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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Dec 10. 2020

 산타는 온다.

내가 트리를 만드는 이유



올해도 어김없이 트리를 만든다. 사닥다리처럼 서로 층층이 자른 나뭇가지를 굵은 실로 엮고 가지마다 솔방울과 예쁜 장식을 달았다. 지난가을  나무를 전지 할 때 남겨 놓은 나뭇가지들이 훌륭한 트리의 재료가 되었다. 완성된 두 개의 트리 중 하나는 딸네 집에 선물하고 또 하나는 우리 집 앞 뜰걸어두었다.

내가 만든 트리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래서 더욱 소중한 트리다.


완성된 트리를 보고 딸아이가 말한다

''엄마 이거  당근 마켓에서 팔아도 되겠네 '  

그 순간 나는 맥이 풀렸다.

상품성이 될 만큼  만들었다는 찬사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세월 아이들과 함께 트리를 만들면서 가졌던, 또는 가져주길 바랐던 순수한 마음 왜곡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는 올해로 35년이 된 트리가 있다. 큰 아이가 다섯 살 무렵에 산 이 트리는 지금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온 몸에 장식을 달고 불을 밝힌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부터 함께 트리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그  딸 낳은 딸아이와 함께 트리를 만든다.


트리가 없는 크리스마스를 상상할 수 없다

트리는 삭막한 겨울의 거리 풍경을 활기차게 만들어 줄 뿐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도 한다.

내가 해마다 트리를  만드는 것은 집안을 장식하는 의미도 있지만 내 안에 있는 작은 아이를 위한 퍼포먼스이기도 하다. 그 아이는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돌아오면 선물을 들고 오는 산타를 기다린다.

과 함께 만들던 트리를  손녀와 함께  만든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동네 언니를 따라갔던 성당에서 처음으로 산타 할아버지를 만났다. 붉은 옷을 입고  하얀 수염이 온 얼굴을 덮고 있는 할아버지는 루돌프를 타고 굴뚝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푸른 눈은 둥근 안경 속에서 신비하게 빛나고 있었고 더구나 아이가 알지 못하는 이상한 나라의  말을 하고 있었다.


다음날 옆집 언니가 어제 그 산타 할아버지는 우리 동네 성당에 계시는 외국 신부님이라고  말해주었지만 아이는 믿지 않았다. 그 이유는 크리스마스날 밤 산타 할아버지에게 받은 선물은 누구에게도 말한 적은 없지만 아이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24색 크레파스였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마음속에 텃밭을 마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해와 용서, 좌절과 고통, 인내의 기르는 텃밭에서 어른들은 제일 먼저 산타에 대한 믿음을 잡초처럼 뽑아냈다. 하지만 아이는 마음 한 귀퉁이에 산타를 간직하며 자랐다. 어른이 된 후로 더 이상 산타가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아이의 마음속에 산타는 비 온 뒤 떠오르는 무지개처럼 신비한 존재로 남아있었다.


그 후로도 해마다 아이는 보이지 않는 산타에게 선물을 받았고 그것은 언제나 가장 원하는 선물이었다.

힘들 때나 괴로울 때도 선물은 어김없이 도착했다.


                                                                        

아이들이 취학하기 , 서울 근교의 새로 지은 아파트에 전세를 살던 우리는 인생 최초의 위기를 맞았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가 미분양되면서 건물주가 부도를 낸 것이다. 누구보다도 꼬박꼬박 세금 잘 내던 선량한 회사원에게 부도라니..., 더구나 그 아파트는 그동안 연탄보일러가 있는 집에서 살던 내가 가스보일러가 설치된 주방에 반해 우겨서 이사를 하게 된 곳이었다.

하루아침에 아파트 건물주가 은행으로 바뀌었고 자칫하면 우리의 전재산을 날릴 판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법원으로 구청으로 쫓아다니던 그 해 산타가 나에게 준 선물은 지친 나를 위로해 줄 친구였다.

전세금을 지키기 위해 괴롭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같은 동에 사는 친구를 알게 되었고  나의 가장 소중한 선물인 그와는 지금껏 함께 나이 들어가며 서로를 염려하며 살고 있다.   


어느 해인가는 '건강 양호'라는 글자가 새겨진 건강검진 결과표를 선물로 받았고, 십 년 전에는 귀한 손녀를 내 품에 안겨 주기도 했다. 올 해는 어떤 선물을 받게 될까?  올해도 산타 할아버지는 맨 먼저 우리 집부터 들르셨다.


며칠  브런치 앱 메인에 나의 브런치 북 '이야기로 지은 집' 이 떴다. 그 날, 브런치에 올린 내 글 '우리 인생 이제는 페달을 돌리지 않아도 된다'라는 글을 접한 어라운드 잡지사의 에디터가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은근히 관종이었던 내가 덥석 받았지 뭔가, 올 해의 선물은 누구나 소망하는 집콕에서 해방되는 기쁜 소식과 그 어떤 것보다도 몸이 아픈 가족(나의 오빠)의 건강 회복 소식을 듣고 싶었었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잡지사의 에디터와 함께 온 사진작가는 우리 집에 오자마자 내가 만들어 놓은 트리를 찍기 시작했다. 대담의 주제가 '건강'이라고 한다. 뭔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던 올해의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산타를 기다리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대문이나 현관, 집안에 트리를 달아두고 산타를 기다린다. 이렇듯이 동심으로 돌아간 사람들을 만나면 왠지 친구처럼 느껴진다.


그 나이에도 산타할아버지를 믿는다고?

바보라고 놀려도 할 수 없다.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주듯 착한 어른에게도 선물을 준다는 믿음은 어른이 된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는 해마다 12월이 되면 트리를 만들고 가장 반짝거리는 마음으로 산타를 기다린다.

                                                          

해마다 찾아오는 산타를 위해서 올해도 나는 트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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