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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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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Mar 24. 2021

내 이름은 봄까치 꽃입니다

그렇게 갑자기 앞에서 멈춰버리면 어떻게 해, 뒤따라 달려오던 남편이 놀랐나 봅니다.

라이딩을 할 때면 나는 앞만 바라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됩니다. 자전거 타기야 말로 최상의 집중력을 요구하지요 잡생각을 하다 보면 자칫 선을 넘고 뒤에서 울리는 경적소리에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저 앞만 바라보고 목표점을 향해 달릴 뿐입니다.


오늘은 달랐습니다.

변에  버들가지가 물이 오르고 강둑에 쑥들이 돋아난 게 보입니다. 봄을 느끼며 달리다가 나도 모르게 멈춰버린 거랍니다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한강으로 라이딩을 나갔습니다. 봄이 저 혼자 올리가 없지요 바람을 타고 오더군요  아직 음지에는 겨울의 잔영이 남아있지만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나는 봄의 생명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매섭고 칼칼한 겨울바람에 실려오는 봄은 눈물 나게 매워도 입으로 후후 불며 먹는 떡볶이 맛이라고나 할까요? 봄은 맵지 않고 달아요


남편의 잔소리쯤 지금 내 앞에 펼쳐진 감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애잔잔한 풀꽃이 강둑에 마냥 피어있는데 어찌 그냥 지나치겠어요

풀꽃의 이름은 까치꽃입니다.

맨 처음 봄소식을 전해 준다고 그렇게 불렀나 봐요 누구인고맙습니다. 꽃에게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 주셨군요.


내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어요 봄까치꽃이 무리 지어 핀 이른 봄 언덕에서 나는 봄이 꾸며놓은 정경을 바라봅니다.

겨우내 마른 잎들이 바스락거리던  언덕이 자잘한 꽃무늬 커튼을 친 듯 화사해졌습니다. 공원 벤치 아래 풀밭은 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군요  자연 속에 근사한 강변 카페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봄까치꽃은 너무나 작아서 등을 구부려야만 앙증맞은 꽃잎을 볼 수 있겠군요. 이슬의 무게조차 이겨내지 못할 것 같은 작은 꽃이지만 무리 지어 피어있어서인지 씩씩해 보입니다.

작은 꽃들을 바라보다가 시간이 거꾸로 흘렀습니다.


포플린이었습니다.

파란 하늘색 바탕에 자잘한 꽃무늬가 놓인 포플린 천으로 어머니는 내 치마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허리에 잔잔한 주름을 잡아서 만든 그 치마를 입으면 덜렁거리던 내가 조신해지고 왠지 동화책 속의 주인공이 된 듯하였답니다.


내가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어머니가 만들어준 포대기에도 보랏빛 풀꽃들이 피어있었어

아들인지 딸인지 알 수가 없어서 보랏빛 꽃무늬천으로 만드셨다더군요

딸과 아들, 둘 다 보듬어 키웠던 아기 포대기 지금 이 언덕과 닮아있었습니다.


멀리서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얼굴. 어머니는 꽃무덤 같은 양산을 쓰고 계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봄까치꽃을 우리 어머니도 무척 좋아하셨나 봅니다.


기다리다가 지친 걸까요 이제 그만 일어나서 가자고 남편이 채근을 합니다.

"뭘 그리 오래 바라보고 있어 개불알풀꽃 처음 봐?"

예쁜 이름을 두고 굳이 그 이름을 꺼내어 부르는 건 왜일까요

나도 압니다. 봄 까치꽃이 다른 이름으로 널리 불리고 있다는 것쯤...,

이름 그까짓 거 아무려면 어때라고 하겠지만 나는 화가 납니다.


초등학교 때 내 별명은 '두꺼비'였습니다. 생긴 것 하고는 전혀 다른 별명이었죠,

관내 예능대회에 학교 대표로 출전한 나는 '농부들의 춤'을 추었습니다. 춤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넓은 빈 논에서 두꺼비가 한바탕 놀다 가고 뒤이어 농부들이 춤을 추고 처녀들과 농부 두꺼비가 함께 춤을 춥니다. 그때  알록달록한 옷을입고 두꺼비 춤을 춘 게 바로 저였답니다.


학교 남자 아이들은 그때부터 나를 두꺼비라고 불렀습니다. 멀리서 나를 보면 두꺼비를 외치고 도망가는 머스마들을 미워한 것처럼 봄 까치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면 나는 그들도 미워할 것입니다. 아마 봄까치꽃도 나처럼 자신이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지는 걸 싫어할걸요?.


애칭, 별명, 그까짓 거 잊어 주세요 이제는 이른  언덕에 새끼손톱보다 작은 보랏빛 꽃들이 오종종 피어있는 모습을 본다면

"봄까치꽃이 피었구나"라고 반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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