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어디일까? 대부분 자기 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집안에서 불이 나지 않는 한, 집처럼 안전한 곳도 없다. 집 밖은 위험 투성이다.이 세상의 모든 사건 사고는 대부분 집 밖에서 일어나니까....
한시간 전만 해도 난 이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우리 집이라고 생각했었다.
조금 전 작은 소동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늦은 밤에 핸드폰이 울렸다.
엊그제 아래층에 새로 이사 온 세입자였다. 밤늦게 전화하는 걸 죄송해하며 조심스럽게 말한다.
''늦은 밤에 죄송한대요 친구가 저희 집에 놀러 왔는데 화장실에 갇혔어요''
''그럴 리가요''
보조키를 가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밖에서 열쇠로따주기만 하면 금방 활짝 열릴 줄 알았는데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황당할까?친구의 집들이 파티에와서 화장실에 갇히는 일이 평생에 한 번이나 있을까? 안에서는 계속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저녁부터 일찍 잠자리에 든 남편을 깨웠다. 아무래도 손잡이를 부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3년 전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새로 만든 문짝은 지금껏 말썽 한 번 부린 적이 없었다.
드라이버와 망치를 가지고 내려온 남편이 사정없이 손잡이를 망가뜨렸다. 한밤중에 망치질 소리라니... 예민한 앞집 사람들이 신경 쓰였지만 어쨌든 화장실에 갇힌 사람부터 구해야 했다.
겨우 손 잡이를 떼어내고 문이 열리려나 싶었는데 웬걸? 손잡이만 떨어져 나갔을 뿐. 문과 문틀 사이에 박힌 잠금장치는 그대로였고 오히려 이제는 어떤 도구로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뻥 뚫린 손잡이 구멍 사이로 갇힌 이의 두려운 눈이 보였다.
20여분 동안 문고리와 실랑이를 벌였지만 안에 갇힌 사람을 구해줄 방도가 없었다.
화장실에 창문이 있기는 하지만 이웃집 벽과 우리 집 벽 사이가 너무 가까워서 그 창문은 아마 그 옛날 통아저씨의 묘기라면 모를까 누구도 넘어올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
집을 고칠 때. 밖에서 침입하지 못하는 데에만 염두를 두었지 오늘처럼 누군가 안에서 밖으로 나가야 할 상황은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은 아직도 닫혀있고 화장실 안에 갇혀있는 손님은 거의 울기 직전이다.
이 밤중에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나..., 황당함을 넘어서 답답하고 막막했다.
''우리 119에 전화를 해볼까요?''
집들이 손님으로 온 일행중 한 명이 생각해 낸 말이다.
그렇지 우리에게는 119가 있었지. 밤열한 시 119 구조대원이 한 명. 두 명 세명..... 무려 여섯 명씩이나 일층의 화장실에 갇힌 사람을 구출하려고 출동했다.
맨 먼저 코로나 증상이 없는지부터 점검을 하고 그다음 작은 소동에 겁내고 있는 나를 진정시키더니 커다란 장도리로 너무나 쉽게 문을 따고 안에 있는 사람을 구했다.환호성과 함께 박수가터졌다.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이 왜 소방관이 었는지 이해가 갔다. 참 든든하고 멋진 분들이다. 누군가 그분들이 일을 마치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세금내는 게 아깝지 않다는 말을 했다.
이렇게 황당한 일은 나만 겪은 줄 알았는데 어제 필명이 '조선 여인'님인 작가님께서브런치에 올린 글을 읽고 깜짝 놀랐다.''화장실에 갈 때 스마트폰을 허하노라''라는 제목의 글이었다.이 글을 쓴 작가님도 우리 집에서 겪은것과 똑같은 일을 겪은 것이다. 다른 것은 우리집은 119 구조대원이 해결을 해줬지만 그 작가님은 남편분이 손잡이를 망가뜨려서 문울 열어 주었다고 한다. 내가 찍어 둔 우리 집 화장실 사진과 똑같은 모습을 보고 어쩌면 이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이럴 수가.... 똑같은고장으로 뜯긴 또 다른 집의 문과우리 집 화장실 문
우리나라는 화장실의 창문을 서양처럼 크게 만들지 않는다. 넓고 큰 서양의 화장실 창문과 달리 우리나라 화장실의 창문은 대부분 높은 곳에 작게 설치되어 있다.( 오래된 집일수록 화장실 창문이 작다)
우리 집만해도 네 개의 화장실이 모두 공기만 순환시킬 수 있도록 작은 창문으로 뚫려 있을 뿐이다,
아파트는 그나마 창문도 없는 곳이 많다. 모두 환풍기를 사용하여 공기를 위로 빼내기 때문이다.
만약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있을 때 오늘처럼 화장실에 갇혔다고 생각하면 그보다도 더 황당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
열쇠는 안에서는 누구라도 열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열쇠도 기계이고 기계는 한번쯤 고장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 밤. 작은 소동을 겪고 나서 안전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근심을 해소하러 들어간 곳에서 더 큰 근심을 얻을 수가 있으니 이제 화장실에 갈 때도 '조선 여인님'이 쓴 글처럼 스마트폰을 꼭 지참해야 될 것 같다.
가장 안전할 것 같았던 내 집도 가끔은 이렇게 위험할 때가 있다.
집 밖도 집 안도 위험하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든든한 119가 있어서 그나마 참 다행이다.
P, S친구 집에 집들이 파티하러 왔다가 봉변을 당한 보*씨 , 그리고 친구님들,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어젯밤 친구를 걱정해 주는 마음과 119 구조대에게 환호의 박수를 쳐주는 모습을 보며 참 흐뭇했어요. 역시 젊음은 좋구나,
신선한 해프닝으로 이해를 해 주신 아래층 주인님과 친구들, 그리고 나도 좋은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밤늦게 수고해 주신 119 구조대원님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