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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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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Apr 01. 2021

벚꽃이 지던 날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소월의  '진달래꽃'을 읽을 때면 나는 한 여인을 생각한다.

떠나는 사람을 붙잡지 못하고 홀로 남겨진 여인, 떠나는 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본다.


한 사람을 생각한다.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가는 무심한 사람, 둘만의 사랑, 둘만의 추억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떠나가는 사람을 원망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별 그 자체를 누군가의 변심으로 인한 헤어짐으로 알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는 이별도 있다. 운명에 의해 모든 두고 홀로  떠나야 하별은 남겨진 이보다 떠나는 이의 마음이 더 아프다는 걸 느낀다.

사별의 정과 한이 이별의 정한보다 더 서럽다.

사랑하는 나의 오빠가 우리 곁을 떠났다.


                             ***


새벽 다섯 시, 이 시간에 울리는 벨소리는 지독히 두려운 암시다.

나쁜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 건지..., 그동안 병마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던 오빠가 운명을 하셨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알려왔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일주일 전 문병을 갔을 때만 해도 남아있는 오빠의 시간이 이처럼 짧은 줄 몰랐다. 


시야가 뿌옇게 보이는 것은 내리고 있는 봄비 때문만은 아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오빠가 계신 남쪽으로 갈수록 꽃빛은 짙어지고 슬픔 또한 더욱 진하여진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효도를 다하지 못한 회한으로 가슴을 쳤는데 혈육과의 사별 앞에서 나는 남은 생을 더 누리지 못하고 너무 일찍 떠나는 오빠의 세월이 안타까워서 애통했다.

길가에 줄지어 늘어선 벚꽃나무가 만장처럼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꽃잎이 눈송이처흩날렸다.


얼마 전 막내 고모님의 타계로 부모님 세대가 마지막으로 떠나셨을 때 나는 양파껍질처럼 드러난 다음 세대가 바로 우리들인 것에 대하여 인생의 순리를 감했다.

모든 걸  내어주고 떠나간 세대처럼 언젠가는 우리 역시 사라지게 될 인간의 섭, 그런데 그 시기가 이렇게 빨리 다가오게 될 줄 몰랐다.


인생 백세라고? 터무니없는 소리다. 얼마 전 오빠는 일흔 번째 생일을 병석에서 맞았다.

그리고는 오늘, 이렇게 훌쩍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이승을 떠나셨다.


암이란 놈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처럼 장대하고 우직하고 든든한 사람을 쓰러뜨렸을까?

내가 가르쳤던 학생 중에 커서 꼭 과학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던 아이가 있었다. 그 이유가 암으로 돌아가신 신의 할머니 때문이라고 했다. 의사가 아닌 과학자가 되겠다는 아이는 암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의학 무기를 꼭 만들고 싶다고 했다.

어린아이의 공상 과학적인 상상이라고 웃어넘겼지만 지금은 그 아이의 소원이 빨리 이루어졌음 하는 바람이다.


자기가 붙어사는 숙주를 무너뜨리면 저도 함께 죽는 줄 모르는 무식한 놈에게 당한 것이 분하고 아예 처음에 싹을 자르지 못한 게 더욱 분통스러웠다.

분노와 허전함과 그리움과 슬픔이 서로 엉켜서 감정을 무너뜨린다.


내 위로 네 명의 오빠들 중 막내 오빠였다. 말없이 든든하게 가족을 지켜주던 가장이었고 온실 가득 다육이를 기르던 다육이 아빠였다. 꽃들도 안다. 졸지에 주인을 잃은 다육이들이 초췌해진 모습이다. 평소에 사랑받았던 것들이 곳곳에서 주인의 부재를 알리고 있다.


사람의 일이란 내일을 모른다.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살아갈 뿐, 언제 불려 갈지도 모르는데 아웅다웅할 것 없다. 나를 감싸주던 든든한 울타리가 무너진 날. 비로소 삶의 한가닥 깨달음을 얻는다.


아침이면 눈을 뜨고 새로운 하루를 맞는다. 오늘 하루의 소중함이 어제와 다르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벚꽃이 지고 있다.


꽃이 진다고 슬퍼하지 말자

꽃이 진다고 너를 잊은 적 없다. 정호승님의 싯구절이 자꾸만 맴도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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