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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Jun 13. 2020

모기장 안에서 모기에 물렸다

오늘 아빠는 출장, 엄마는 야근, 초등학생인 손녀와 나는 가슴이 부풀어 있다.


''우리 모기장치고 마루에서 잘까?''

''좋아요''


손녀가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외갓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일이 드물어졌다. 지척에 살면서도 매일 그리운 손녀다.


낮에 잠깐씩 다니러 오는 것과 밤을 같이 보내는 것은 다르다.  

함께 양치질을 하고 함께 씻고 함께 껴안고 자는 것은 연인들하고만 가능한 게 아니다. 손녀와 함께 밤을 보내면 더욱 새록새록 사랑이 솟는다.


손녀가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는 날에는 우리 부부는 VIP 손님을 맞이하는 것처럼 바쁘다.

침구는 햇볕에 말려서 고슬고슬하게 비하고 타월도 모두 새 것으로 교체한다.

귀한 손님 모시기에 정성을 다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달리 손녀는 소박하다. 저녁엔 뭘 해줄까? 돈가스, 오므라이스. 생선구이. 뭐든 말만 하면 만들어 주겠다는 백지 수표 같은 메뉴를 거들떠보지도 않 의외의 반찬을 주문한다.


''난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게 좋아. 시원한 물도 함께 주세요.''


진수성찬을 마다하고 마른 멸치를 먹겠다고 한다.

언젠가 할아버지가 먹던 반찬을 눈여겨봐 둔 모양이다. 자기 집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외갓집에서는 하고 싶은 것이다.


하룻밤 자고가는 데도 들고 온 가방 속 물건이 만만치  않다.

우선 읽을 책 두 권, 일기장. 엄마가 내 준 숙제를 풀어야 할 수학 문제집. 목욕하고 갈아입을 속옷과 잠옷, 마냥 시끄럽게 떠들어도 괜찮은 외갓집에서 충분히 연습하고 오라고 리코더도 끼어넣어 보냈다.


이 다음에 아이는 외갓집에 대하여 어떤 추억을 갖게 될까? 외할머니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외갓집에 대한 추억이 없는 나는 친구들이 방학 후에 외갓집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면 참 부러웠다. 아마 그 시절 나도 친구들처럼 외갓집을 다녀왔더라면 지금쯤 더 풍요로운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특별한 추억을 남겨주고 싶다. 그래서 화분에 심어놓은 몇 개 안 되는 딸기도 아이가 딸 수 있게 남겨두고 새들이 따먹고 있는 시고 떫은 보리수 열매의 맛도 느끼게 한다.

비록 옥상의 작은 텃밭상자에 심은 상추지만 자기 손으로 따고 씻어서 쌈을 싸 먹게도 한다. 다행히 아이는 나와 함께 놀이처럼 하는 일들을 모두 즐거워한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들은 어쩌면 내가 어린 시절 외갓집에서 하고 싶었던 인지도 모른다.

밤늦도록 TV를 본 것은 우리 둘만의 비밀이다.


거실에 요를 깔고 모기장을 쳤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모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구석을 베개와 쿠션으로  꼼꼼히 막아놨다.


''우와! 우린 이제 그물에 걸렸다.''

 모기장 안에서 아이는 신이 났다.


불을 끄고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이제는  옛날 귀신 이야기는 먹히지도 않는다


'몽테크리스토 백작' 이야기를 해주었다. 죽은 파리나 신부의 시체가 되어 죽은 척 감옥에서 탈출한 주인공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섭다며 나를 끌어안는다.


아이가 조용하다. ''쌔근쌔근''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아마 아이를 무척이나 사랑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손녀에게서는 아기 냄새가 난다.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다가 나도 이내 잠이 들었다.


모기장 속에서 하룻밤으로 아이는 모기의 별식이 되었다.


''할머니 가려워''


먼저 일어난 아이가 나를 깨운다.

아이의 팔에 무려 다섯 방이나 모기에게 물린 자국이 있다. 어찌나 고약한 놈이었던지 피를 빨아먹은 침 구멍이 선명하게 보이고 주변이 온통 부어올랐다. 아이의 부어오른 팔목을 보는 순간 복수심이 끌어 올랐다.

놈을 찾아서 죽이고 그 피를 보고 싶었다. 모기장 안에서 모기에게 물리다니...,

모기 장안을 샅샅이 살펴봤으나 놈은 보이지 않는다. 때아닌 포식을 하고 어디에선가 편히 쉬고 있을 놈을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기가 숨어 있을 만한 곳에 모기약을 뿌옇게 뿌렸다.

손톱만큼 작은놈에게 이렇게 큰 복수심을 갖게 될 줄 몰랐다. 함께 잤지만 나는 멀쩡하다.

차라리 나를 물지 그랬어 요놈의 모기야. 아이의 부어오른 팔을 바라보며 자학을 다.


''할머니가 자느라고 몰랐어 그래서 미안해''


나는 아이의 팔에 약을 발라주며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할머니 약말고 민들레 발라주세요"


언제인가 산에서 모기에 물렸을 때 나는 급한대로 민들레잎을 짓이겨서 발라준 적이 있었다.

아이는 그 때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민들레 처방은 친정어머니가 곧잘 해주시던 방법이다.나는 화단에 있는 민들레를 뽑아서 즙을 내어 발라 주었다.

'나는 자연인이다'도 아니고 첨단을 걷는 시대에 민들레 잎을 찧어서 벌레 물린 곳에 발라 주는 외할머니라니..., 인디언 할머니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아이에게는 이 또한 행복한 기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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