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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Nov 30. 2020

겨울 월정사에 다녀왔습니다.


가을도 겨울도 아닌  어중간한 계절, 더구나 지난밤에는 비까지 내린 뒤라 날씨는 더욱 스산했다. 딸네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설렘이 없는 여행은 지금이 처음이다.

아직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을 이야기하다가 보니 강원도 평창으로 장소를 정하게 되었다. 너무 일찍 서둘러 나선 탓에 호텔 체크인 시간이 한참이나 남아 있다. 주변에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월정사는 그렇게 시간을 때우기 위해 찾아간 곳이었는데 내가 너무나 몰랐던 것 같다. 월정사가 이렇게 아름다운 산사였다는 것을..., 도치법까지 써가며 이처럼 감탄하는 것은 그간 월정사에 대하여 전혀 아는 게 없었던 나의 무식과 무심함을 조금이라도 희석해 보려는 표현이다.

월정사에 대하여 나 말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듯하다. 그래서 역사나 창건한 인물이나 뭐 거시기 같은 건 쓰지 않겠다. 다만 입구에서부터 내가 보고 느낀 것들만 려고 한다.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펼쳐지는 전나무 길,  낙엽이 지면 앙상하게 가지만 남는 다른 나무들과 달리 사철 푸른 상록수는 새잎이 돋으면서 헌 잎이 떨어지나 보다. 하늘이 보이지 않게 빽빽한 초록잎 아래로 황금빛 카펫이 깔려있다. 웬만한 산책길 좀 다녀 본 사람도 이 길만은 다르다고 느낄 것 같다. 푹신한 낙엽 카펫을 밟고 걷는 길, 전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피톤치드의 향긋한 향기, 맑은 공기의 맛, 산책길과 나란히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와 새소리..., 청각과 후각 촉각과 미각이 오감으로 스며드는 이 곳, 그동안 마스크 안에서 답답했던 나의 콧구멍이 오랜만에 청량한 공기로 샤워를 한다.

피톤치드는 마음을 정화시키고 중추신경의 흥분을 완화시킨다는데 나는 지금 점점 더 흥분이 되고 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과잉 섭취하면 부작용이 생긴다는 말이 맞다.

 



산책로 옆에 오래된 나무가 사후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600년 된 고목이 쓰러진 그 자리에서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은 법구경을 읽지 않아도 자연의 섭리를 알 것 같았다.

결혼 전 남편은 불교 계통 상업고등학교의 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연애기간 동안 잠깐잠깐 만나는 중에도 법구경을 얼마나 말하였던지 내가 불교 신자가 된 듯하였다. 그때 함께 외운 반야심경을 지금도 외우고 있는 걸 보면 참 학구적인 연인들이었던가 보다.

쓰러진 지 14년이 된 고목나무의 텅 빈 가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아무려면 어때 나무는 죽어서도 허허 웃고 있다.



넉넉한 습기를 품은 숲길 사이로  다리가 낮은 긴 의자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광경이 내 눈에 뜨였다. 한 여름 졸졸졸 흘러내리는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정담을 나누라는 누군가의 배려가 담긴 자리였다. 아무래도 내년 여름에 이 곳에 다시 와서 저 의자에 앉아봐야 할 것 같다.  

 


가을과 겨울 사이, 계절과 계절이 스치는 이  순간의 풍경은 오늘이 아니면 사라지게 될 신기루 같은 풍경일지도 모른다. 선재길이라 부르는 산책길 끝에 보이는 일주문을 들어서자 월정사가 한눈에 들어왔다.  

마치 안개 자욱한 히노끼 탕 속에 들어온 듯 추운 날씨에도 온몸이 부드럽게 녹는 듯한 느낌이 드는 숲은 그렇다 치고 바닥에 깔린 저 타일은 뭔고? 토방 마루 아래 바닥에 깔린 (대리석은 절대 아님) 돌인 듯 기왓장인 듯 아무튼 투박하지만 섬세한 문양이 찍힌 바닥 타일이 무척 고와 보였다. 탑도 절도 있건만 왜 내 눈에는 저런 인테리어만 눈에 띄는지...,


마르세유를 여행할 때도 그랬다. 탁 트인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는 마조르 성당에서 나를 붙잡은 건 정교하게 수놓은 성당 바닥의 타일 카펫이었다. 그때 내가 넋 놓고 바라봤던 감상을 이 곳 월정사 토방 마룻바닥에서도 비슷하게 느꼈다.  




경내 마당에 우뚝 솟아있는 월정사 팔각 9층 석탑을 거론하지 않고 넘어가면 그 옆에 앉아 계신 석조보살님이 서운해하시겠지? 지금의 건물들은 전쟁으로 불타버린 후, 그곳에 다시 재건하였지만 팔각 9층 석탑만은 고려시대의 석탑이라 한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탑이었다. 탑 옆에서 예불을 드리는 석조보살님의 옷깃 주름이 수려하다. 다만 보살님이 입고 계신 옷이 아직 헐지 않은 걸로 보아 보살님 역시 전쟁 이후에 다시 환생하신 듯하다. 이제라도 더 열심히 불공을 드리면 수 백 년 후에 이곳을 찾는 중생들에게도 보살님의 미소가 전해질 것이라 믿는다.


 

딸아이를 결혼시킬 때 우리 것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새삼 느낀 적이 있었다. 한복의 색깔이 너무 다양하고 고아서 놀랐더랬다. 붉고 푸른 함 보자기와 봉채비 봉투의 앙큼한 매듭, 조각 천으로 이어 붙여 만든 조각보, 곱게 수놓은 혼서지 보, 색동 오곡 주머니 등, 그런데 오늘 월정사 사찰에서 그 모든 것들을 보았다.

저고리 앞섶처럼 살짝 치민 처마며 앙증맞은 매듭처럼 매달린 풍경, 한복 색깔에서 보았던 모든 색들이 단청에 다 들어가 있었다. 한국인인 내가 봐도 저리 좋은데 외국인들은 얼마나 아름답다고 할까,


월정사에 다녀온 후, 이제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다, 혹시 월정사에 다녀오신 적이 있으세요? 아직 가보지 않으셨다면 한번 다녀오세요, 봄에는 꽃이 좋고 가을에는 단풍이 그렇게 멋지다고 하네요, 가을과 겨울 사이 오늘처럼 비와 와서 을씨년스러워도 상관없어요, 꽃도 단풍도 없는 그곳에는 전나무 향기가 가득하더라고요 꼭 한번 다녀오세요



느지막하게 호텔로 돌아와 체크인을 했다. 숲 뷰나 슬로프 뷰  둘 중  원하는 룸을 선택하라고 한다. 눈이 라도 왔더라면 당연히 스키를 타고 활강하는 모습이 보이는 슬로프 뷰를 원했겠지만  딸네와 달리 우리 부부는 숲 뷰를 원했다.

역시 창밖으로 보이는 낙엽진 숲이 장관이다. 한참을 숲 멍에 빠져있는데 손녀딸이 우리 방으로 건너온다.

'' 할머니 눈이 와요 우리방으로 와 보세요'' 

창밖으로 눈발이 흩날린다. 기계가 만들어내는 눈이었지만 남아있는 가을 꼬리를 감추는 데는 성공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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