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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Oct 16. 2020

우리에게는 119가 있습니다.

화장실에 갈 때 스마트폰  꼭 챙겨주세요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어디일까?  대부분 자기 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집안에서 불이 나지 않는 한, 집처럼 안전한 곳도 없다. 집 밖은 위험 투성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건 사고는 대부분 집 밖에서 일어나니까....

 시간 전만 해도 난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우리 집이라고 생각했었다.

조금 전 작은 소동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늦은 밤에 핸드폰이 울렸다.

엊그제 아래층에 새로 이사 온 세입자다.  밤늦게 전화하는 걸 죄송해하며 조심스럽게 말한다.


''늦은 밤에 죄송한대요 친구가 저희 집에 놀러 왔는데 화장실에 갇혔어요''


''그럴 리가요''


보조키를 가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밖에서 열쇠로 따주기 하금방 활짝 열릴 줄 알았는데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황당할까?  친구의 집들이 파티에 와서 화장실에 갇히는 일이 평생에 한 번이나 있을까? 안에서는  계속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저녁부터 일찍 잠자리에 든 남편을 깨웠다. 아무래도 손잡이를 부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3년 전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새로 만든 문짝은 지금껏 말썽 한 번 부린 적이 없었다.

드라이버와 망치를 가지고 내려온 남편이 사정없이 손잡이를 망가뜨렸다. 한밤중에 망치질 소리라니... 예민한 앞집 사람들이 신경 쓰였지만 어쨌든 화장실에 갇힌 사람부터 구해야 했다.


겨우 손 잡이를 떼어내고 문이 열리려나 싶었는데 걸? 손잡이만 떨어져 나갔을 뿐. 문과 문틀  사이에  박힌 잠금장치는 그대로였고 오히려 이제는 어떤 도구로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뻥 뚫린 손잡이 구멍  사이로 갇힌 이의 두려운 눈이 보였다.

20여분 동안 문고리와 실랑이를 벌였지만 안에 갇힌 사람을 구해줄 방도가 없었다.


화장실에 창문이 있기는 하지만 이웃집 벽과 우리 집 벽 사이가  너무 가까워서 그 창문은 아마 그 옛날 통아저씨의 묘기라면 모를까 누구도 넘어올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

집을 고칠 때. 밖에서  침입하지 못하는 데에만 염두를 두었지 오늘처럼 누군가 안에서 밖으로 나가야 할 상황은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은 아직도 닫혀있고 화장실 안에 갇혀있는 손님은 거의 울기 직전이다.

이 밤중에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나..., 황당함을 넘어서 답답하고 막막했다.


''우리 119에 전화를 해볼까요?''


집들이 손님으로 온 일행 중 한 명이 생각해 낸 말이다.

그렇지 우리에게는 119가 있었지.  열한 시  119 구조대원이 한 명. 두 명 세명..... 무려 여섯 명씩이나 일층의 화장실에 갇힌 사람을 구출하려고 출동했다.


맨 먼저 코로나 증상이 없는지부터 점검을 하고 그다음 작은 소동에 겁내고 있는 나를 진정시키더니 커다란 장도리로 너무나 쉽게 문을 따고 안에 있는 사람을 구했다.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터졌다.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이 왜 소방관이 었는지 이해가 갔다. 참 든든하고 멋진 들이다. 누군가 그분들이 일을 마치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세금 내는 게 아깝지 않다는 말을 했다.


이렇게 황당한 일은 나만 겪은 줄 알았는데 어제 필명이 '조선 여인'님인 작가님께서 브런치에 올린 글을 읽고 깜짝 놀랐다.''화장실에  갈 때 스마트폰을 허하노라''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이 글을 쓴 작가님도 우리 집에서 겪은 것과 똑같은 일을 겪은 것이다.  다른 것은 우리집은 119 구조대원이 해결을 해줬지만 그 작가님은 남편분이 손잡이를 망가뜨려서 문울 열어 주었다고 한다. 내가 찍어 둔 우리 집 화장실 사진과 똑같은 모습을 보고  어쩌면 이런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이럴 수가.... 똑같은 고장으로 뜯긴 또 다른 집의 문과 우리 집 화장실 문


우리나라는 화장실의 창문을 서양처럼 크게 만들지 않는다. 넓고 큰 서양의 화장실 창문과 달리 우리나라 화장실의 창문은 대부분 높은 곳에 작게 설치되어 있다.( 오래된 집일수록 화장실 창문이 작다)

우리 집만 해도 네 개의 화장실이 모두 공기만 순환시킬 수 있도록 작은 창문으로 뚫려 있을 뿐이다,


아파트는 그나마  창문도 없는 곳이 많다. 모두 환풍기를 사용하여 공기를 위로 빼내기 때문이다.

만약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있을 때 오늘처럼 화장실에 갇혔다고 생각하면 그보다도 더 황당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


열쇠는 안에서는 누구라도 열 수 있도록  들어졌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열쇠도 기계이고 기계는 한번쯤 고장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 밤. 작은 소동을 겪고 나서 안전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근심을 해소하러 들어간 곳에서 더 큰 근심을 얻을 수가 있으니 이제 화장실에 갈 때도 '조선 여인님'이 글처럼 스마트폰을 지참해야 될 것 같다.


가장 안전할 것 같았던  내 집도 가끔은 이렇게 위험할 때가 있다.

집 밖도 집 안도 위험하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든든한 119가 있어서 그나마 참 다행이다.



P, S  친구 집에 집들이 파티하러 왔다가 봉변을 당한 보*씨 , 그리고 친구님들,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어젯밤 친구를 걱정해 주는 마음과 119 구조대에게 환호의 박수를 쳐주는 모습을 보며 참 흐뭇했어요. 역시 젊음은 좋구나,

신선한 해프닝으로 이해를 해 주신 아래층 주인님과 친구들, 그리고 나도 좋은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밤늦게 수고해 주신 119 구조대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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