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가 아닌 작업이라야 맞다. 그 많은 다슬기 꼬투리를 부엌 기구가 아닌 철사를 끊는 기구로 자르고 계셨으니...,
다슬기를 입에 대고 호로록 들이마시면 입안으로 딸려오는 토실한 살과 함께 진한 다슬기의끝 맛이 일품이다.
시골에 사는 친척이 직접 잡은 다슬기를 보내오는 날은 시댁 식구들이 함께 모여 즐거운 식사를 하는 날이라고 한다.
우려낸 다슬기 국물에는 아욱이나 부추를 넣어 끓이기도 하지만 시어머니께서는 대파를 숭덩숭덩 잘라 넣으셨다. 투박한 듯 하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올갱이국을 결혼 후 나도 좋아하게 되었다.
다슬기가 생소한 나와 달리 마을 앞을 흐르는 개천에서어린 시절 물장구를치며 놀았던 남편은가끔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올갱이국을그리워한다.
며칠 전,남편의 친구 부부와 함께교외로 나갔다.무료하게 집콕을 하고 지내며 답답함을 느끼던참이었는데바람이나 쐬자며 드라이브를 나간 것이다.
자유로를 지나 파주 어디쯤, 넓은 들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확 트인다. 누렇게 익은 벼들이 꽃처럼 예쁘다.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가로수와 길가에 무리 지어 피어있는 코스모스가 안내하는 대로 무작정 달렸다.
코로나로 힘든 시국과는 무관한 듯 초연하게 가을을 맞이하고 있는 시골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동네 한편. 넉넉한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천천히 오솔길을 걸어 산책을 했다.
하늘에는 잠자리들이 낮게 날고 있고 풀밭을 걸을 때마다 놀라서 달아나는 풀벌레들로 주변이 잠시 소란스러웠다.
마스크 없이 바깥공기를 들이마시는 것도 좋은데 이런 멋진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니. 역시 가을은 도시보다 시골에서 맞이하는 것이 더 아름다웠다.
마을 앞에는개울물이 흐르고 있었다. 맑고 깨끗한 물 위에서 황새한 마리가무언가를 잡아먹고있다. 그 모습을 본 시골 벌거숭이 두 친구들은 촉이 통했나 보다. 예전에 황새가 있는 곳에는 물고기나 다슬기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냇물에 발까지 적시며 들어간 남편이 뭔가를 하나 건져 돌아왔다.
윤이 반질반질 나는 제법 큰 다슬기였다.
그래서 였다. 그날 우리는 산책을 접고 생각지도 않게 다슬기 사냥을 하게 되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 속에서돌멩이를 살짝 들춰내면 거기에는 어김없이 다슬기가 숨어 있었다.
흐르던 물이 잠시 멈추는 웅덩이에는 다슬기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기도 했다.제법 실한 다슬기였다.
다슬기는 먹는 재미만 있는 줄 알았는데 잡는 재미도 이처럼 쏠쏠한 줄 몰랐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물속을 헤집고 다녔다.
다슬기를 잡는 중
그런데 한참을 허리를 굽히고 물속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허리가 너무나 아팠다.
흐르는 물을 오랫동안 바라봐서 인지 어지럼증도 느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끼가 낀 미끄러운 돌 위를 걷다가 넘어져서 무릎도 아팠다.
시어머니께서 귀한 올갱이국이라고 한 말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 옛날 시어머니께서 끓여준 올갱이국 맛을 낼 수 있을까....
예전에 먹었던 그 맛을 생각하며 된장을 풀어서 끓인 물에 다슬기를 넣고 끓였다. 파랗고 진한 국물이 베어 나온다. 가을 부추를 썰어 넣고 간을 맞췄다.
아.., 이 맛이다. 올갱이국 맛,
시원한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올 때 나도 모르게 '꺼이'라고 목청이 울렸다.
어머니처럼 일일이 살을 발라서 줄 정성은 없지만오래전 그 날의 맛을 재현한 게 어디인가,
굵은 다슬기를 찾아내어서 서로 자기가 잡은 것이라고 아이들처럼 우기면서 그 옛날 그랬듯이 '호로록' 다슬기를 입에 대고 진한 국물을 맛본다. 다슬기 특유의, 아니 올갱이라고 부르는 충청도 사투리가 더 어울리는 맛이 목을 타고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