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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May 08. 2021

오월의 눈사람

어린이날 선물로 뭐가 좋을까? 매년 어린이 날이 되면 행복한 고민을 한다.

항상 뭔가 최고가 되고 싶다. 최고라는 게 다름 아닌 초등학교 4학년인 손녀에게 듣고 싶은 말이지만, 이번 어린이 날에도 다른 할머니는 흉내 낼 수 없는 선물을 주기 위해 없는 머릴 짜내며 궁리에 궁리를 한다.


실은 지난겨울부터 준비해 둔 선물이 있었다.

함박눈이 오는 날 아이가 눈사람을 만들러 우리 집으로 다. 아이와 함께 옥상 위에서 하얗게 쌓인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때 나는 눈 강아지 한 마리를 만들어서 냉장고에 감춰두었었다. 오월 어린이 날에 눈사람을 선물로 받는다면 얼마나 좋아할까?



어느 날, 냉동실 문을 열다가 눈 강아지와 눈이 마주친 아들이 깜짝 놀란다.

"이게 뭐예요?"

"어린이날  선물"

비시시 웃는다. 아... 아들이 어렸을 적에는 왜 저런 선물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매년 어린이날이면 분명 선물을 챙겨 주었을 텐데도 지금은 나도 아들도 무슨 선물을 주고받았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진심이 담긴 선물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다.

딸아이가 수능시험을 보기 전 날, 유난히 바람이 세게 불고 추웠는데 아들의 귀가가 늦었다. 뒤늦게야 돌아온 아들은 내일 시험을 치르는 누나에게 네 잎 클로버 하나를 내밀었다. 손이 꽁꽁 얼어있었다.


동생에게 선물받은 네 잎 클로버를  딸 아이는 자신의 앨범 안에  고이 간직해 두었다고  한다. 

20년 전에 받은 네 잎 클로버를 지금껏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딸을 보고 두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마음에 뒤늦게 다시 한번 감동했다.


아이가 귀한 요즘, 온 가족의 중심은 아이가 된다.

98년 전, 방정환 선생님이 어른과 똑같이 어린이에게도 독립된 인권을 요구한 이후로 지금까지 어린이의 입지는 상한가를 치고 있어서 지금은 어느 가정에서나 아이가 왕으로 군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집만 해도 집안에 아이라곤 달랑 손녀 하나뿐,

아이가 주는 사랑만큼 어른들도 아이에게 엇이든 아낌없이 주고 싶다.


모든 풍족하여 일 년 내내 어린이 날처럼 지내는 요즘 아이들에게  어린이날은 이제 큰 의미가 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선물을 생략할 수도 없다. 어른들이 주고 싶은 선물과 아이들이 받고 싶은 선물은 너무나 다르다.


아이들은 장난감 대신 하루 종일 게임만 할 수 있는 시간이나 하루쯤 학원을 가지 않아도 되는 허락을 그 어떤 선물보다 더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다.

어른들의 기대와 관심에서 해방되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이 담긴 이야기다.


어린이 날 선물로 주려고 주문한 트램펄린이 도착했다. 나름 신중하게 고른 선물이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서 친구들과 뛰어놀지 못하는 아이를 위한 운동기구였다. 남아도는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는 기구였지만 아파트에 사는 딸네 집에는 층간소음이라는 변수가 있는 조심스러운 기구였다.

아이는 선물에 만족하는 눈치였다. 쿵쾅거려도 괜찮은 단독주택인 외갓집에서 원 없이 하늘로 뛰어오르고 있다. 아이의 이마에서 금방 땀이 솟는다. 선물로 사 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쯤. 비장의 선물을 꺼냈다. 냉동실 안에서 오늘이 오기를 기다리며 꽁꽁 언 채로 대기 중이던 눈 강아지다. 아이는 예상했던 대로 무척 놀라워했다.

"이런 걸 어디서 사셨어요?"

지난겨울 만들어둔 눈강아지라고 하자 더욱 놀라는 눈치다.

마침 유리를 덮은 식탁 위에서 저 혼자 슬슬 미끄럼을 타는 눈 강아지를 보고 재미있어하며 깔깔 웃었다. 트램펄린에서 뛰느라 그렇지 않아도 몸에 땀이 났는데 때마침 시원한 눈강아지를 안겨 주니 때맞춰  좋았던 것 같다.

어떠냐 이만하면 최고의 할머니 반열에 들지 않겠느냐  속으로 흐뭇해 하며 더 즐기기를 바랐는데  오월의 따뜻한 실내날씨가 방해를 한다. 한 계절을 오롯이 기다린 눈 강아지는 아이의 사랑을 그다지 오래 받지는 못하였다.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려고 지난겨울부터 지금까지 쭉 기다려 온 눈 강아지는 채 몇분도 함께하지 못하고 도로 냉동실 안으로 들어갔다. 눈 강아지에게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아이는 눈 강아지도 점핑 트램펄린도 모두 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파트에서는 소음 때문에 뛸 수가 없단다. 가끔 외갓집에 오면 운동을 할 테니 할머니 집에 그냥 두는  좋겠다고 한다.


아이들이 돌아 간 후에 트램펄린 위에 올라가 보았다.

통통 튀어 오르는 게 재미가 난다. 어린 시절에 이런 게 내 집에 있었더라면 아마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최고로 좋았을 것이다. 트램펄린 위에서 나는 아이처럼 가벼워지고 있다. 내가 어린이가 된 기분이다.

아이에게 사준 어린이 날 선물이 결국 내돈 주고 산 내 선물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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