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나는 다섯 살이었다.
가끔은 엊그제의 일도 깜빡 잊고 한참을 생각해야하는 내가 다섯 살 때의 어떤 광경을 기억한다는 건 나 자신도 놀라운 일이다.
아마 계절이 5월과 6월 사이었을 것이다. 달맞이 꽃이 피고 있었으니까,
다섯 살 아이는 장티푸스를 앓았다. 위로 네 명의 오빠들은 아픈 동생보다 동생의 머리맡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군것질거리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이승에서의 삶이 얼마남지 않은아이에게 어른들은 아이가 좋아했던 것을 뭐든 해 주고 싶었겠지
머리맡에는 새 옷도 한벌 있었는데 그 옷이 마지막 저승길로 떠나는 날 입을 나들이 옷이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얼마나 오래 앓았는지는 모르지만 저녁 무렵의 서늘함이 느껴졌다.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내고 방보다 조금 높은 툇마루에 턱을 걸치고 뜰을 바라본 기억이 선명하다.
토방 아래 화단에서 새 생명이 돋아나고 있었다. 꽃잎이 도르르 풀리면서 눈앞에서 펑펑 꽃봉오리를 터트리고 있는 달맞이꽃, 어린아이의 눈에는 그 모습이 마치 신기한 마술처럼 보였다.
아..., 노란 나비들이 순식간에 날아올라 눈앞에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환상에 아이는 숨을 죽이고 바라보고 있었다.
사그라들던 다섯 살 나의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달맞이 꽃의 정령이라고 지금도 나는 믿고 있다.
아이는 꽃잎이 펼쳐지는 순간에 새로운 탄생에 대하여 신비함과 경건함 같은 걸 인지했던 것 같다.
화단 가득 노란 등불이 켜지는 걸 지켜보면서 이 황홀한 변화를 누군가에게 알려야 한다고 느꼈다. 곧바로 엄마를 소리쳐 불렀고 달려온 엄마는 나를 껴안고 나보다 더 크게 외쳤다.
''아가 살았구나 신령님 감사합니다''
창평 슬로시티의 저녁 무렵
그날의 달맞이꽃을 이곳 창평에서 만났다.
담양 죽녹원과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푸르름을 만끽하고 예약해 둔 숙소를 찾아 창평 슬로시티의 한옥집으로 왔다. 동네를 빙 둘러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삼지내란 마을 이름도 이 물줄기에서 유래한다고 했다. 길게 흐르는 건 물줄기뿐만이 아니었다. 동네 골목길을 따라 담쟁이넝쿨을 이고 있는 돌담장이 흐르는 물길처럼 유연하게 둘러쳐져 있다. 남의 집이라도 잘 꾸며놓은 집 구경을 즐기는 나는 이곳에서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녔다. 예쁘게 꾸민 한옥카페가 있는가 하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이 위태롭게 서 있는 아주 낡은 고택도 있었다. 우리가 묵을 집은 예전 이 동네에서도 꽤 잘 사는 집이 었던 듯, 본채와 아랫채 창고와 사랑방이 널찍하니 자리 잡고 있는 멋스러운 고택이었다. 한옥의 구들장 위에서 잠을 자 본 게 얼마만인가?
어쨌거나 그 마을은 옛날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끄집어내기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비가 온 날이면 집 앞 도랑물을 막고 오빠들과 첨벙거리며 놀던 기억도 그렇고 기다란 빨랫줄을 받치고 있는 바지랑대에도 내 추억의 한조각이 걸려있다. 무엇보다도 돌담장 아래 핀 달맞이 꽃을 보는 순간 나는 영락없는 다섯 살짜리 계집애가 되어버렸다.
우리 집 화단에도 몇 그루 달맞이 꽃이 피어 있고 화원과 공원에서도 노란 달맞이꽃 무리를 흔하게 보았지만 지금 저 돌담장 아래 핀 달맞이 꽃처럼 정겹지는 않았었다
그날처럼 방보다 높은 토방 마루에 턱을 괴고 앉아서 돌담장 아래 핀 달맞이 꽃을 바라보았다. 내 인생에서 한번 더 달맞이 꽃의 신령함을 맞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 꽃들이 해를 바라보며 피기 시작하여 조금이라도 햇빛을 더 받으려고 목을 늘이기도 하고 몸을 기울기도 할 때에도 달맞이 꽃만은 저녁 어스름한 무렵에 꽃봉오리를 터트린다.
꽃과 나비는 운명의 동반자이지만 벌도 나비도 없는 밤에 피어서 뭘 어쩌자는 건지...,
문득 달맞이꽃의 습성이 나에게도 있다는 걸 알았다. 하루 중 노을이지는 오후의 빛깔과 어슴푸레한 초저녁의 공기를 좋아하는 것, 내 주변에 벌 나비는 어쩌다 늦게 귀가한 남편 벌 뿐이었다는 것,
무엇보다도 두렷이 떠오르는 달을 좋아하는 것들이다.
저녁무렵 돌담장아래에 핀 달맞이 꽃을 바라보는 순간 상큼한 기운을 느꼈다.
다섯 살 내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 달맞이꽃이 또 다시 이곳에서 생기를 리필해 준 게 틀림없다
달맞이 꽃, 내 안에 네가 있는 줄 미처 모르고 살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