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도 창밖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은..,
새벽의 상념
더듬더듬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한다. 핸드폰 불빛이 이처럼 강했었나? 눈이 부시다.
네시...,
새벽이라고 해야 할지 밤중이라고 해야 할지.., 평소 일어나는 시간에 비하면 지금은 한 밤중이라야 맞지만 더는 잠이 들 것 같지 않다. 곁에 둔 아이패드를 끌어당겼다. 이 시간에 깨어있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닌가 보다 닫아둔 아이패드에서 불빛이 한번 새어 나왔다가 사라진다. 브런치 알람을 알리는 불빛이다. 누군가도 나처럼 잠을 포기했나 보다.
창 밖엔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빗소리보다 빗물이 물받이를 타고 내려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어른거리는 창문 너머로 유난히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건물 하나가 보인다.
저 불빛은 멀리 있는 우리 집에서도 훤히 보이는 종합병원 건물의 불빛이다.
한 밤중에도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밝힌 불빛, 육신의 병으로 잠 못 이루는 사람들에게 생각이 이르자 빗물에 들러붙은 낙엽처럼 내 상념이 촉촉하게 젖는다.
오빠는 이 밤에 편하게 주무시고 계실까?
힘든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나의 가족이 생각났다.
예전에 성가대 단원으로 활동할 때였다. 우리는 한 달에 한번 종합병원의 공소에서 드리는 미사 시간에 성가를 부르는 봉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함께 미사를 드리던 환우들과 그의 보호자들이 간절하게 드리는 기도의 모습에서 절실함을 느꼈다.
성가 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에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을 더욱 실감했다.
병원이 아닌 내 집에서 잠을 잘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행복인지.... 평범한 일상이 가장 감사한 일이란 걸 깨닫곤 하였다.
수년 전에 나는 힘든 수술을 받고 입원을 한 적이 있었다. 침대 위에 누워서 창밖에 내리는 소담한 눈송이를 바라보고 있던 그때 추위에 붉어진 손으로 창살을 닦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멀리 있는 내 침대 머리맡에서도 그의 팔목에 도드라진 힘줄이 보였다. 그 후 병원 복도에서 또는 화장실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그녀와 마주칠 때마다 항상 그의 등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무척 부러웠다. 억세게 걸레를 쥐어짜는 손아귀의 힘이 부러웠고 누군가 나눠 준 간식을 받아 맛있게 먹는 모습이 부러웠다. 가난조차도 박박 문지르고 닦아서 빛을 낼 수 있는 그의 건강한 모습이 무엇보다도 부러웠다.
몸이 약하면 마음은 몸보다 더 약해진다. 더구나 요즘에 코로나로 인해 더욱 건강염려증이 생긴 뒤로 재채기를 한 번만 해도 혹시 코로나에 걸린 게 아닌가? 겁이 나기도 한다. 마음의 병은 육신의 병을 치료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간혹 환자에게 병을 숨기는 경우가 있다.
친척 중에 여든을 훨씬 넘으신 분이 암 진단을 받았다. 가족들은 본인에게 병명을 숨겼다. 가족들끼리 서로 의견이 분분했다. 본인에게 알려야 하지 않겠냐는 공개파와 아는 게 병이라는 암묵파.
만약 내가 그 상황을 접한다면 나는 어떤 쪽의 손을 들어주었을까? 나처럼 의심 많고 예민한 환자가 아니라면 굳이 병명을 알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가실 때까지 자신의 병을 모른 채 사셨던 그분은 손자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오셨을 때 오히려 몸이 약한 다른 이를 걱정해 주셨다.
안다는 건 때론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해맑은 친척의 얼굴을 바라보며 ''건강은 어떠세요''라고 묻는 안부에 ''늙은 사람이 아프지 않은 게 이상하지 ''라고 하셨다.
자신의 병명을 모르는 그분은 몸은 아프지만 마음만은 건강해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오히려 더 아팠을 뿐이다.
몸이 아파본 사람들은 안다. 의사의 부드러운 말 한마디 외에 다른 어떤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겨내세요. 용기를 잃지 마세요. 힘을 내세요 라는 말들은 진통제 한 알만도 못하다.
영화 속 대사인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은 그러고 보니 참 많은 의미가 포함된 말이다. 나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남을 걱정한다.
건강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환자가 되는 예가 수두룩한 지금 누가 누굴 위로할 것인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밤에 잠 못 이루는 나는 누군가를 걱정하고 있다.
창문이 점점 훤해지고 빗소리도 그쳤다. 다시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한다.
일곱 시 삼십 분,
핸드폰 불빛도 몇 시간 전보다 밝음의 조도가 약해졌다. 내 상념들이 어둠과 함께 슬며시 사라지는 게 신기했다.
새로 피는 꽃잎처럼 새롭게 열리는 오늘, 참으로 소박한 기도로 하루를 연다.
오늘 밤엔 모든 이의 창가에 불이 꺼져 있기를...,
내일 이 시간에는 내가 걱정하는 이가 참 개운하게 잘 잤다며 기지개를 켤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