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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Aug 17. 2020

할머니는 참 더럽게 노셨네요

초등학교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다행히도 줌(ZOOM) 수업과 주 1회 학교 출석으로 1학기 학습량을 채운 것 같다. 하룻 내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해야 하는 아이들이 걱정되었는데 별 사고 없이 방학을 맞이하게 되어 다행이다.


전처럼 방학 동안에 학원을 가는 일도 없고 여행을  수도 없게 된 손녀 아이는 이번 여름방학을 집에서만 보내야 한다. 아침에 회사에 출근하는 엄마와 함께 집을 나서서 외갓집으로 오는 아이를 위해 남편과 나의 생활패턴도 바뀌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남편은 아이의 방학 중 일일교사가 되고 나는 아이와 함께 놀아 주는 아이의 친구가 되었다. 예전과 달리 몸이 아닌 입으로 놀아줘야 하는 아이의 대화 상대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집안에는 생기가 돈다. 오래된 앨범을 들고 나와서 저와 닮은 엄마의 어렸을 적 사진을 보고 재미있어하기도 하고 모아둔 즈이 엄마의 상장과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걸 좋아한다.


오늘은 갑자기 할머니의 어린 시절이 궁금했는지 할머니는 어렸을 때 무얼 하며 놀았냐고 물었다.

나야 뭐 공부는 뒷전이고 노는 데는 선수였으니까 오늘을 위해 준비한 것처럼 내가 즐기며 놀았던 어린 시절의 놀이들을 줄줄이 나열했다.


주로 위로 네 명이나 되는 오빠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며 놀던 놀이들이다.

방죽에서 연밥 따먹기. 연밥이 무엇인지 당연히 모르는 아이에게 진흙탕 속에서 피는 연꽃과 고소한 연밥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허벅지까지 차는 진흙 속에서 건져낸 연뿌리 맛도 실감나게 표현했다.

같은 장소에서 우렁이도 잡았다. 우리가 놀이로 잡은 우렁으로 어머니는 저녁에 맛있는 된장찌개를 끓여 주셨다.


메뚜기를 잡아서 볶아먹기. 논두렁에 나가면 여기저기에서 푸드덕거리며 뛰어다니는 메뚜기를 잡는 재미란...,  메뚜기를 낚아채어 빈병에 가득 잡아와서 구워 먹는 메뚜기의 그 고소한 맛,  아마 너는 그 맛을  모를 거야

아이의 이마가 찡그려지는 것도 모른 채 나는 신나게 설명을 했다.


남의 밭에 콩을 서리해서 구워 먹은 이야기는 차마 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하면 온 얼굴에 검댕이를 묻힌 우리 오빠들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콩밭 주인이 어머니에게 콩값을 물어달라고 한 말까지 이야기해야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땅따먹기. 자치기. 고무줄놀이. 딱지치기. 구슬치기. 윗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하던 기마 싸움 등..

흙과 종이. 나무, 자연 속의 모든 것이 우리들의 놀잇감이었다.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아이가 한마디를 한다.


"할머니는  왜 더러운 것만 가지고 놀았어요?"

                                



요즘 아이들은 놀 줄을 모른다. 실뜨기와 비석 치기를 알려 주었더니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놀이 과목으로 학교에서 이미 배웠다고 한다. 놀이가 아니라 수업의 일종으로 알고 있었다.  


손녀의 친구들이 놀러 왔다.

다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라서 단독주택인 우리 집을 전원주택쯤으로 안다. 친구의 외갓집에서 방학 중 하루를 보내는 것도 즐거운 추억이 될 수 있다. 옥수수와 감자를 찌고 시원한 물김치에 국수를 말아주었다.

치킨과 김밥. 피자가 아니어도 모두 잘들 먹는다.

식사 후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위층으로 올라간 아이들이 조용하다.


아이들은 모두 제각각 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게임을 하는 아이. 책을 읽는 아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 함께 어울려 놀 거라고 생각한 내 생각과는 정 반대로 아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놀이를 찾아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참 아이답지 않은 아이들이다.


방학 동안 집에만 있는 아이가 안돼 보였던지  딸아이는 아이의 몇몇 친한 친구 가족과 함께 갯벌체험을 하러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과연 깔끔이들이 갯벌에서 잘 놀 수 있을까?


나의 걱정을 무색하게 만드는 사진과 동영상이 메일로 도착했다.

온몸에 진흙을 묻히고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 서로 얼굴에 진흙 마사지를  주며 깔깔대며 웃는다. 커다란 돌을 들어내고 게와 고동을  손으로 잡는다. 갯벌에 뚫린 구멍  따라다니며 뭔가를 열심히 잡고 있다. 아이들이 즐겁게 웃고 떠드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였다.


갯벌에서 아이들은 모두 게처럼  기어 다니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도 자연 속에 풀어놓으니 나 보다도 더 더럽게 잘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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