잘 도와주곤 하였다. 이럴 때 딸은 손 많이 가는 산적꽂이를 왜 꼭 만들어야 하는지 푸념을 하였다.
아마 모둠 전을 만들고 남은 재료가 아까워서 꽂이에 꽂아 부친 게 아니냐는 근거없는 이유를 달기도 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우리 집 명절은 지금과 달랐다. 전 날부터 집안에 식구들이 가득하여 시끌벅적하였다.
동서들과 둘러앉아서 전을 부친다
맨 먼저 채소전을 부치고 그다음 동태전을 차례로 부친 뒤 마지막에 지져내는 육전은 이전과 다른 냄새와 풍미로 식구들을 주방으로 끌어들인다. 한입씩 맛보는 아이들도 더 달라고 하고 시동생들은 안주거리로 육전을 원한다. 육전은 부치는 족족 사라지기 때문에 얼른 부쳐서 높은 시렁에 얹어두어야 한다.
이렇게나 인기가 좋았던 육전도 차례가 끝난 뒤에는 식구들도 더 이상 찾지 않는다.
냉장고가 비좁아서 아무래도 오래 손이 가지 않는 음식은 냉동실로 보내야 할 것 같다.
호박전과 동태전 산적을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 반찬이 없을 때 꺼내서 먹을 요량이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프라이팬에 다시 기름을 두르고 따끈하게 지져서 내놓아도 남편은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실은 나도 부쳐놓은 지 오래된 전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까워서 음식을 먹는 건 미련한 짓인 줄 알면서도 버리기 아까워서 조금씩 먹을 뿐이다.
냉동실로 옮겨진 전은 언제 불러줄지 모르니 차례음식으로써는 퇴출이나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 빛을 발하던 때가 있었다. 때가 지나 밀려났지만 먹지 않고 이리저리 치이는 전 같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
하긴 전말고도 먹을 게 풍부해진 세상 탓이지 전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