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조우하는 시간

사흗날의 칠불사

by 연희동 김작가


남쪽 동네 순천에는 내 바로 아래 동생이 산다 서열로는 동생이지만 실은 오빠처럼 든든한 동생이기도 하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새들은 지천이건만 논두렁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있는 새들만 봐도 예쁘다고 호들갑을 떨지를 않나 고장 난 보일러 소리처럼 우렁찬 황소개구리 울음소리를 처음 듣고 놀라는 나를 보고 더 놀라던 동생네가 서울 촌닭인 나를 섬진강을 지나 구례를 거쳐 하동에 있는 칠불사로 데려갔다.


유럽여행을 하다가 보면 자주 가게 되는 성당들이 있다. 건물의 모습들이 비슷해서 대부분 다른 특징을 찾아내지 못하여 그 성당이 그 성당인 것처럼 생각한다. 우리네 사찰도 외형만은 어느 사찰이나 비슷하다.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이 있는 천왕문을 지나면 널찍한 마당 안에 대웅전이 있고 스님들이 기거하는 사채가 있으며 어디에서나 졸졸 흐르는 샘물을 받아놓는 커다란 돌확과 그 곁에 빨강과 파랑색 플라스틱 물바가지를 나란히 걸어놓은 것조차 똑같아서 그 절이 그 절처럼 보일 때가 있다.


칠불사는 달랐다. 이곳은 부처님의 숨소리가 들릴만큼 조용했다. 조용했지만 적적하지 않았다.

활짝 열려있는 법당 안은 초여름 더위가 얼씬할 수 없을 만큼 시원했다. 더구나 누구나 들어가서 마냥 여유롭게 쉴 수 있도록 군데군데 방석이 놓여 있다.

들리는 건 스님의 독경소리와 목탁소리뿐 이조차 소리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처럼 들린다. 영롱한 목탁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스르르 눈이 감길 만큼 편안한 곳. 생각나는 글이 있어 핸드폰을 열고 몇 자 적으려다가 딸깍거리는 문자 소리가 오히려 내 귀에 거슬려 핸드폰을 닫아버렸다.


참 시끄러운 세상에서 살았다. 남의 말소리를 듣느라 내 말을 하느라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핸드폰 소리와 TV, 인터넷. 각종 기계들의 소음 자동차의 엔진 소리..., 우기고 싸우고 떠드는 소리...,

너도 나도 큰소리를 질러야 이기는 소리의 세상에서 훌쩍 떠나 마치 다른 세상에 와있는 듯하다.

바람도 토끼 걸음을 하고 지나 가는지 새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한 곳이다.


고요와 적막은 다르다.

외롭고 고독을 느끼는 조용함이 적막이라면 고요는 부드럽고 평안하여 마음이 잠잠해지는 상태의 조용함을 말한다.

칠불사에서 나는 고요함을 느끼고 있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빠르게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시간을 만났다. 시간의 민낯을 보기는 처음이다. 더구나 시간을 붙들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처음 있는 일이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습니다

처음이라고요? 참 바쁘게 사셨군요

바쁘신가요?

아니요 저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쭈욱 같은 속도랍니다. 누군가는 내가 걷는다고 하고 누군가는 내가 뛰거나 달린다고 하더군요


죽어야 멈추는 줄 알았던 시간과 조우하게 될 줄이야.., 지금껏 시간에 이끌려 사는 줄 알았는데 시간은 내 발치를 따라오느라 자신도 힘들었다고 한다.


이곳에 오던 길에 바라본 섬진강은 지난해 수해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어서 예전에 봤던 그림 같은 풍경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얀 백사장이 물길에 스쳐 좁아지고 사라졌으며 뿌리째 뽑힌 나무들이 아직도 나 뒹글고 있는 강변을 바라보며 자연을 망가뜨린 누군가에게 화가 났다. 듣자 하니 작년의 섬진강 수해는 인재에 가깝다고 했다.


섬진강이 예전처럼 아름답지가 않아서 속상했답니다

걱정 마세요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예전의 모습을 찾게 될 거예요


지금 당장, 하루빨리, 나는 그렇게 조급하게 살았다. 지금도 빨리 떠나야 하는 시간을 붙잡고 너무 오래 지체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마냥 함께 있어도 되나요?

그럼요 나는 당신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당신 소유였는걸요


부처님을 모신 칠불사에서 그동안 내 것인 줄도 모르고 이끌려 다녔던 시간을 찾게되다니.....

부처님 감사합니다.

인자하신 부처님이 말씀하신다.

감사는 너의 하느님께 드려라.


마치 오선지에 그린 음표 같은 전깃줄에 새들